전당대회의 시절이다.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이 얼마전 전당대회를 치렀다. 새누리당이 전당대회를 마쳤고,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진행 중이다. 미국도 과거에는 전당대회 현장에서 당의 거물들이 영향력을 행사해 대선 후보가 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68년 민주당의 시카고 전당대회 현장에서 큰 충돌이 벌어지면서 후보선출제도를 개선했고, 이제 양당의 전당대회는 대개 순회 예비선거를 거쳐 사전에 결정된 대선 후보를 지명하는 이벤트 성격에 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이정현 대표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새누리당은 8.9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그 의미가 복합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도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보도경향을 보인다. 보수적인 언론들은 최초의 호남출신 대표라는 것을 강조했다. 영남에 지지기반을 가진 새누리당이 새로운 선택을 했다는 점에 방점을 둔 것이다. 진보적인 언론들은 새누리당이 친박대표를 선택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박대통령과 친박이 지난 총선을 망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친박대표를 세운 완고함에 방점을 둔 것이다. 우리 정치의 지역구도 때문에 호남 당대표는 오는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바타인 친박대표가 관리하는 대선 후보 경선은 경쟁력보다 대통령과의 친연성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경선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경우 불복사태가 벌어지면서 분당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전당대회의 결과를 새롭다고 보는 것은 긍정적 평가와 연결된다. 무당파가 제1당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정당이 이삼십 퍼센트 정도의 지지만을 받고 있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모습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고, 새로워졌다는 것은 변화하려고 노력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사에서 새로움을 넘어 드라마틱한 전대 결과를 연출한 것은 주로 현재의 야당쪽이었다. 극적 전대 결과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낳거나 대선승리로 연결되었다.

유신말기 현 야당의 전신인 신민당 대표 이철승은 중도통합론을 내세우며 타협적인 노선을 걷고 있었다. 야당은 사꾸라라는 소리를 들었고 민심과 점점 멀어졌다. 1979년 김영삼은 선명야당의 기치를 내걸고 이철승과 대결했고, 야인으로 있던 김대중과 재야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전대에서 승리했다. 당내 기반이 약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전대 후에 신민당은 노선을 180도 전환해 반유신 투쟁을 전개했고, 박정희 정권은 김영삼의 의원직 제명으로 대응했다. 점증하던 정치적 긴장은 부마사태를 거쳐 박정희의 피격과 유신체제의 종말로 치달았다.

2002년 당대표가 아닌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이었지만 노무현 후보를 탄생시킨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도 이에 버금가는 드라마였다. 대선을 1년여 앞둔 2001년 봄, 민주당 안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풍미했지만, 당 밖에서는 더 거대한 이회창 대세론이 지배하는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되고 있었다. 이인제 대세론은 당의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던 동교동계 주류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다가오는 대선과 당의 앞날을 걱정한 일군의 쇄신파들은 동교동계에 대항해 당개혁운동을 전개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국민참여경선이 도입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새로운 경선제도에 힘입어 점화된 노풍은 순식간에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이인제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을 불태워버렸고, 대선승리로 이어졌다.

전 일본 총리 고이즈미의 등장도 극적이다. 내각제를 실시하는 일본은 제1당이던 자민당의 총재선거가 곧 총리선거다. 고이즈미 이전에 당 총재는 당내 파벌 보스들 사이의 담합에 의해 내정되었고, 양원 총회의 요식절차를 거쳐 선출됐다. 그러나 90년대 말 경기 침체와 자민당을 탈당해 반자민 연립정부를 수립했던 오자와 등의 공세로 위기에 처하면서 자민당은 당쇄신방안의 하나로 총재선출방식을 변경해 지방당원들을 투표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비로소 전당대회 비슷한 제도가 도입된 셈이다. 2001년, 당내 주요 파벌과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였고 일반 국민 및 당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당의 쇄신을 주장하던 고이즈미는 지방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총재로 선출되었다. 고이즈미의 개혁정책으로 자민당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장기집권에 들어섰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이처럼 정당들이 전당대회를 통해 연출하는 변화의 크기는 정당이 직면한 위기의 크기와 비례한다. 허나 위기가 아무리 커도 정당의 구성원들이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따라서 변화는 위기 자체가 아니라 위기의식의 크기에 달렸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목하 진행중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보여줄 결과도 더불어민주당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을 반영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전대에서 세 사람의 당 대표 후보가 경합하고 있다. 김상곤 후보가 선택된다면 비여의도 출신 평당원이 당 대표가 되는 것으로 기성정당에서는 초유의 일이다. 이종걸 후보의 선택은 기존 주류의 영향력이 확고한 당에서 유일한 비주류 후보가 선출되는 것으로 고질적인 계파정치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추미애 후보가 뽑힌다면 한명숙 전대표의 전례가 있지만 여성대표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맞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의원과 당원, 지지자들은 지금 더불어 민주당이 특별한 문제없이 잘 하고 있다고 볼까? 다가올 대선에서도 손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볼까? 아니면 문제가 많고 이대로는 대선승리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할까?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할까? 여기에 대한 답변이 이번 전대에서 나타날 변화를 결정할 것이다. 지켜볼 일이다. 끝으로 세 후보를 가나다 순으로 언급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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