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보면 우리네 방송과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들이 보인다. 광고나 편성방식 등의 형식상 특징은 물론 프로그램 내용상에서 허가되는 표현적 특징은 놀라우리만큼 다르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차이 세 가지를 꼽는다면 성 표현, 프로그램 출연의 다양성 및 풍자가 있다. 우리나라보다 성 표현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사회특성이 반영되어 이성 간의 애정표현과 애정행각은 물론 동성 간의 일들도 자연스럽게 방영된다.

반면 우리나라 텔레비전 방송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걸그룹들의 의상이나 퍼포먼스처럼 특정 신체부위를 부각시키거나 일방적인 성 역할을 강조하는 방식의 프로그램들은 없다. 또한 독일의 텔레비전 방송에선 사회의 다양한 인종과 사회구성원들이 등장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그것에는 특별한 사람들만 등장한다. 뉴스만 봐도 그렇다. 독일 뉴스엔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시아계 출신 기자들이 출연하는 반면 우리나라 뉴스에선 말 그대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나라 사람들만 나온다. 독일의 기자들은 피어싱, 문신 등을 가리지 않지만 우리나라엔 그 흔한 귀걸이를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텔레비전은 ‘경건주의’를 표방한다. 어느 표현방식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는 독자의 몫이기에 결정하진 않겠지만, 텔레비전이 사회를 반영하는 창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분명 둘 중 하나는 왜곡된 사회를 보여주는 것임은 자명하다.

독일 내 극우정당들의 인종차별문제와 정책을 풍자한 방송장면.(http://www.heute-show.de)

텔레비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경건주의는 시사와 정치문제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독일의 시사프로그램들은 내용과 장르에 따라 진지함부터 희화화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진지함이 없는 시사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선 시사, 정치문제를 다룰 때 포함되는 ‘국민의 대표’들에 대한 비판이나 ‘비틀기’가 불가능하지만 독일은 정반대다. ‘국민의 대표’라고 불리는 대상들이 가진 권력의 원천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다. 그래서 시사와 정치에 대해 경건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우리나라 방송에선 풍자라는 내용이 없다.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전문 풍자프로그램이라고 불릴 만한 프로그램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거의 없고, 토크쇼에서 정치인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의견과 입장에 대해 냉철하게 비평하고 담소를 나누는 프로그램은 아예 없다. 물론 코미디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일부 코너에서 시사, 정치문제를 풍자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방송에서 시사와 정치는 마치 성역(聖域)으로 분류되어 접근하지 못할 대상으로 된 느낌이다. 반면 독일의 방송에선 시사, 정치를 다루는 풍자프로그램이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으며, 그들의 소재는 메르켈 총리부터 일반 인사들까지 다양하다. 풍자프로그램이 가능한 이유는 방송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여론형성에 필요하다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형국을 풍자한 이미지(http://www.heute-show.de)

풍자프로그램 ZDF의 ‘heute Show’

ZDF의 ‘heute Show’는 2009년부터 방송된 전문 정치풍자프로그램으로서 올해 여름 휴방기까지 총 13개의 시즌(Staffel) 215편이 방영되고 있다. 뉴스처럼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문제에서부터 시사와 정치, 국제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풍자프로그램(Satiresendung)이다. 프로그램 진행은 전문 정치풍자프로그램 진행자인 올리버 벨케(Oliver Welker)가 담당하고 있으며 출연진들은 20여명에 달한다. 금요일 저녁 10시 30분부터 11시 15분까지 편성되는 이 프로그램의 풍자수위는 상당히 높다. 매주 2~3개의 이슈들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에선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총리인 메르켈까지 아울러 풍자를 가하며 진행자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그들의 행적과 언행들을 비꼬고 희화화시킨다.

최근의 방송들에선 독일 내 확산되고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미국의 대선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다. 6월 방영분에선 ‘유로 2016’의 개최시기라는 특성을 반영하여 인종차별과 극우주의를 주창하는 NPD(독일국가민주당)의 당수 모습을 희화하고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을 콩트로 엮어 방영했다. 또한 쾰른사건이후로 급성장하고 있는 AfD(독일을 위한 대안) 주요 인사들의 모습을 희화화하고 그들의 과거발언들을 편집하여 비판한다. 물론 좌파정당들도 ‘heute Show’의 풍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 좌파정당인 die Linke(좌파당)이나 die Grüne(녹색당)의 행보와 정당모임에서 발언된 내용들도 풍자의 대상으로 자주 선정된다.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 극우세력의 대표로 꼽히는 미국 대통령후보 트럼프도 희화의 대상이다. 지금 방송 휴방기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정식임명된 이후에 온라인을 통해서 이미지와 플래쉬 게임 등으로 비꼬고 있다. 오마바 미국 대통령의 생일에 맞춰 제공된 이미지에는 ‘오늘 두 명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바마는 55세가 되었고, 트럼프는 정신연령 12세가 되었습니다’라는 글귀로 웃음을 준다.

플래시 게임은 더 흥미롭다. 비행기 슈팅게임 형식을 빌려 사람의 뇌 속을 상징하는 배경에 적을 무찌르면 돈다발이 떨어지고, KKK(Ku Klux Klan, 백인우월주의자 모임. 극단주의 표방)을 형상화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게임 타이틀은 ‘President EVIL’이며, 전면에는 트럼프 대통령후보를 캐릭터화한 인물이 있다.

미국 정치형국을 풍자한 플래시 게임(http://www.heute-show.de)

가감 없는 풍자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몇몇 에피소드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 2월 6일 방영된 장면에서 한 여성의 인터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마치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당사자가 정식으로 항의했다. 이에 제작진은 이 여성의 항의를 받아들여 온라인에 게제된 동영상을 삭제하고 진행자와 ZDF측은 정식적으로 사과한다. 2016년 4월 29일 프로그램에선 오스트리아 극우정당 FPÖ(Freiheitliche Partei Österreichs: 오스트리아자유당)의 정치세력 확대를 보도하면서 나치표식이 연상되는 장면을 삽입하여 해당 정당의 항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ZDF의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온라인 아카이브에선 삭제되었지만 원래 이 장면이 삽입되어 있던 부분에 진행자 벨케의 코멘트로 방송의 자유와 극우정당의 행적을 비꼬는 다른 풍자와 비판하는 장면으로 대체되었다.

방송의 자유와 경건주의

우리나라에선 많은 윤리규범들을 미디어에 투영시키는데 방송은 더욱 그렇다. 방송이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구조상의 문제만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중립은 어느 외부세력도 내부결정이나 운영에 개입하지 못해야 한다는 독립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치며, 이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법적인 최소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비단 언론학을 공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경건주의’로 인해 성역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유롭지 못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구성하게 만든다. ‘정치와 종교문제는 대화주제로 부적합하다’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이들에겐 결국 방송이 보여주는 화려한 ‘성적유희’들이 더 자연스러운 대화주제가 된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 환경에서 보고 듣는, 그리고 행하는 애정표현들은 자연스럽지 못한 이상한 상태가 된다.

시사와 정치문제 역시 같다. 사회 속에서 잘못된 부분들이 많다고 느끼고, 정치인들의 기이한 행동들이 생활 속에서 많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들은 자연스럽지 못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주 가끔 행하는 좋은 일들만 방송에 나오는 기이한 형태가 된다. 기업과 사회단체들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 속에서 다뤄지기 때문에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금지된다. 그야말로 경건한 태도로 사회를 바라보는 방송이다.

풍자는 방송의 내적영향력과 시청자의 의견다양성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매개체다. 누군가에게 소위 ‘안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들을 도와 그들의 오류와 실수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감추는 것이 방송의 의무가 아니다. 방송의 의무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사회문제들을 앞으로 꺼내고, 정치와 사회에 감시기능을 수행하는 데서 시작된다.

풍자도 하나의 방식이다. 물론 앞서 소개한 ‘heute Journal’의 사례처럼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오류는 고치면 된다. 법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논란에 대한 입장을 세우도록 하는 것이 방송의 자유다. 언론과 방송에서 성역으로 두고 경건주의를 표방해야 하는 대상은 특정 대상이 아닌 국민이어야만 한다. 지금처럼 풍자가 금지되는 사회에선 여론 다양성도 없고 방송의 자유는 더욱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언론의 자유를 말할 때 보도의 자유뿐만 아니라 풍자와 희화화의 자유를 함께 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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