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와 김충환 전 청와대 비서관이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 입장의 글을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실은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보수언론들은 2일 지면에서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결국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이나 하는 공산당 기관지에 이용을 당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는 동아시아 외교 현실에서 약자들의 대안이 만들어져야 할 필요성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봐야 한다. 국가 대 국가 구도의 관점에서 중국을 규탄하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보수언론은 대개 인민일보 기고자들의 자유를 존중한다면서도 사드 배치 논리의 핵심인 북한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중국 공산당의 기관지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위를 했다는 논리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일개인의 정치적 판단 문제를 놓고 말하자면 보수언론의 주장은 절반의 근거가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의 피해자처럼 행세하는 중국이 사실은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가진다면 인민일보에 이런 방식의 기고를 하는 방법은 쉽게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이 두 사람의 선택은 ‘해프닝’으로 끝낼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 앞으로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는 남는다.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몇 개의 칼럼을 보면 보수세력이 갖고 있는 외교 논리의 허약성이 드러난다. 조선일보는 <인민일보에 실린 두 한국인의 사드 반대론>이란 제목의 글에서 중국 외교가 일방주의에 경도되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을 제기했다. 이날 지면에는 김대중 고문의 <대한민국의 선택>이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렸다. 중국, 일본 등이 일방주의와 고립주의 노선을 걷는 상황에서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화끈하게 미국과 일본의 손을 잡고 중국에 맞서자는 이야기다.

조선일보 1일자 칼럼

각국이 서로 ‘편’을 짜서 대립하는 구도로 이 문제를 본다면 그런 해법 역시 선택의 하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행위가 동아시아를 사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움직일 수 없는 구도는 각국의 군사적 대립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군비경쟁을 재촉할 것이다. 국민의 삶에 한정된 자원이 투입되기 보다는 허구적 대립을 지탱하기 위한 비용이 훨씬 더 많이 소모될 거고, 자칫 잘못해서 실제로 무력충돌이라도 일어나면 어떤 국가에 소속돼 있든 가장 힘없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사드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그런 현실을 예고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보는 것은 성주의 군민들이다. 그게 사드 포대에 대한 유무형의 직접적 피해든, 어떤 낙인효과든, 심리적 불안감이든 간에 그들이 원하지 않는 희생을 떠맡게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가 대 국가의 대립구도로부터 불거진 부정적 효과를 권력자들이 아니라 평소 중앙정치에 개입할 힘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낙후된 지방이 짊어지게 된 셈이다. 강자의 이익을 위한 정책의 책임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게 오늘날의 체제가 주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이 이득을 보는 방식으로 풀기 위해서는 국가 대 국가 간 대립의 구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내에서 정치의 가능성을 묻는 것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수차례 강조한 바 있는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 모색도 그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이미 실패해 남북관계 개선은 앞으로 더 어려운 과제가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에 들어설 정권이라도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남북관계를 구실로 외교적 주도권을 회복해야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관점으로 문제제기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국가주의라는 틀을 우선 탈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선일보 1일자 지면 칼럼

그러나 보수언론의 인식을 보면 보수세력이 이런 중차대한 과제를 맡을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단적으로는 오늘 조선일보의 지면의 다른 글에서도 문제적 인식을 찾아낼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신동흔 문화부 차장이 쓴 <인천상륙작전과 ‘국뽕’>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는데, 이 글에서 쓰여진 바를 보면 보수세력이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글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국제시장, 연평해전, 명량 등의 영화가 ‘국뽕 마케팅에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 글에서 “한쪽에선 국뽕이라고 나라를 비하하고, 한쪽은 사리사욕을 위해 자기 지위를 이용하는 사이 우리가 지켜야 할 그 나라는 어디로 갔는지 답답하다”면서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는 오히려 이런 나라의 ‘의미 찾기’ 차원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는데, 이건 오히려 이 영화가 ‘국뽕 마케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주장이다.

조선일보가 “잘 만들었건 못 만들었건 유독 북한과 벌인 전쟁, 남북 대립이 선명한 특정 계열 영화만 국뽕 운운하는 것도 또 다른 천편일률”이라고 하는 걸 봐서 ‘국뽕 마케팅’이란 용어를 이른바 ‘종북주의자들’이 고안한 것으로 보는 모양인데, 오히려 이 용어의 시장주의적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라는 어떤 상품이 그 자체의 고유한 내용으로 시장가치를 평가받지 못하니 ‘국가주의’라는 다른 이념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국가는 자본의 부당한 이익을 보전해주기 위해 동원되는 구실일 뿐이다. 즉, ‘국가적 가치의 추구’는 어느 관점으로 보더라도 국민을 속인다는 게 요즘 세상의 통찰이다. 그 속임수를 통해 이득을 보는 존재는 결국 영화를 팔아 돈을 버는 자본, 즉 지배계급일 것이다.

지금 보수정권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불거지는 모든 일들이 이런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 우병우 민정수석과 진경준 검사장 문제, 고위 공무원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 김영란법에 대한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운 반대 논리 등이 다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이 어디로 갔는지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사건이나, 이날 몇몇 일간지들이 보도한 ‘박정희 찬양 보고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880만원의 비용으로 용역을 준 결과물인 이 보고서는 ‘헬조선’의 돌파구로 새마을운동과 신상필벌의 리더십, 강한 컨트롤타워 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대통령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지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조선의 대안이라는 얘기인 셈이다. 과연 그런가? 이게 보수세력이 그토록 강조하는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의 실체이다.

앞서 ‘해프닝’으로 끝날 일로 평가하기는 했지만, 두 한국인의 중국 관영언론의 사드 기고 논란에서 굳이 교훈을 찾자면 기만적인 국가주의적 도식에서 이제는 빠져나올 때가 됐다는 점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지배층이 국가를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인식을 더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지배층 또는 북한을 지배하는 유일한 강자 모두에게 사드는 그저 구실일 뿐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실질적 이득이 되는 국가적 정책의 수립이 절실하다. 대안을 말하는 야권도 이제는 총체적 인식을 갖고 이런 측면에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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