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 총선 결과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승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클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여당 출신의 인사로 ‘경제민주화’라는 개혁적 브랜드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에 집중된 이른바 ‘스윙보터’들의 표심에 긍정적 영향을 발휘했음이 사실이다. 김종인 대표가 선거에서 이런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게 장기적으로 우리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장담키 어렵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 역시 김종인 대표의 입장과 역할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데, 그러다보니 결국 또 김종인 대표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갑론을박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1일 KBS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해 주장한 바도 그렇다. 박병석 의원은 김종인 대표의 사드에 대한 입장을 ‘전략적 모호성’으로 규정하고, 이런 태도는 수권을 지향하는 정당으로서 당당하지 못한 거라고 주장했다. 또, 박병석 의원은 중도층의 지지가 이런 모호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희망을 제시하고 실천을 할 것이냐의 문제라고도 했다.

김종인 대표에 대한 보수언론의 태도를 보면 박병석 의원의 진단에 일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느끼게 된다. 중앙일보는 이날 지면에 강찬호 논설위원이 쓴 <더민주에 김종인이 필요한 이유>란 글을 게재했는데, 이 글만 보면 마치 더불어민주당의 모든 문제를 김종인 대표가 해결한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다.

중앙일보 1일자 칼럼

중앙일보는 이 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오로지 이익만을 좆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의 정치를 해왔는데, 김종인 대표 나름의 고집스런 성향이 이를 교정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김종인 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등장할 당권주자들이 모두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도로민주당’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친노 문재인’의 대권주자 등극으로 가는 뻔한 상황이 이어질 거라는 취지의 주장을 썼다.

이런 식의 주장은 다른 보수언론에서도 반복된다. 조선일보는 이날 <외면받는 與野 전당대회, 그 의미 결코 가볍지 않다>란 제하 사설에서 “더민주당은 이번 전대를 통해 수권 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 승리 이후 더민주당 김종인 대표, 우상호 원내대표 체제는 나름대로 그런 노력을 해왔다”면서 “편 가르기,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 햇볕정책과 같은 운동권식 행태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또 “하지만 더민주당의 다수는 여전히 낡은 운동권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면서 “당 대표 후보들의 주장이 점점 과격해지는 것도 당내 다수의 생각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1일자 사설

즉, 더불어민주당의 문제적 정치행태는 운동권과 과격파 친노-친문 세력 때문이고, 김종인 대표가 그들을 제압하여 그나마 나은 정치를 하게 됐다는 게 보수언론의 시각이다. 특히 이들이 중점적으로 언급하는 건 사드 배치 문제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적 모호성’이 김종인 대표의 ‘불가피론’과 당내 일각의 긴장관계 문제로 보는 게 옳기 때문이다. 김종인 대표는 박근혜 정권이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내린 시기에도 북한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북문제에 대한 보수적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이는 분명 당시도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종북 공세’를 무력화시켜 앞서 언급했듯 총선에서의 긍정적 효과를 낸 게 사실이다.

특히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국민의당이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고, 나름대로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해 선명성을 내세우는 것은 어렵다. 이렇다보니 안철수 전 공동대표라는 다소 중도적 인물을 앞세우고 있는 국민의당이 대북문제에서 의외의 선명성을 보여주고, 보수언론의 표현에 따르면 운동권 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대북문제에 있어서 의외의 온건함을 보이는 기이한 구도가 형성됐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면 이해하지 못할 구도가 아니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간의 정치 과정에서 참여정부를 계승하겠다고 주장하는 세력과 결별했기 때문에 국민의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이롭다. 또, 더불어민주당 역시 특히 보수언론을 통해 제기된 부당한 프레임을 벗어나고 중도층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김종인 대표를 붙들고 ‘중도화’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

문제는 정치세력들의 이런 태도가 우리 정치에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 대표로 상징화되는 이 논란은 결국 정치에 대한 냉소적 인식을 강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보수언론이 끊임없이 ‘더불어민주당의 진심’을 의심하는 게 그렇다.

이 문제를 다루는 보수언론의 태도는 마치 더불어민주당의 내심은 운동권의 폐해를 반복하는 것이나 오로지 정치적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 그걸 참고 김종인 대표를 용인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을 인식하게 한다. 김종인 대표 체제가 벌써 7개월 이상 이어지고 있는데, 보수언론은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의심’만 하고 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동안에는 영원히 ‘의심’을 하고, 다소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순간 ‘그러면 그렇지’라는 태도로 돌변할 것이다. 즉, 보수언론이 상정하는 구도 안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영원한 거짓말쟁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일반론, ‘정치에서 명분과 당위는 중요치 않고 오로지 사익추구만이 진실이다’라는 명제에 부합한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보수언론의 이런 주장과 관점은 불공평하고 부당하다. 그러나 뒤집어서 말하면 이게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의 ‘중도화’를 보는 일부 사람들의 시선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물론 진심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지 않은 선호가 작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 신뢰를 주지 못하는 현실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신뢰는 예를 들면 더불어민주당이 아예 한반도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거나 북한붕괴론에 기반 한 외교정책을 입안한다거나 하는 선택을 적극적으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형성되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수권능력’을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서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내겠다는 비전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수권능력이란 결국 나라를 잘 다스리는 능력을 말하는 것일 게다. 정부 여당이 무능하니 수권능력 대한 대중적 갈증이 표출될 수밖에 없고 야당이 여기에 부합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집권 여당 내에서 ‘유사-정권교체’에 기댄 전술이 작동하기 시작할 경우 무능한 집권세력과 수권능력을 가진 야당이라는 구도는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가치와 비전의 경쟁이 되는데, 이는 전적으로 대권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까 좌클릭이나 중도화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전망과 비전이 있고 이것을 내보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면 단기간에 전술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는 아무 문제도 안 된다. 그런데 현재 김종인 대표를 둘러싼 논란은 이 준비가 충분한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김종인 대표는 ‘대선 플랫폼’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분칠’이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한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즉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 이를 이뤄낼 수 있는 고리를 움켜쥐고 가야 ‘플랫폼’ 역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다가오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이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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