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용산 참사’ 현장인 서울 용산로 4가가 모처럼 들뜬 분위기다. ‘단결 투쟁’ 조끼를 입은 철거민들이 주변 지역 상가들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시루떡을 돌리고 있다. 남일당 건물 뒤편에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막걸리도 한 잔씩 돌아갔다.

▲ 3일 열린 '레아'오픈과 촛불미디어센터 개소식ⓒ정영은
호프집 ‘레아’가 새롭게 ‘오픈’하는 날이란다. 이 건물 2층에는 ‘촛불방송국’과 ‘촛불미디어센터’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 인터넷 생중계 등으로 ‘거리 민주주의’를 알리던 ‘촛불미디어’들이 다시 모여 사랑방을 꾸리게 된 것이다. 호프집 ‘레아’는 지난 1월말 용산 4구역에서 숨진 고 이상림씨와 구속된 이충연 용산4구역 철대위 위원장이 운영하던 곳이다.

용산에 모여든 ‘촛불 미디어’들은 어느새 잊혀지고 있는 용산 참사현장을 직접 알려서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포부다. 촛불시민연석회의(가)와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 용산4가철대위, 전철연 등이 함께 추진했다. 노동자영상패 ‘씨’, 이주노동자방송 ‘MWTV', 전국미디어운동네트워크, 누리꾼TV 등도 힘을 보탰다.

촛불미디어센터에는 십시일반 모인 컴퓨터와 촬영 제작장비, 간이 스튜디오 등이 있다. ‘종일 개방’을 목표로 자원자들이 상주할 것이라고 한다. 철거민이 직접 참여하는 용산4가철거민방송(영상과 라디오), 해외에 알리는 용산다국어뉴스, 촛불뉴스 등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이외에도 독립영화 정기상영회와 용산4가 폭력감시 영상단 활동, 미디어제작 교육 등을 준비중이다. 인터넷 시설도 구비해 취재진들의 프레스룸 역할까지 맡게 된다.

▲ 레아 2층의 '촛불미디어센터'ⓒ 정영은
▲ 레아 1층의 '갤러리 레아'ⓒ 정영은
촛불미디어센터의 아래층은 용산참사 지역의 문화공간 ‘갤러리 레아’로 새롭게 단장했다. 촛불미디어센터 개소식에 맞춰 3일부터 시사만화전 ‘용산 GaJa! 展’과 용산참사 관련 회화사진조각 등의 미술작품 전시를 시작했다. 이날 하루는 오픈식과 함께 ‘용산에 가면 시대가 보인다’는 주제로 철거민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 출판 기념회, 책 사인회, 연극제 등 문화행사가 연달아 이어졌다. 홍석만 용산참사범대위 대변인은 “재개발 아픔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촛불미디어센터 오픈식에는 용산4가철거민들과 유가족들, 문화예술인들, 미디어활동가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1인 미디어 등이 한데 모여 막걸리잔을 들고 축하를 나눴다. 문정현 신부 등의 축하말씀과 함께 노래와 춤 등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개업식에 걸맞게 케이크 커팅식도 했다. 건배에 앞서 정영신 레아 주인(이충연 용산4가철대위원장의 부인)은 “경찰과 용역 때문에 우리 가족이 손수 일궈온 꿈의 공간이 무너졌다. 그래서 다시는 오기 싫은 곳이었다”면서 “희망을 꿈꾸는 곳으로 새롭게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 절대 문 안 닫겠다. 용산참사의 상황을 많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 김준호 영화감독(푸른영상)ⓒ 정영은
카메라를 들고 이날 개소식 장면을 찍는 사람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독립다큐영화 ‘길’을 제작한 푸른영상의 김준호 감독이었다. 지난해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작이기도 했던 ‘길’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대추리 주민들의 사연을 담은 작품이다.


김준호 감독은 이번에 촛불방송국에서 ‘용산4가철거민방송’의 촬영 파트를 맡았다고 한다. 촛불방송국에 참여한 계기를 물으니 김 감독은 “아직까지 장례도 못 치른 상태로 외롭게 싸우고 있지만, 정말 많이들 모르고 계신다. 당장 뉴스로 알려내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한 명이라도 더, 용산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촛불방송으로 뜻있는 분들이 더 많이 모여서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투쟁 당시에도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들소리 방송’을 만든 경험이 있다. 그는 현재 독립다큐 ‘대추리전쟁’을 만든 정일건 감독의 대추리 관련 후속 작품에서 조연출을 맡고 있기도 하다. ‘용산 철거민방송과 병행하기에 벅차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촬영할 사람이 없어서 달려왔다”면서 “가슴이 답답한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라고 답했다.

오는 10일 제작하는 ‘용산4가철거민방송’ 1호는, 이날 인터넷으로 제작 전과정이 생중계된다고 한다. 김 감독은 “철거민분들에게 방송 진행(MC)을 부탁드렸더니 참 좋아하시더라”면서도 “용역직원들이 상시거주하면서 곳곳에서 철거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 제작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어제(2일)도 참사현장의 간이화장실과 추모 조형물 등을 구청에서 철거해간 터라 분위기가 좋지 않다. 부디 불상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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