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재훈이 ‘비호감’의 대명사가 된 것 여전히 조금 ‘아햏햏’한 일이긴 하다. 그는 MC가 되기 전, 연예계에서 가장 ‘재능 있는 게스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매력은 무심함에 있었다. 유재석의 다정함과 강호동의 장악력이 예능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기 전에 그는 웃음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 독특한 ‘멋쩍음’으로 우뚝 솟았던 봉우리였다. 정말 KBS 연예대상의 저주 때문일까? 그는 딱히 꼬집기 난감한 언젠가부터 침체되었고, 식상해졌다. 그는 분명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버라이어티의 한 ‘브랜드’이자만, 더 이상 ‘트랜드’가 되기는 어려워진 MC일까? 혹은 급변하는 예능의 악조건에서 여전히 한가롭게 쟁투하고 있는 독특함일까?
어찌되었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컨츄리꼬꼬’의 상품성이란 가히 극악한 것이었다. ‘김미김미’, ’오해피’, ‘오가니’, ‘어이해’, ‘Oh, My Julia’, ‘콩가’ 등 매 앨범 히트를 기록했던 타이틀곡은 물론, ‘미련’, ‘애련’ 등의 히든 트랙까지. 대중적 감수성에 부합하는 멜로디를 전달하는 가수로서의 그(들)의 재능은 그 자체로도 훌륭했다. 물론, 그때도 그 목소리보단 안무가 더 주목을 끌었고, 또한 그 안무보단 퍼포먼스와 말솜씨가 더 뛰어났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2003년 컨츄리꼬꼬 해체 이후, 탁재훈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능적 재능으로서의 그것이었다. 2004년 그는 <본격심리버라이어티 쇼>를 통해 버라이어티 MC에 도전했고, 동시에 에스파파(S.papa)라는 솔로 활동, <누구나 비밀은 있다>로 영화도 시작했다. 물론, 무엇하나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잠재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여실히 확인되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5년은 그야말로 탁재훈의 해였다. <가문의 영광> 출연을 통해 그는 가능성 있는 코믹 배우로의 안착에 성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해 <상상플러스>를 통해 진정한 예능계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당시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에게 헌정된 유행어 패러디 음반을 살펴보면, 그가 그 해에 유행시킨 유행어의 갯수가 6~7개에 달한다.
2005년에서 2006년에 이르는 탁재훈의 전성기는 동일한 패턴과 리듬감을 갖는다. 그는 자기 외의 것들에 무심하다. 스튜디오 녹화에서조차 그는 게으르다. 카메라 순번이 돌아와야 발동을 걸고, 다른 이에게 카메라가 비출 때는 결코 예민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안 되겠네~’, ‘얘 뭐야~’, ‘장난쳐’, ‘아우 머리 아퍼~’까지 그가 빵빵 터뜨리던 것은 결국 투덜거림이었고, 핑계였고, 볼멘소리였다. 그는 게스트를 윽박지르지 않았고, 프로그램에 강박적이지 않았고, 게다가 핸섬하면서 스스로 웃길 수도 있는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어쩜 지금 탁재훈은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는지 모른다. 어제의 버라이어티 장르에 머물 것이냐, 오늘의 리얼리티로 뛰어들 것이냐. ‘대망’은 그 갈림길의 이정표이다. 탁재훈이 비호감의 대명사로 예능계 지배력을 잃는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 진부함보다 훨씬 빛나는 능력이 분명 그에게 있다. 지난주 ‘대망’은 안타까웠다. 콘셉트는 분산되어 있었고, 포인트를 찾기도 어려웠다. 악다구니에 기반하지 않는 탁재훈의 웃음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하겠다. 그는 ‘재능있는 MC’ 탁재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