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생각을 별로 기대하지 않은 이로부터 듣게 될 때 묘한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어제 그런 경험이 찾아왔다.

”2014년 10월 24일, ‘대장금’의 스타 이영애는 홍콩의 ‘명보(明報)’와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인터뷰에서 이영애는 '민주화가 한류의 성세(盛世)을 만들었다. 한국은 1998년부터 민주화가 시작돼 금기를 타파하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어 한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에 최근 실린 ‘한국 사람들만 모르는 한류 열풍과 반한 감정의 경계’라는 제목의 칼럼의 일부이다. 왕치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2014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회 보고 과정에서 ‘중국은 왜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작품을 못 만드느냐?‘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한국의 여배우 이영애씨의 이 인터뷰 내용이야말로 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었다는 것이다.

이영애씨의 이런 깨어있는 인터뷰 내용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지를 ‘네이질’(네이버 검색)을 하면서 열심히 뒤져봤지만 못 찾았다. 때는 2014년 10월, 현 정권과 민주주의의 친화성이 그리 돈독하지 않음이 차츰 드러나는 시기였다. 몰라서 안 쓴 국내 언론들도 있겠지만, 알고 안 쓴 언론들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볼 따름이다.

한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류가 일어난 배경에 민주화가 있음은 한두 번쯤은 들어봤던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민주화가 이 나라의 젊은층을 적신 ‘자유주의 세례’의 효과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이명박 정권과 현 정권을 거치며 내게는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의 인프라’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BBC 월드 홈페이지 캡처

이영애발 뒤늦은 소식을 읽고 내친 기분에, 지난 3월 BBC가 방송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한국, 조용한 문화강국’을 다시 들어봤다. 이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내용은 뻔해 보인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자유와 부가 자리잡으면서 경제기적을 이끄는 데 도움을 준 순응성을 벗어나 한국인들이 어떻게 시끌벅적하고(raucous) 개인적인 문화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찾는다”라고 안내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1, 2부를 모두 들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 꽤나 있다.

다큐 진행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이자 중국연구센터 주임인 라나 미터(Rana Mitter)가 맡았다. 동북아 역사와 정치 지형에 밝은 인물이다. 진행자는 한국 영화와 텔레비전, 소설 등을 통해 한국인의 “무력감”(powerlessness)을 주요 주제로 분석한다. 중국이나 일본, 미국 등 주변 강대국의 변덕에 대한 ‘무력감’이 하나요, 한국 자체 독재자들의 변덕에 대한 ‘무력감’이 두 번째다. 그러면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도입하며 문제제기를 한다. 칼 군무니 SM이니 하는 상징에서 보이듯 K-POP이 중앙집권화한 기업과 사회적 순응주의의 엄격한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라면 싸이의 강남 스타일과 같은 게 어떻게 나왔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서울의 특정지역에 특화한 풍자와 엉뚱함이 어떻게 미국 시장과 같은 곳에 진출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러면서 서울의 실험적인 음악 현장에서 K-POP의 다른 모습을 찾는다. 낮에는 정치학도, 밤에는 음악도인 젊은이를 인터뷰한다. 거기서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각종 사회적 압력에 지배받는 현대 한국이 등장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직업 경쟁의 압력, 젊은층에게 어떤 권한도 넘겨주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지배 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서 내게는 아리송한 일종의 퀴즈가 등장한다. 실험적인 음악뿐 아니라 많이 상업화하고 기업화하기는 했지만 지드래곤 등에게서도 “도발적이고"(provocative) ”거친“(rough)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K-POP보다는 7080이 좋은 처지로서는 알쏭달쏭할 따름이다.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건 다큐 진행자가 “날의 거침(the roughness at the edges,)이야말로 자신의 문화에 진정으로 글로벌한 존재감을 주기 위한 한국의 최선의 희망일지 모르겠다”는 말로 끝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세대를 향한 다양한 사회적 압력과 지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발적이고 거친 몸부림이 아직 오지 않은 K-POP의 진정한 글로벌 존재감일 것이리라는 전망일 것이다. 이것이 K-POP이 다른 세계와 교감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라고 넌지시 내비치기도 한다. 그렇게 될 때 서구에서도 K-POP은 다큐 진행자의 표현처럼 “해변의 파도소리”에 그치지는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알쏭달쏭한 퀴즈에 대해 일종의 감을 잡으려고 해봤다. 온갖 사회적 압력과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의 날 것을 세련된 치장으로 너무 물들이지 말라는 경고로 말이다. 다른 장르인 영화에서 빌려오면, 날 것의 생생함이 없는 배우 유아인의 매력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는 그렇게 다가온다.

거시적으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세례, 사회적 압력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그 속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미시적으로는 거칠고 도발적인 날 것의 생생함. 뒤늦게 읽고 들어본 한류에 대한 시각에 대한 해석이 약간의 설명력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긴 글을 마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