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노동조합들이 집회, 가두시위, 노숙농성을 하면 보수신문은 “노조의 불법시위로 도심 교통이 마비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거나 “음주와 고성방가 때문에 지나가는 시민들은 눈쌀을 찌푸렸다”는 식으로 왜곡하거나 꼬투리를 잡는데 혈안이다. 보수신문에서 익히 봐왔던 레퍼토리다. 그런데 25일자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사설은 다르다.

25일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주말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여의도 국회 앞, 서초동 삼성사옥 주변에서 열린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결의대회,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금속노조 문화제를 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요컨대 이렇다. ‘재벌 대기업에 다니며 연봉 9700만원씩 받는 귀족노동자 당신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 한다!’ 여기까지는 익숙하다. ▶바로가기: <청소 따위는 하청주면 그만이라는 귀족노조 집회>

“이날 행사를 보면 과연 이들이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행사 참석자 중 상당수는 파업 중인 현대·기아차 및 한국GM 노조 조합원이었다고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은 대표적 재벌회사 근로자다. 특히 현대차 노조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언급했듯이 평균 연봉 9700만원에 자녀 세 명의 대학 등록금까지 받는 귀족노조, 재벌노조의 전형이다.”

문제는 여기다. 이 신문은 “광화문 행사에는 유명가수들을 불렀고 500만원을 들여 전문 청소 용역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집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집회 뒷정리 같은 허드렛일은 하청을 주면 그만이라는 귀족노조의 단면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라고 썼다. “그런 이들이 재벌독식 운운하며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니 손가락으로 자기 눈을 찌르는 일”이라는 게 한국경제신문 주장이다.

이 신문은 노조에 이렇게 묻기도 했다. “재벌사 귀족노조로 누려온 고임금과 복지혜택을 반납하고 스스로 개혁 대상이 되겠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저지해 협력업체의 희생을 담보로 기득권을 더 키워보겠다는 탐욕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 이중삼중으로 만들어 놓은 노동3법의 보호장치가 필요한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기권 장관 말마따나 상위 10%에 해당하는 소수 귀족노조의 파업은 90%에 해당하는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행위다. 재벌독식이 아니라 귀족노조의 독식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주말의 광화문 행사는 노동개혁이 왜 절실한지 잘 보여준다.”

한국경제신문 사설은 보수언론의 평소 논조보다 훨씬 세고 문제가 많다. 우선 간단한 것부터 교정하자. 이 신문은 노조가 행사에 유명가수를 부르고 500만원을 들여 청소용역업체에 현장 정리를 맡긴 것이 불만인 것 같다. 트집잡을 게 그리도 없었을까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한국경제신문 창간기념행사야말로 진정 화려하지 않았나. ▶관련기사: <언론 재벌 청와대 그리고 VIP까지 모인 ‘소공동 반상회’>

괜한 것으로 트집을 잡다보니 논리의 스텝이 더 꼬인다. 한국경제신문은 노동법이 돈 많이 받는 노동자들까지 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법과 상식에 반하는 선동이다. 노동에 대한 권리들은 헌법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것이고 앞으로 확장해야 할 지점이 많다. 그런데도 이 신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격차의 문제를 만든 것이 정규직 노조라고 거짓말을 한다. 전국경제인연합 소속 기업들이 자신의 주주라서 이런 허황된 주장을 끊임없이 쓰는 것인가 묻고 싶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규직 노조를 때려잡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한국경제신문은 또 틀렸다. 금속노조 집회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사옥 주변에서 열린 이유는 바로 ‘협력업체’인 유성기업에서 일어난 노조 탄압 때문이다. 금속노조 행사가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열린 이유는 그곳이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농성장이며 간접고용 노동자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이기 때문이다. 재벌 대기업에 다니면서 평균 연봉 1억원을 받는 귀족 재벌 노동자들은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산재 피해자들의 투쟁현장을 찾아간 것이다.

노조, 사회운동, 정치에 대한 혐오를 키우는 이런 언론에게는 이중삼중으로 만들어 놓은 언론의 자유 보호장치가 필요한지 의문스럽다(고까지 주장하고 싶을 정도다). 한국경제신문의 사설은 ‘대기업 정규직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노동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차별과 격차는 바로 재벌과 보수언론이 조정하고 통제하고 유지하고 싶은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가리킨다. 한국경제신문의 사설은 재벌개혁과 언론개혁이 왜 절실한지 잘 보여준다. 재벌과 언론은 노동자를 차별하고 착취하면서, 그리고 자신과 개·돼지 간의 격차를 늘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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