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그대로 축소한 SBS <인생게임-상속자>가 2회로 마무리되었다. 한정된 조건 속에서 가장 많은 코인을 획득한 인물이 최종 상금 천만 원을 차지한다. 상속자와 정규직, 그리고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벌인 이들의 게임에서 최종 승자가 현실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어려움 없이 살았던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라는 사실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결과;
천민자본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 해법 보이지 않고 공고해진 계급의 성만 돋보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전 제작진이 만든 색다른 형식의 <인생게임 상속자>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를 축소한 게임이었다. 거대한 별장에서 벌어진 그들만의 게임은 잔인할 정도로 우리의 사회를 그대로 닮았다. 게임은 복불복으로 금수저를 뽑아 첫 상속자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단한 뭔가를 가진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 오직 운으로 만들어진 상속자 게임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신보다 더 위대하다는 건물주의 시대. 상속자가 되지 않는 한 부자가 될 수 없는 이 기묘한 세상에서 상속자는 신과 동급이다. 그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쥐게 된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

상속자는 거주비와 음식 등 그 공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자신의 수입으로 만들 수 있다.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며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그 누구보다 많은 코인을 벌 수 있는 상속자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문제는 그 상속자 자리가 매일 바뀔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상속자와 집사,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그들의 계급은 한 번 정해지면 절대 변경될 수 없다. 5:4로 나뉜 그 신분의 경계는 공고한 벽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속자와 집사, 정규직으로 나뉜 다섯 명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단단한 연대를 구축한다.

비정규직 4명 역시 연대하지 않으면 결코 이 판을 깰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첫 날 비정규직으로 확정된 그들은 연대를 준비하고 한 명을 상속자 후보로 내세워 새로운 판을 만들려 했다. 그리고 정규직 중 막내 여대생을 섭외해 판을 뒤집으려 했지만 그들의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권력과 자본의 맛에 빠진 이들의 연대는 공고했기 때문이다. 너무 공고해 흔들 수 없는 그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중간에 행해지는 게임의 결과였다. 게임에서 우승한 비정규직은 자신의 권리를 이용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고 이를 이용해 판을 흔들려고 하지만, 이미 공고하게 구축된 판은 이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든다. 다시 상속자를 그들이 원한 이들로 바꾸면 틀어졌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틀은 원상복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

평범했던 게임은 여대생 샤샤샤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지독한 가난과 맞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는 그녀는 천만 원이 걸린 이번 게임에서 꼭 승리하고 싶었다. 학자금 대출 1500만 원 중 천만 원만 갚아도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샤샤샤는 악착같이 우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상속자는 다음 상속자에게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나눠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조세회피처로 돈을 빼내면 남은 돈만 나눠도 되는 원칙이 있다. 샤샤샤는 자신의 집사였던 네버다이에게 제안해 어렵게 모은 코인을 빼돌린다. 우직했던 네버다이는 자신이 모두 가져도 되는 코인을 약속대로 다음 상속자가 나온 직후 샤샤샤에게 다시 양도한다.

샤샤샤는 이 방식으로 비정규직으로 내려가게 되지만 후회는 없다. 어차피 게임은 흘러가고 남은 일정이 적은 상황에서 악착같이 코인을 모으면 우승은 그만큼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샤샤샤의 행동에 분개한 다음 상속자는 즉시 코인을 회수할 수 있는 방식을 선보인다.

비정규직에게 주거비를 무려 기존에 비해 세 배 이상이 뛴 10 코인을 받고, 정규직에게는 6 코인을 받는 상속자의 정책에 많은 이들은 분개한다. 비정규직은 말도 안 되게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노숙을 선택한다. 주거비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소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샤샤샤와 네버다이가 비정규직이 되면서 단단했던 동맹은 파괴되었다. 이 분열은 마지막 상속자로 내정되었던 강남 베이글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은 내부적으로 정해진 이들이 상속자를 내정 받는 시스템이었지만 둘이 비정규직이 되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

최종 승자가 결정되는 날 우승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승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다. 로또에 당첨되기도 했던 인물은 그들의 코인을 모아 우승을 노리지만 분열된 상태에서 이는 힘든 일이었다. 현재 시점 가장 많은 코인을 가지고 있던 샤샤샤는 다른 연대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코인을 확보하겠다고 선언한다.

샤샤샤와 연대해 15개의 코인을 받았던 네버다이는 마지막 날 세 명의 우승후보자들에게 다섯 개의 코인을 나눠준다. 비정상적으로 번 코인을 가지고 있기가 심적으로 부담이었던 그는 그렇게 무상으로 나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 했다. 네버다이는 어쩌면 <인생게임 상속자>의 진짜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그는 현재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우승을 하겠다는 거대한 목표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 청춘과 같다.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코인으로 식사는 꼭 해야 하고, 적당히 타협적이면서도 나름의 정의감도 있어야 한다. 골치 아프게 살 필요 없이 현재를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네버다이는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싶은 가장 큰 가치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밤을 새우며 구슬 팔찌를 만들어 겨우 다섯 개의 코인을 확보한 샤샤샤는 지독할 정도로 노력해 우승자가 되고 싶었다. 중간 게임에서도 악착같은 모습으로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승자가 된 샤샤샤는 카드를 뽑은 후 하염없이 울었다.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카드를 얻었지만 그녀는 반갑지 않았다. 다시 상속자가 되거나 로또가 나와 코인을 얻지 않는 한 그녀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코인을 확인하는 순간 의외의 인물이 승자가 되었다. 그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던 강남 베이글이 압도적인 코인으로 승자가 되었다. 공고했던 연대가 깨지고 우승자를 나누는 과정에서 혼란이 가중되면서 정규직은 강남 베이글에게 코인을 몰아 샤샤샤의 우승을 막았다.

SBS 파일럿 프로그램 <인생게임-상속자>

가난한 여대생의 꿈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우승자가 되기 위해 배신도 하고 악착같이 밤새워 일도 하고 밥까지 굶어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우승과 상관없이 재미있을 것 같아 즐기러 참여한 재벌 3세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단 한 번도 정규직에서 밀려난 적 없고 평탄한 생활을 하던 그는 자신에게는 간절하지도 않은 천만 원의 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인생게임 상속자>의 결과는 섬뜩하게 다가온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진 자를 이길 수 없음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실 속 거대한 부를 누리고 살아왔던 강남 베이글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그는 그 여유를 무기로 인간관계를 안정적으로 이어갔고 그 결과 최종 승자가 되었다. 게임은 짧고 현실은 길다. 그가 엄청난 자산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임 참여자는 자연스럽게 그를 향할 수밖에 없다.

빚만 가득한 25살 휴학생에겐 그런 여유가 존재할 수 없었다. 여유롭게 인간관계를 맺으며 우승을 하기에는 나이도 어렸지만 기본적으로 그럴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모든 인간관계까지 끊어가며 열심히 일해도 그녀의 미래는 암흑 그 자체였다. 우리 사회에서 부는 대물림되는 것이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샤샤샤는 최선을 다해 우승 가능성에 근접했지만 최종 승자가 아닌 이상 무의미한, 2위에 그치고 말았다. 모든 것을 던지고 최선을 다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은 강남 베이글의 여유를 이길 수는 없었다. 게임은 그저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게임 상속자>의 최종 결과는 잔인한 우리 현실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섬뜩하기만 하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