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민정수석을 둘러싼 추문이 심상찮다.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상속세 문제를 넥슨이 부동산 매매를 통해 해결해줬고, 이 과정에서 진경준 검사장이 중간다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사실이라면 기업이 현 정권 실세의 세금을 대신 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할래야 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조선일보는 18일에 이어 19일 지면에서도 우병우 민정수석과 넥슨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에 대한 내용을 1면 보도했다. 18일과 19일의 상황이 다른 점은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는 언론이 조선일보 뿐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의제설정 능력이 빛을 발한 대표적 사례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조선일보는 18일 해당 사안을 보도하면서 사설면에 특별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으나 19일에는 <靑 실세 처가와 넥슨 수상한 땅거래, 어떻게든 眞相 밝혀야> 제하의 사설에서 “우 수석 말대로 땅거래 의혹이 별게 아니라면 본인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고소를 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게 되어있다”면서 현직 민정수석을 검찰이 수사하는데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가 고소를 하면’의 목적어는 조선일보일 것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전날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19일자 사설

우병우 민정수석이 이례적으로 신속한 해명을 내놓았기 때문에 이날 보수언론의 지면은 ‘칼’을 마구 휘두르기 난감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검찰은 이번에 우 수석 관련 의혹을 덮는다고 해도 정권이 바뀌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도 썼는데 다시 말하자면 이 사안을 선도적으로 보도한 자신들이 결국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도 된다. 우병우 민정수석을 굳이 ‘실세’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중앙일보의 지면을 보면 이들이 상당히 ‘몸조심’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달돼온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에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뉴스를 사이드톱으로 밀어냈다. 머리기사는 김수남 검찰총장이 진경준 검사장의 신분과 불법수익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4, 5, 6면(사회면)에 잇따라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걸 볼 때 이 날 중앙일보의 1면 편집은 상당히 소극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 19일자 1면 (붉은색 표시는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기사 배치 부분)

특히 이날 중앙일보 1면의 우병우 수석 관련 기사 제목이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 땅 의혹 보도 민·형사소송 제기>인 걸 보면 그렇다. 중앙일보 기사들의 이날 논조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부동산 거래에 대해선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석연치 않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건물 매각 과정> 제하 사설에서도 이런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1면 기사 배치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입장을 배려한 편집의 결과인 것으로 비춰진다. 보수언론이 이 문제를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아일보 19일자 사설

물론 개중에는 용감한 신문도 있다. 동아일보는 이날 4면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진경준 검사장 인사 과정에서 경찰이 제출한 인사자료를 배제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드러내 주는 또 하나의 정황이다. 사설면에는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하고 특임검사 조사받아야>, <검찰개혁, 결국 청와대 의지가 관건이다>란 제목의 사설을 각각 배치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배치는 이런 의혹을 두고 언론이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톤조절을 하고 있는 건 순전히 우병우 민정수석이 대통령이 총애하는 ‘실세’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우병우 민정수석의 ‘힘’에 대해서는 보수언론도 종종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동아일보는 올 초 몇 차례나 우병우 민정수석이 ‘실세’라는 힘을 믿고 너무 ‘나댄다’는 취지의 칼럼을 지면에 배치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VIP 관심사안’이 잘 집행되지 않으면 격한 발언으로 질타하는 일까지 있다. 한국형 양적완화를 둘러싸고 한국은행이 ‘한은의 독립’을 거론하자 ‘검찰의 독립은 없는 줄 아느냐’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며 회의 때 역정을 냈다”, “그가 술자리에서 마음이 풀어져 한 말을 전하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도 있다”, “검찰 인사 때마다 ‘우병우 이름 석 자’가 화제다”, “급기야 ‘우병우의 청와대’라는 희한한 말까지 나돈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 몇 차례나 지면에 나왔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힘을 보여준 클라이막스는 지난 2월의 국가정보원 차장 인사였다. 국내 정보와 대공 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에 최윤수 전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발탁된 것이다. 최윤수 2차장은 우병우 민정수석과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인데다 검사 시절 인사에 대해서도 ‘우병우 개입설’에 휘말린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사실상 우병우 민정수석이 주도한 인사가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렇게 본다면 결론은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정원 인사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것이고,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을 청와대가 사실상 직할통치하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 직할통치의 정점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있는 셈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정보기관 인사에 이런 식으로 개입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자리에 ‘꽂아 넣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리틀 김기춘’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경력으로 당정청에 대한 유례없는 장악력을 과시하며 ‘청와대 발 정치기획’의 핵심 배후로 늘 지목된 바 있다. 보수언론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특별히 우병우 민정수석을 총애했다는 보도를 여러 차례 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이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끼고 그 아래에 있던 우병우 민정비서관과 ‘다이렉트’로 대응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다. 이후 우병우 민정수석이 탄생한 것 자체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나이와 경력이 ‘기수’를 유난히 따지는 검찰조직을 다뤄야 하는 자리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다루는 보수언론이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또 그럼에도 이 문제가 정국을 좌우하는 태풍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이 작용한 결과다. 대통령이 체계를 무시하고, 자기가 신임하는 참모에게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며, 그의 전횡을 용인한 게 문제인 거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늘 이런 식의 문제제기가 따라다닌다. 정윤회, 문고리 3인방, 김기춘, 우병우 등의 키워드가 모두 ‘비선’과 비슷한 맥락으로 쓰인다.

어느 정권이나 ‘비선’은 있지 않았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비선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 정권이 없었던 게 아니다. 대통령의 측근이 그 지위를 이용해 호가호위하는 것과 체계를 무력화 하고 특정인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건 아무래도 성격이 다른 문제다. 박근혜 정권은 후자의 방식을 유별나게 취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런 특징이 언론의 문제제기 마저도 무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도 “확인이 안 된 의혹 부풀리기는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안이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비선정치를 청산하는 게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첫 걸음이다. 이를 위해 보수언론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기왕 시작한 의혹 제기를 정상적으로 끝맺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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