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에 처음 글을 기고하게 되었을 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써달라고 하셔서 생각나는 대로 작성하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갔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처음 기고한 게 2015년 2월이니 어느새 1년하고도 5개월이 흘렀는데 그동안 기회가 되면 대안학교, 중학교, 대학교, 시민단체, 노동조합 가릴 것 없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깨기, 고용허가제·출입국관리법등의 문제점, 이주노동자·내국인노동자 함께 투쟁하기 등 상황에 따라 교안을 바꿔가면서 교육을 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쉽지 않은 교육은 단연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경우이다. 그 계기는 1년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이주노조 합법화쟁취를 위한 농성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이주노조와 함께 투쟁중인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레이테크코리아분회 동지들과는 하루 종일 부대끼며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그중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분이 있었던 조합원분과 출근선전전이 끝나고 커피를 한잔 하면서 뜬금없이 중학교 진로체험의 날 선생님으로 오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당시 이 더운 여름에 잠시 농성장을 벗어날 핑계로 하겠다고 한 것 같은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농성은 교육 전에 끝이 났다. 그렇게 중학생 수십여명을 대상으로 이주 관련한 교육을 진행했었다. 교육 마지막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연봉이 얼마인지, 4대보험은 되는지, 결혼을 했는지 등등 별의별 질문들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한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직업을 저희에게 추천해주시나요?" / "저는 모두가 이 일을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답을 들은 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래도 오길 잘했구나 하는 마음에 가능하면 매년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이 흘러 다시 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부푼 마음을 안고 2016년 진로체험의 날 일일선생님으로 학교를 찾았다.

사실 일일선생님으로 오신 분들 중에는 교수, 공무원, 시의원, 기자, 경찰 등 전문직이 많았고 대부분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에 계셨다. 학생들 스스로 희망하는 교실에 들어가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주노조 상임활동가라는 직업이 궁금한 학생이 얼마나 있을까 했는데 1교시에는 5명, 2교시에는 12명이 들어왔다. 작년에 경험에 비추어 짧은 35분간의 수업이지만 뭔가 흥미를 이끌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짧은 영화랑 사진들을 가득 넣은 PPT를 사용했다. 하지만 수업을 시작하기 채 10분도 지나기 전에 맨앞에서 졸고 있는 학생, 언제 끝나나 시계를 바라보는 학생, 계속 둘이서 속닥거리며 수다를 떠는 학생까지 내가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는건지 도통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렇다면 짧은 영화에 대한 소감이라도 들어보려고 했는데 몇 명 많지도 않는 학생들이 모두 내 눈길을 회피하기 바빴다. 겨우 한명이 손을 들어 이야기하는데 “그냥 그런데요”라고 해서 “그죠, 그냥 그렇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죠 하하”하며 당황하지 않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느라 진땀을 뺐다.

1교시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새로운 학생들이 2교시 수업을 들으러 찾아왔다. 다행히 1교시에 비해서 2교시 학생들은 숫자도 더 많고 관심도도 더 높았다. 어릴적에 피부색이 다른 친구와 같이 초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도 있었고 미국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을 느꼈다는 학생도 있었다. 피부색이라는 것은 사람들마다 다른데 예를 들어 크레파스에 있는 살색이라는 것도 ‘특정색깔의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 대해서만 사실과 부합하며, 황인종이 아닌 인종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헌법 제 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정권고하여 살구색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공감하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보다는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라는 말보다는 미등록노동자라고 이야기하는 개념을 설명할 때는 약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똑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관점이 다르면 쓰는 용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전달이 된 것 같았다.

어느새 2교시 수업이 끝날 즈음 5분가량 시간이 남아서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서 말을 꺼냈다. “여러분과 같은 중학생 때 일기를 곧잘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중2병이었는지 뭔지는 잘 몰라도 나중에 난 어떤 사람이 될지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 많은 상상을 했다. 만화가도 되고 싶었고 시나리오 작가도 되고 싶었고 어떨 때는 해외봉사활동을 가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조합 활동가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에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고 싶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분들 앞에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꿈을 이루는 어딘가에 와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대략 이런 얼개로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나 잘 전달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쳐주었다. 사실 나도 중학교 시절에 수업시간에 얼마나 딴짓하면서 집중을 안 헀는지 생각해보면 이렇게 앉아서 끝까지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학교를 나오면서 오랜만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내년에 또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언젠가 정말 국적, 피부색, 성별, 장애 등을 가리지 않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교육공간에서 일하게 된다면 그때는 좀더 내 꿈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던 소중한 하루였다. 꿈을 그리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는 꿈을 품고 사는 청춘들에게 추천하는 노래는 드라마 <미생>로도 유명한 이승열씨의 <비상>이다.

나는 빠져드네 꿈꾸고 있어

날아오르는 새처럼 자유롭기를

우린 언제까지나 어둠이 가로막아서도

나도 모를 눈물이 흘러도

참을 수 없는 설렘에 알 수 없는 내일을 기다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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