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일상적인 보도통제에 대한 파문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KBS는 침묵해왔다. 이제 그 이유가 공개됐다. 보도본부장이 KBS이사회에 출석해 “업무협조요청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13일 KBS이사회(이사장 이인호)에서 야당 추천 이사들은 ‘이정현녹취록’ 사태와 관련해 이사회에 출석한 김인영 KBS 보도본부장을 상대로 “2014년 길환영 사장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KBS 보도·인사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녹취록이 나왔다. 이번 사건에 잘 대응을 해야 시청자들로부터 더 신뢰받는 KBS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보도는 했느냐”고 물었다.

KBS '뉴스9'는 녹취록이 공개된지 11일이 지난 지난 11일 27초간 '공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자 KBS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11일에 보도 했다”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이 KBS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정부비판 뉴스를 “빼라”는 등의 보도통제를 한 음성파일을 폭로한지 11일만의 일이다. KBS <뉴스9>는 <나향욱 “죽을죄” 사죄…‘이정현 녹취록’ 공방> 제목의 리포트(▷링크)에서 “여야가 이른바 ‘이정현녹취록’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 음성녹취 내용 등은 보도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KBS 메인뉴스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를 은폐한 셈이다. KBS 안팎의 비판이 쏟아진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 추천 이사들은 “KBS <뉴스9> 중 후반부에 배치되고 20~30초 정도의 리포트 아니었느냐. 밖에서 이 같은 KBS 뉴스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KBS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KBS 뉴스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밖에서 어떻게 볼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KBS 보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야당 추천 이사들의 질문에 대해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편성권 침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KBS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또한 ‘이정현녹취록’에 대해서도 “앞뒤 맥락의 취지를 보면 청와대의 업무협조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협조처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재차 말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징계무효 소송 등 재판에 계류된 사건이라 보도하는데 조심스럽다’, ‘녹취록 내용이 본사에 관련돼 있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라는 등의 이유를 덧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여당 추천 이사들은 ‘이정현녹취록’에 대한 KBS 축소보도에 대해 감쌌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인호 이사장은 “KBS 내부의 시각이 다양하다. 그렇게만(보도통제)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KBS가 정치현안에 대해서 너무 민감하게 보도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정치적 현안을 보도해서 키우는 건 좋지 않다”는 등의 취지의 발언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한편, KBS이사회는 <시청자위원회 운영규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KBS를 감시·견제해야 할 시청자위원회의 위원 및 위원장을 KBS사장이 임명하다보니 실질적인 권한 행사가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사회에서 선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여당 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이사회는 여야 추천 이사들의 합의에 따라 KBS 고대영 사장 등 임원들에 “시청자위원회가 실질적 권한을 갖고 다양한 대표성을 갖출 수 있도록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월과 년 단위로 시청자위원회의 운영실적을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데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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