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여러 가지다. 시청률조사기관이 생산하는 실시간방송‧광고 시청률이 오래전부터 써온 지표라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사장 곽성문)의 프로그램몰입도(PEI)와 CJ E&M의 콘텐츠파워지수(CPI)는 달라진 미디어환경의 요소들을 접목했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연간 십억원 이상을 투입해 개발하려는 ‘통합시청점유율’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보고한 ‘2015년 시청점유율 VOD 연간 보고서’에는 각 방송사의 콘텐츠 경쟁력을 비교할 수 있는 조사결과가 들어 있다. 8개월에 걸쳐 조사한 방송사별 채널별 VOD 시청시간과 도달률 등의 자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각 방송사와 채널의 경쟁력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다. 조사대상이 본방 이후 7일까지의 VOD인 까닭에 시청자들이 ‘돈’을 지불한 방송사가 어딘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tvN의 약진이다. 조사대상 가구의 VOD 시청시간을 프로그램별로 회차별로 보면, 상위 10위는 모두 tvN <응답하라 1988>로 조사됐다. 상위 30개 중 19개가 <응답하라>, <집밥백선생>, <삼시세끼> 등 tvN 프로그램이다. MBC는 <무한도전>과 <복면가왕>, KBS는 <1박2일>뿐이다. SBS는 아예 없다. 상위 30위 안에서도 tvN 프로그램들은 도달가구가 모두 백만 이상으로 분석되는데 이는 MBC KBS의 2~3배 수준이다. 개인 기준으로 통계를 뽑아냈을 때 차이는 더 벌어진다. 그만큼 tvN 프로그램을 ‘유료’로 시청한 가구와 개인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프로그램 전체를 분석대상으로 놓으면 지상파가 우위에 있다. VOD 시청가구가 8개월 동안 시청한 VOD 시간을 가구별 평균으로 계산하면 MBC(461분), SBS(348분), KBS2(345분), tvN(251분), JTBC(114분), MBN(70분), 채널A(65분), TV조선(61분), KBS1(32분), Mnet(31분) 순이다. 그룹별로 봐도 지상파(1215분), 종합편성(312분), CJ계열(302분) 순으로 지상파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tvN이 콘텐츠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상파는 tvN에 비해 프로그램의 수가 많지만 ‘킬러콘텐츠’는 tvN이 많다. MBC가 2015년 5월부터 12월까지 서비스한 VOD는 1570개, SBS는 2375개, KBS2는 1495개, tvN은 649개다. 그런데 12월 VOD 시청시간(가구 기준)을 보면 tvN은 43분으로 MBC(56분), KBS2(47분)보다 짧지만 SBS(39분)보다 길다. 월별 시청시간 증가폭으로 보면 tvN이 지상파 채널들을 압도한다.
VOD 관련 매출도 지상파를 따라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VOD 서비스를 제공하는 케이블TV VOD에 따르면, 1분기 기준 VOD 중 방송콘텐츠 매출에서 각 사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MBC(30%), SBS(22%), CJ(18%), KBS(15%), 종편(6%) 순이다. tvN이 본방을 20%가 채 안 되게 편성(17.7%, 2015년 기준)하고, 인기프로그램 본방 직후에 곧장 재방을 내보내고, 일주일 내 5~6번의 재방을 편성하는 점은 오히려 VOD 매출에 부정적인 요소인데도 실적은 지상파 수준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상파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선택과 집중’이라는 tvN의 콘텐츠 전략이 지상파를 압도하는 상황이 됐다. 지상파의 채널접근성은 모든 채널 중 가장 뛰어나고, 지상파는 공동으로 월정액상품 같은 비즈니스를 추진하며 시장에서의 지위를 유지하려 하지만 콘텐츠 경쟁에서는 CJ E&M에 밀리는 모양새다. CJ는 올해 들어 콘텐츠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그널>, <또 오해영>, <디어 마이 프렌즈> 등은 이미 성공작으로 평가된다. 지상파와 CJ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지상파가 어떤 전략과 콘텐츠를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