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의 방송정책은 ‘매체간 균형발전’으로 대표된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TV, 그리고 위성방송 간의 매체 균형발전 전략은 비대칭 규제를 통해 지상파 수직적 독과점을 해소해 매체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과 사회적분위기 때문인지, 2000년 이후 매체별로 매출액, 시청 점유율, 시청 가구 점유율, 광고 점유율 등에서 케이블TV, 인터넷 매체 등의 약진으로 지표상으로도 지상파 독과점 구조가 매우 빠른 속도로 완화되었다. 심지어 지상파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방송환경이 변화하면서 지상파방송은 전체 유료방송 시장이나 케이블 방송에 대해 매출액 측면에서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전 국민의 약 80% 이상이 케이블이나 위성 등을 통해 TV를 시청하고 있으며, 그 비중이 점차적으로 높아지고 있어 시청자 복지 증진 및 공공서비스 확대 차원에서 공공매체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케이블, 위성, IP-TV 등 유료방송 시장은 시장에서의 경쟁이 공정한 틀에서 이루어져 시청자들이 필요로 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은 어린이, 교육, 정보 등 최소한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공익적 디지털 다채널 방송을 하도록 배려하는 등 지상파 디지털방송에 대해 사회적 가치가 소통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창조적이며 소수 장르에 속하는 프로그램을 다수 편성해 방송하도록 정책적 방안을 마련하며,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보다 많이 편성될 수 있도록 채널 제공과 재정적 안정화 대책을 수립해 지상파 방송의 공공서비스 의무를 지원해야 한다. 게다가 한미 FTA가 체결되면서 일부이긴 하지만 방송시장은 외국자본 등에 개방이 확대되면서 선정적인 외국 콘텐츠 등이 범람할 가능성이 높고,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 비용을 대폭 올릴 가능성이 큰 현실에서 전 국민이 적절한 수준의 방송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는 지상파 방송의 안정적 재원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향후 공공서비스의 실현을 위한 핵심이다. 즉, 수신료 논의를 비롯한 재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고민과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TV 수신료는 당연히 인상되어야 하며,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광고제도 개선을 포함한 재원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

과거의 방송정책의 핵심이었던 획일적인 ‘매체균형발전론’은 변화하는 방송환경에서 더 이상 최상의 가치가 될 수 없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역차별의 근거로 작용했던 매체균형발전론은 비현실적인 비대칭 규제에 다름 아니다. 유료 방송이 범람하는 현 방송 환경 속에서, 이제는 공공서비스를 수호하고 강화하기 위한 진정한 매체균형발전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할 시점이다.

최근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은 재원위기 해결을 위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공공 서비스 수호를 위한 이들의 고민은 현실적이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몸부림이다. 이를 사리사욕에 눈 먼 개별 사업자의 민원쯤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자, 방송의 공공 서비스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방송정책은 이제 공공서비스를 확대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규제 일변도로 진행되어 왔던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책을 지원정책으로 전환하고, 지상파 방송사를 최우선하는 정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민 없이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는 매우 불순하고 한국의 방송환경을 자본과 상업의 논리에 넘기겠다는 반 공공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특히, 한국의 방송정책을 총괄하는 방송위원회가 타당한 이유 없이 이러한 논의를 회피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는 특정정당이 수신료를 앞두고 벌이고 있는 행태와 동일하다. 또 다시 방송위가 자본으로 무장한 유료방송 사업자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에 우리는 방송위가 시청자 주권을 최우선시하여 공공서비스의 생존방안에 적극 나설 것을 요구한다. 이미 공공서비스를 담보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지상파 현업종사자들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방송위가 적극 나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한 계층과 논의하고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더 이상 방송위가 매체 간 균형발전이라는 허울로 지상파 방송을 정책적으로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지상파 방송은 시청자에 대한 공공서비스 제공과 변화하는 방송환경 속에서 한국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1일
한국방송인총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한국방송카메라맨연합회,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한국TV디자이너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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