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많이 헛갈린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의 결정을 앞두고, 지난 4일 SKT-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을 사실상 불허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보고서 내용을 접하고서다. 공공성과 공익성이라는 대의의 잣대로 공정위의 보고서를 환영하는 성명이나 논평을 살펴봐도 이런 헛갈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합병의 두 당사자들이야 당연히 패닉에 빠졌겠지만,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패닉에 빠졌다는 언론보도를 거의 접할 수 없는 것에도 신기함을 느낄 정도다. 부처별 소관법률의 해석이 충돌할 여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정위의 심사 내용은 방송법과 인터넷멀티미디어(IPTV)사업법과 어긋날 여지가 매우 커서다. 이들 두 법의 관련조항은 방통위와 미래부가 추진해온 정책방향이 고스란히 담긴 내용이기에 더욱 그렇다.

8개월여 전에 두 회사의 합병 추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머리에 스친 건 각기 달랐던 유료방송시장(케이블+IPTV+위성방송)을 나누는 기준이 하나로 통일되어온 과정에서 올 것이 왔다는 것이 하나요, 이런 시장 구분 기준의 통일 과정에서 형해화해 온 케이블의 지역사업면허(흔히들 전국 78개 케이블 방송권역이라 한다) 취지를 되살릴 수 있도록 지역성 구현의 책무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게 둘이다.

유료방송 시장 구분 기준은 서로 달랐다. 2015년 3월과 6월 IPTV사업법과 방송법은 각각 시간차로 전국을 권역으로 하여 케이블-IPTV+위성방송 가입자 수의 3분의 1을 넘지 않으면 된다는 쪽으로 개정됐다. 이전까지는 78개 사업권역을 기반으로 태어난 케이블의 인수합병을 활성화시키는 쪽으로 권역별 규제기준으로 완화 내지 폐지하는 한편, IPTV에 대해서는 케이블의 권역별 규제를 존치시키는 기이한 형태를 취해왔다. 따라서 유료방송시장을 나누는 기준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 과정에서 유명무실해지는 78개 사업권역(방송권역)의 취지를 어떻게 살릴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돈 되는 지역의 가입자만 열심히 확보하고 구매력이 낮은 지역은 외면하는 이른바 ‘크림 스키밍’의 문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언론보도를 보면, 공정위는 합병법인 승인조건으로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개별 권역의 방송 사업권을 매각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78개 방송권역 중에서 15~23곳에서 두 회사의 합병 법인이 권역별 가입자의 50% 이상이 되는데, 이들 권역의 방송사업권을 팔아야 합병을 숭인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다. 78개 각각의 권역 안에서 특정 사업자의 가입자 수가 50%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이런 의견이 지난 몇 년에 걸쳐 유료방송시장을 나누는 기준을 단일화시키는 과정에서 78개 방송권역의 형해화에 대한 언론시민단체들의 우려와 친화성을 갖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방송법과 IPTV사업법에 규정된 유료방송 시장획정 기준, ‘케이블+IPTV+위성방송을 포괄하여 78개 권역별이 아닌 전국 유료방송 가입자에서 특정사업자의 비중이 3분의 1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옳든 그르든, 방송법과 IPTV사업법의 관련 조항은 전국 단위 가입자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 한 경쟁제한에 해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정책방향이 집약된 결과라는 얘기다. 이건 애초부터 없던 규제의 부재가 아니라, 권역별 규제를 완화 내지 폐지해온 결과다. 불행하게도, 이 규제가 탄생되는 과정에서 공정위가 지금과 같은 의견을 냈다는 소식을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다.

시장지배력을 전국단위가 아닌 권역별 단위로 해야 한다고 KT와 LG유플러스가 주장한 것은 그 자체로 코미디다. 이들도 역시 그동안 과정에서 ‘케이블이 태어난 모태인 권역별 기준을 정작 케이블에는 적용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한테 적용하느냐’며 없앨 것을 주장해 왔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업자들의 말이야 그때그때 자신들한테 우리한 쪽으로 달라지게 마련이라고 한다면 그리 유별난 일도 아닐 테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론, 공정위의 이번 의견이 방송법과 IPTV사업법을 다시 뜯어 고치라고 에둘러 밝힌 것이라고 풀이하는 데 매우 조심스럽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결정을 내렸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지만, 불행하게도, 공정위의 결정은 방통위와 미래부를 향해 한 방 세게 날린 것에 불과하다고 내게는 다가온다. 물론, 언론시민단체들이야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런 잠재성을 적극 실현하려고 할 테지만, 그 실현 가능성은 여소야대 국회에서도 쉽지 않다. 공정위에 세게 한 방 맞은 방통위와 미래부 관료들이 한 방 얻어맞은 채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설사 방통위와 미래부가 합병을 불허하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그들은 공정위가 내건 게 아닌 다른 이유를 댈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론, 78개 권역별 규제의 취지와 내용은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게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지역성 구현의 책무, 크림 스키밍 방지의 책무를 합병 승인조건으로 달고, 이런 조건들을 추후 관련법에 명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좋다는 판단이었다. 아울러, 이번 SKT-CJ헬로비전 두 회사의 합병 승인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공정경쟁의 차원, 미디어 생태계의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규제를 도입하는 쟁점들을 구분하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첫째, 공정경쟁과 지배력 남용의 차원에서 KT의 스카이라이프 지배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규제 공백은 현재 해결됐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결합상품의 구성에서 소비자 후생만이 아니라 방송통신 생태계 차원은 얼마나 고려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편적 통신 역무에 해당하는 집전화(나아가 인터넷 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시키는 게 타당한가 등과 같은 문제들이다.

공공성, 고용 안정을 포함하는 공익성이라는 잣대를 내세우는 한편으로, 이런 내용들로 합병승인 조건을 채우려는 노력이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정위 결정에도, 합병 관련 사업자들이 패닉에 빠진 것을 빼곤, 그리고 방통위와 미래부 관료들이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것을 빼곤 그리 달라지는 건 없을 듯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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