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가경정예산 약 10조원을 편성해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집중 투입한다. 그런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누리과정'에는 한푼도 투입할 수가 없다고 한다.

4일 국회 첫 대정부 질의에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누리과정 국고지원 예산 1조7000억 원이 이번 추경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이번 추경은 주로 구조조정과 관련된 것"이라며 거부했다.

정부가 누리과정에 추가적인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을 뿐더러, 법을 수호해야 하는 정부가 법을 어겨가면서 지방교육청에 예산부담을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벌어졌던 이른바 '누리대란' 국면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여야가 내는 목소리에만 초점을 두고 이를 정쟁으로 몰아가기 바빴다. 하지만 누리대란의 실질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법적인 문제다.

누리과정에 관련된 법률은 크게 두 가지 인데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이다. 유아교육법 제 2조에 따르면 유치원은 유아의 교육을 위해 설립·운영되는 '학교'를 말하고, 영유아보육법 제 2조를 보면 어린이집은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영유아를 보육하는 기관을 말한다. 엄밀히 따졌을 때 교육은 교육부 소관이고, 보육은 보건복지부의 소관이다.

누리과정에 대해 언론이 다뤄야할 것은 교육부 소속인 지방교육청에서 바로 보건복지부 관할의 어린이집에까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였다. 결국 일부 지방교육청에서 무리한 예산을 배정하기도 하고 어린이집에 대한 누리과정 예산배정을 거부하기도 하면서 논란은 커졌고, 박근혜 정부 무상복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누리과정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이날 야권이 정부에게 요구한 누리과정 추가예산은 총 1조7000억 원 규모다. 누리과정에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이 피폐해진 지방교육청을 위해 누리과정 지원예산도 일부 편성할 법 했다. 하지만 정부는 10조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도 누리과정 예산은 단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추경예산을 기업 구조조정에는 사용할 수 있어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 복지공약이자 서민들의 부담을 덜기 위한 정책인 누리과정에는 한 푼도 줄 수가 없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기업을 살리는 데는 예산을 편성하겠지만, 서민들의 육아부담을 더는 데는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번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추경예산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다. 하지만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누리과정에는 예산을 배정할 수 없다는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에,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재벌 기업가를 비호하기 위해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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