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렇게 말하면 기분나쁠까봐 미안한데, 나 언니 볼 때마다 그냥 베타걸의 슬픔을 느꼈어요. 베타걸이 뭐냐구요? 알파걸 아니면 베타걸이지 뭐겠어. 예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들. 돈을 잘 버나, 하는 일이 무지하게 보람이 있길 하나, 주변에서 이쁨을 받기를 하나 그냥 그저 그런 여자들. 사실 언니가 왜 막돼먹어. 그런 베타걸들을 막돼먹게 만드는 게 세상 아니에요? 막돼먹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남을 수가 없는데 어떡해.

▲ '막 돼먹은 영애씨' 시즌5의 영애씨 설명
누가 그러더라구요. 20대에 보수인 놈들은 금숟가락 물고 태어난 놈들이고, 50대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냥 사회부적응자라고. 씁쓸한 농담이었지만 금 숟가락 안 물고 태어난 여자들, 예쁘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여자들이 살아남는 마지막 길은 그저 막돼먹는 수밖에 없잖아. 안 그러면 어떡해요? 인생이 자꾸 뎀비는데.

나 요즘은 모처에서 단식해가지고(단식원 그런 데 아니에요) 살 쫙쫙 빠졌는데, 그 전에 인생의 절반을 통통한 애로 살았어요. 그게 아마 딱 언니 정도였지. 왜 아예 100킬로그램 넘거나 그러면 사람들이 말을 안 하잖아. 근데 육십 몇 키로 나가면, 딱 입 대기 좋은 수치잖아요. 살 빼라 살 빼라 배 봐라 배 봐라 하면서. 그 살 찌우는데 밥 한 술 보태준 적 없는 사람들이 말만 트면 살 빼래. 한 입만 더 먹어도 그러니까 찐다 그러지. 근데 그런 말 하면서 꼭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잖아.

이렇게 사디스틱한 이타성이 어딨어? 아니면 그 따위 외모로 내 눈 앞에 띄다니 죽어줘야겠다! 하는 그 눈빛. 근데 금수저 안 물었으면 다 똑같더이다. 못생기면 구박하고 이쁘면 아저씨들이 자꾸 건드려서 손 타고 성질 버리게 만들어요. 장자연씨 봐봐. 그 예쁜 사람을, 그 젊은 아가씨를. 아직 사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더라도 성상납에 폭행이 어쨌네 저쨌네 결국 사람이 죽었어. 죽지 못하고 살다 보면 우리같이 막돼먹게 되는 거지. 아 제발 나 좀 건들지 마, 그냥 놔둬! 하고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 그 기분 꾹꾹 참으면서 돈 벌고.

나 그렇게 돈 벌면서 별로 볼 거 없는 회사 3년 다녔지만, 3년 동안 는 거라고는 회식 때 삼겹살 두 번만 뒤집고 인원에 맞게 잘 돌아가게 자르는 재주밖에 없습디다. 요새 결혼 안[못]하고 돈 없는 여자들은 만인의 구박덩어리인 것 같애. 다 우리 탓이래잖아. 애 안 낳는다고 여자들이 다 이기적이라서 그렇다고 하지, 누구는 결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나 애를 낳고 싶어도 남자가 있길 하나. 골드미스들이야 자기 가꾸면서 화려하게 살아도 사실 세상의 태반 넘게 합금미스 아니에요. 우리 같은 합금미스들이 남자 잡기는 쉽나, 요즘은 남자들도 다 무슨 소믈리에처럼 간 보는 세상인데. 원준이 봐요, 영계 잡아봤자 더 영계한테 가잖아.

아참 저 합금미스 맞아요. 어리지도 않고 낼 모레 서른이고, 제대로 된 직장이 있길 하나 청년백수 숫자나 보태고 있지 제대로 된 남자가 있길 하나, 글 쓰면 사람들이 전부 다 무슨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글 써봤자 인건비도 안 나와요. 그나마 글 쓰고 있는 데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이것도 언니처럼 비정규직이지, 이건 뭐 어찌어찌 살아 보려고 해도 견적이 안 나와. 남자? 남자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요, 당장 내 배가 굶게 생겼는데. 신자유주의라는 놈은 다 우리 탓이라고 하지만, 합금미스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 아니에요? 호의호식 못 하고 루이비통 스피디백 못 들고 트루릴리전 청바지 못 입고 sk2 화장품 못 발라도 내가 찌질이인 것처럼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진짜 아닌가요?

우리가 믿으면 그런 날이 올 거예요.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난 언니 편이야. 그러니까 같이 막돼먹읍시다. 더 막돼먹고, 더 용감하고, 더 행복해집시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인 것 같아요. 막돼먹은 세상에서 행복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애. 언니 사실은 막돼먹은 영애씨가 아니라, 용감한 영애씨잖아요. 나 그거 알아요. 용감한 우리 영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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