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사무실에 들어와서 가방을 던져놓기 무섭게 컴퓨터를 켠다. 코트를 벗고 의자에 앉아 결재 서류를 점검하다 보면 컴퓨터는 그사이 호흡 잘 맞는 비서처럼 안정적인 부팅을 마치고 다음 사항을 조용히 기다린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제일 자주 쓰는 포털사이트를 열어서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라고 쓰고 싶지만 이 행위는 매우 고상하다. 안타깝게도 ‘스팸 메일을 하나 하나 지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바빠서 그대로 닫아버리거나 출장 등으로 하루만 메일 점검을 늦춰도 금세 쌓이는 수십통, 수백통에 이르는 스팸 메일에 질식할 정도다. 삭제 버튼을 누르느라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다.

그래도 이 일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는 그중 정말 중요한 메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책임감 때문이다. 어느 날, 이런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낯익은 이름이 들어있는 제목을 발견했다. “안도현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열어서 읽어 보았다.

▲ 안도현 시인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안도현입니다.

몇 해 전부터 글 쓰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 이외에
북녘 땅에 나무를 보내고 심는 일을 조금 거들고 있습니다.
올봄에는 평양 근교에 남쪽의 사과나무를 심어
<평양어린이사과농장>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사과농장은 10ha (3만평) 규모이며
1만 2천 그루의 사과묘목과 농기계, 농약, 비료 등이 필요합니다.
햇볕 쬐고 거름을 주면 3년 후에
연간 1백20만개의 사과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남북의 상황은 혹한의 겨울이지만,
겨울에도 사과나무는 나이테를 늘려갑니다.
밤이 길고 힘들어도 겨레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1만원이면 사과나무 한 그루, 10만원이면 열 그루를
여러분의 이름표를 달아 심을 수 있습니다.

사과나무의 꿈을 만드는 이 일을 주변에 널리 알려주시고
부디 힘과 정성을 보태주십시오.

※기간 : 2009년 3월 31일까지
※하나은행 555-810003-77005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문의 : 02-706-6008

한 통의 이메일을 읽으면서 감동을 느끼기는 오랜만의 일이었다.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 이외에 북녘 땅에 나무를 보내고 심는 일을 ‘조금’ 거들고 있다는 시인의 공식 직함은 평양어린이 사과농장 설립사업 공동본부장.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일일이 메일을 띄우고 사업을 설명하는 것은 ‘조금’ 거드는 일은 분명 아닐 터, 이 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묻어난다. 활자로 된 이메일이, “꼭 도현이 형 같이 말한다” 싶으면서 괜시리 콧등이 시큰거렸다. 북한 어린이를 위한 사과나무라…….

감히 시인의 인격이나 성품을 언급할 수는 없으나, 시인을 떠올리면 내게는 그냥 시쓰는 “도현이 형”으로 기억되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청년 시인 도현이 형으로 생각된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시인은 당시 학생신분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시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고 시인을 배출한 국문학과와 대학교에서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내가 대학신문사 기자로 활동할 때 안도현 시인을 비롯, 당시 강태형, 원재훈, 이진영 등 기라성 같은 예비 시인들이 학보사 문예면을 장식해주었고 원고료가 나오는 날에는 그 덕에 어김없이 막걸리 집을 순회하던, ‘그래도 제법 멋스럽고 사람냄새 풍기던 시절이었다’고 생각된다. 인문대 등나무 벤치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캠퍼스가 떠나가라고 껄껄 웃어 제끼던 재연스님(현 실상사 화림원 원감)의 호탕한 웃음소리,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각자 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지면을 통해 시도 읽고 간간히 작품집 발간 소식도 접하면서 반갑고 기쁜 마음 충만했는데 다행히 안도현 시인은 전주에 터를 잡고 눌러 살면서 지리적으로 더욱 친근함을 유지하고 있다. 몇 년 전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내가 제작한 ‘라디오 에세이 - 느림에 대하여’와 ‘종이의 꿈’ 같은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해주셨다. 하루 만에 만나든, 10년이 지나 만나든 여전히 나는 “도현이 형~”이라고 부르고 싶고 시인은 여전히 짧고 경쾌하게 “김사으은~” 하고 부른다.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순수하고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람에 대한 진실하고 충만한 신뢰가 내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달포 전 시인의 신작 시집을 선물받고도 고맙다는 인사도 전하지 못한 터라 내친 김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캠페인으로 홍보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을 해주어서 시인의 목소리를 담아 하루 두 번 <희망칼럼> 시간에 송출하고 있다. 북녘 어린이들에게 영양많은 사과를 급식하기 위한 <평양어린이 사과농장>은 특히 전북 장수군에서 협력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 역시, 평양으로 보낼 사과나무를 한 그루씩 심기로 했다. 시인의 사과나무는 각 매체를 통해 널리 널리 알려지고 국민들의 성원이 이어질 터이지만, 희망의 나무를 심고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에 지역 방송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어서 작은 보람을 느낀다. 더구나 우리 고장에서 기른 장수 사과나무에 내 이름표를 달아 평양 땅으로 보내진다니 기대가 크다. 장수 사과야 말로 맛있기로 소문난 사과가 아닌던가. 3~4년 후 내가 보낸 나무가, 우리 아이들의 이름표를 매단 나무가 북녘 땅 어디에선가 희망의 열매를, 통일의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모습을 떠올리니 심장이 뛴다.

아삭~ 사과 한 입 베어물고 씨익 웃을 북녘의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혹한의 남북 상황 속에서도 겨레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다.

캠페인이 송출된 직후 전화를 받았다.

“거시기~ 시 잘쓰는 안 선생 있잖여, 그 양반이 평양에다가 사과나무 심는담서? 나도 한 그루 심을라고 하는디, 어떻게 하면 되야?”

“아, 예~ 여차여차하여, 저차저차하시면 됩니다.”

이런 문의전화, 좀더 많이 걸려왔으면 좋겠다. 정말 특별하고 소중한 나무가 아닌가!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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