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연일 독자들에게 신문 디자인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판을 바꿨다’ 시리즈다. 지난 9일 1면과 14~15면에 이어, 10일과 11일에도 2개 면에 걸쳐 시원한 브리지 편집(2개 면을 털어서 하나의 면처럼 편집하는 기법)까지 선보이며 신문 판형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를 다뤘다. 관찰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이라면 신문 크기가 다 같은 줄 알았을 테지만, 크게는 세 종류(대판/베를리너판/콤팩트판)로 나뉘고, (중앙일보 말로는) 잘게 보면 세계적으로 60가지나 된단다. 내가 그동안 주워들은 사금파리 지식들을 보태서 신문 판형에 대해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 3월 10일자 중앙일보 14·15면 기사.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판은 대판이다. 종합일간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신문들이 대판이다. 콤팩트판은 지하철역 앞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무가지들의 판형이다. 유럽신문들의 대판(한국 신문 대판보다 가로는 좁고 세로는 길다)을 절반으로 접으면 정확히 콤팩트판이 된다. 콤팩트판의 원래 이름은 타블로이드판이었다. 타블로이드판은 오랫동안 선정주의 황색신문(옐로페이퍼)을 대표하는 판형이었다. 21세기 들어 일부 유럽 주요 신문들이 이 판형으로 바꾸면서 불명예스런 과거를 씻기 위해 콤팩트판으로 ‘개명’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베를리너판은 무언가? 국내에서는 지난해 1월 중앙일보의 일요일판인 <중앙선데이>가 처음 도입했고, 아직까지 유일하다. 국내 독자에겐 가장 낯선 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오는 16일자부터 이 판형으로 신문을 찍기 시작한다. 독자들에게 대대적인 신문 디자인 교육을 벌이고 있는 사정이 거기에 있다. 베를리너판은 대판과 콤팩트판의 중간 크기다. 중앙일보는 베를리너판이 유럽 고급지들이 선호하는 판형이라며, 고급을 대변하는 유서깊은 판형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주요 신문들조차 이 판형을 쓰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 지난 1월 베를리너판으로 전환한 중앙SUNDAY(오른쪽)와 대판 비교
베를리너판이라는 이름은 <베를리너 모겐 포스트>라는 독일의 작은 지역신문이 처음 쓰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 역사는 100년이 넘지만, 지난 2004년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이 채택하기 전까지는 누더기 신데렐라였을 뿐이다. 가디언은 2003년 <타임스> 같은 영국의 경쟁지들이 대판에서 콤팩트판으로 갈아타자 고민에 빠졌다. 경쟁지들은 기존 대판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독자들을 겨냥해 콤팩트판을 내놓은 뒤 시장의 반응이 좋자 콤팩트판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그러나 가디언은 옐로페이퍼의 이미지와 편집 디자인의 단조로움을 이유로 동승을 거부했다. 버스는 떠났고, 고심과 연구를 거듭하던 끝에 가디언은 ‘제3의 길’을 떠올렸다. “그래. 이거야. 대판처럼 거추장스럽지 않고 콤팩트판처럼 경박하고 편집이 단조롭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무엇!” 그리하여 미운 오리새끼는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고니가 되고, 중앙일보 말대로 프랑스 <르몽드>와 <르피가로>, 스페인의 <엘 파이스> 등 내로라하는 신문들이 베를리너판으로 따라갔다.

하지만 판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고급 유력지들의 흐름이라는 중앙일보의 주장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 고급 유력지들의 흐름이 아니라 신문 일반의 흐름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붐비는 버스나 전철 안에서 신문을 보는 독자들의 구독 행태에 적응하려는 적자생존 투쟁일 뿐 고급/유력 따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콤팩트판으로 간 신문들이 뒤늦게 후회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모든 주요 신문들이 베를리너판을 선택하는 것도 분명 아니다. 베를리너판이 콤팩트판보다 호흡이 긴 기사와 디자인의 변화에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그 부분에서 대판보다 불리한 것 또한 사실이다. 여전히 대판을 고집하는 세계적인 유력지들도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한사코 유력지들의 대세를 강조하는 것은 얄팍한 무임승차 전략일 뿐이다. 사실 무임승차 전략은 이 신문의 가장 독보적 경쟁력이다.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을 때조차 이 전략을 구사하는 게 중앙일보다. 자사 기자를 미국산 쇠고기를 맛있게 먹는 시민으로 둔갑시킨 사실이 들통나 사과 기사를 실을 때도 중앙일보는 이 전략을 썼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유력 신문들은 취재 윤리와 관련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솔직히 공개하고 재발 방지책을 세워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때보다 더욱 가당찮은 주장도 있다. 지면이 약 29%가 줄어듦으로써 종이의 원료가 되는 나무와 잉크, 필름의 사용을 줄여 결과적으로 친환경적인 신문을 제작할 수 있단다. 면 크기를 줄이면 페이지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왜 쏙 뺐는지 모르겠다. 그토록 친환경적으로 신문을 만들고 싶다면 그보다 훨씬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독자 매수에 쓰이는 무가지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중앙일보가 그 방법을 쓸 리는 결코 없다.

어쨌든 신문 판형을 줄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고, 한국 신문들 가운데는 중앙일보가 가장 먼저 이 추세에 동참했다. 그러나 대세 추종이 얼핏 안전한 선택 같아 보이지만,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과 신문시장의 고착화된 특성에 견줘 보면 중앙일보의 선택은 오히려 결사적 도전으로 보인다. 다른 신문들이 베를리너판으로 가지 않는 것이 게으르거나 둔감해서만은 아니다. 베를리너판으로 가려면 무엇보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신문은 지식산업이지만 나름대로 규모가 만만찮은 장치산업이기도 하다. 가장 큰 비용이 드는 게 윤전기다. 대판을 찍던 윤전기로 콤팩트판을 찍는 건 가능하다. 한 번에 한 면 찍을 것을 두 면 찍을 수 있으니 오히려 효율적이다. 하지만 베를리너판을 찍으려면 완전히 새로운 윤전기가 필요하다.

중앙일보는 일본제 새 윤전설비를 갖추기 위해 1500억원을 들였다고 지면을 통해 밝혔다. 베를리너판 도입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가디언도 아직까지 금융비용 때문에 버거워하고 있다. 더구나 윤전기는 현찰 거래가 아니라 리스 방식으로 들여온다. 요즘 엔고 추세를 보면 중앙일보의 비용은 앞으로도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이다. 조선일보도 베를리너판으로 가려다 보류했는데, 무엇보다 돈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미 발주가 끝난 상태였다. 들여놓고 나니 환율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중앙일보의 베를리너판 선택은 도전이라기보다는 울며 겨자 먹기에 가깝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한때 금융계에서 중앙일보 위기설이 나돌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가뜩이나 중앙일보는 경영수지가 좋지 않았다. 지금 너스레 떨 때가 아니다.

베를리너판을 도입한다고 해서 독자가 눈에 띄게 느는 것도 아니다. 가디언의 경우를 보더라도 조금 나아지는 정도였다. 그렇다면 기대할 것은 광고 매출 증가밖에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2009년 신문광고는 경기침체 속도보다 훨씬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다. 베를리너판으로 바꾸면 사정이 나아질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광고주들이 중앙일보 판형만을 위해 광고 디자인과 필름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중앙일보 광고 매출에 도움을 줄 리는 만무하다. 지면 크기를 줄이면 1개 면당 들어갈 수 있는 기사 꼭지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섹션 지면이 강화돼야 한다. 세계 주요 신문들은 섹션 지면이 전문성을 드러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효자노릇을 하지만, 한국 신문들의 섹션은 오히려 애물단지다. 콘텐츠가 부실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덩달아 광고주들도 외면한다. 섹션 지면에 실리는 광고에는 대포광고(신문사가 돈 안 받고 일방적으로 싣는 광고) 비율이 훨씬 높다. 베를리너판으로 가는 중앙일보에는 또다른 악재일 수 있다.

물론, 남보다 앞서 길을 간다는 건 외롭고도 고단한 일이다. 베를리너판이 기착지가 되든 중간 경유지가 되든, 신문 판형은 독자들의 구독 패턴에 맞춰 작아지고 있고, 또 작아져야 한다. 한국 신문 가운데는 중앙일보가 그 외로운 길을 먼저 가는 것이다. 11일치 중앙일보 ‘판을 바꿨다’ 시리즈의 화두는 ‘신뢰’였다. 한갓 판형 변화를 넘어서 언론계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독자 신뢰를 통해 언론계를 뒤흔들 수 있다면 독자 입장에서도 더 고마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이를 위해 베를리너판이 도움이 된다면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과감한 변화 시도는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역으로, 판형을 바꾼다고 해서 신뢰도가 올라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중앙일보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10일치 중앙일보 ‘판을 바꿨다’에는 중앙일보 40여년의 역사가 10장의 지면사진과 함께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중앙일보의 자부 대로 중앙일보는 그동안 변화를 선도해온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진을 훑어보다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멈추고, 기억이 고정됐다. ‘95년 4월15일 조간 전환’. 중앙일보도 잘 기억할 것이다. 96년에 조선일보 남원당지국장 살인사건까지 비화된 이른바 ‘신문전쟁’의 시작이 다름 아닌 중앙일보의 95년판 ‘변화 선도’였다는 것을. 그리고 독자매수가 유일한 마케팅 수단이 되어버린 지금의 신문시장도 조간 전환을 계기로 삼성 자본으로 융단폭격을 했던 중앙일보의 신문전쟁 때문이었다는 것을. ‘판을 바꾸겠다’는 중앙일보를 바라보며 내내 꺼림칙했던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나 보다. 중앙일보가 그 시절만큼 원없이 돈을 써볼 형편이 못되는 것을 그나마 위안삼아야 할 것인가. 뱀이 마신 샘물은 독이 된다고 했던가.

▶ 도움 말씀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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