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0일자 조선일보를 보아하니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 “최근 과격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200여명의 ‘상습시위꾼’을 파악하고 있다”며 “그 전체를 검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단다. 그래서 주상용 청장이 ‘상습시위꾼’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여주면서 검거하려 혈안이 된 200명의 실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러한 주상용 청장의 발표가 지난 주말 용산참사 추모 집회와 무관하지 않으니 그 때의 기사들을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규정을 너무나도 잘 해주고 있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상습시위꾼의 자격조건’을 집중적으로 뒤져봤다.

▲ 3월 10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지난여름 광우병 시위에도 참가했던 사람

“(7일 용산참사 추모 집회) 참가자 500여명은 대부분 민주노동당·진보신당·민주노총·전국철거민연합 등 작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주도그룹”<9일자 조선일보 1면>
“경찰은 폭행 가담자들을 지난해 5월부터 활동해 왔던 극렬 촛불시위대로 보고 현장 채증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중이다.”<9일자 중앙일보 2면>
“이날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 철거민 참사 추모집회를 벌인 시위대 500여명(경찰 추산)은 20~200명이 몰려다니며 이날 밤 11시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철거민연합·명박퇴진·사회당·진보연대 등 29개 단체의 깃발이 등장했다. 경찰은 ‘대부분 작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현장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이라고 했다.”<9일자 조선일보 4면>

조선일보는 200여명의 ‘상습시위꾼’에 대한 테두리를 지었다. 조선의 테두리는 지난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로 돌아간다. 신기한 것은 단체명을 거명하면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7일 집회 참가 500여 명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민주노총·전국철거민연합·명박퇴진·사회당·진보연대 등 작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주도그룹이라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명확히 해야 할 지점은 집회 참가자는 500여명이고 이들이 ‘상습시위꾼’이라고 지목한 것은 200여명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봤을 때 상습시위꾼 200여명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민주노총·전국철거민연합·명박퇴진·사회당·진보연대’ 소속 회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조선일보식 해석이다. 물론 29개 단체의 깃발이 나오긴 했지만 이 7개 단체들이 조선일보가 선택한 단체들이다. 영광이라 해야 하나?

지하철·오토바이 타는 사람, 도심을 걷고 있나요?

“지난 7일 200명의 시위대는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곳을 찾아 20분~1시간 동안 시위를 벌인 뒤 경찰이 투입되면 지하철을 타고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시위대는 서울역→동대문→종로5가→시청→영등포구청을 옮겨 다녔다. 누군가의 지시나 선도 없이 200명이 순간순간 행선지를 바꾸며 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10일자 조선일보 5면>
“전문가들은 시위 참가자의 수는 줄었지만 조직화된 전술을 구사하는 등 ‘도시 게릴라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대에 폭행당한 한 경찰은 “정찰조, 전위부대, 본대, 잠복 정보원 등 마치 경찰 무대처럼 움직인다”고 밝혔다. 박 경사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능숙하게 경찰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며 “통제 속에서 200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10일자 동아일보 12면>

이제 5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추릴 차례다. 이들 신문은 7일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500명이었지만 집회가 끝난 후 도심을 돌아다니며 시위에 참가한 시위대는 200명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부터 ‘상습시위꾼’의 특징이 나온다. 이들 신문이 주목한 것은 도심 ‘게릴라’ 시위전.

▲ 3월 10일자 동아일보 12면 기사
동아일보는 아주 자세하게 게릴라 시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정찰조’는 오토바이 등을 타고 다니며 가두 행진 장소를 물색하는 조, ‘전위대’는 정찰조에서 물색한 장소에서 먼저 시위를 시작해 경찰의 대응을 떠보는 무리로 경찰을 압도할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본대’는 지하철을 이용해 해당 지역으로 이동하는 큰 무리이며 ‘밥풀데기’라 불리는 ‘정보원’은 인도의 인파 속에 돌아다니며 경찰 인원과 사복경찰 수 등의 동향을 파악한 후 본대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한다. 조선일보 역시 시위대에게 맞아 부상당한 김모 순경의 말을 빌려 “시위대 중에 마스크를 쓰고 귀에 무전기 리시버를 꽂은 사람이 시위 상황을 어디론가 계속 보고했다”고 전했다.

오늘 조선일보에서 ‘우울 척도 자가 진단표’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위 내용을 토대로 ‘상습시위꾼으로 몰릴 자가 진단표’를 재구성해보면?

□ 지난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나
□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나
□ 민주노동당·진보신당·민주노총·전국철거민연합·명박퇴진·사회당·진보연대 중 지지하는 곳이 있나
□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나
□ 오토바이를 탈 줄 아나
□ 저녁 늦은 시간에 도심을 걸어가 본 적이 있나
□ 마스크를 개인 소장하고 있나
□ 무전기 리시버라고 의심되는 것을 가지고 있나(이어폰 등 포함)
□ 조중동이 편파적인 매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는 응답이 3개 이상이면 경찰은 ‘상습시위꾼’으로 의심할 수 있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주상용 청장은 “최근 과격시위에 단골로 등장하는 200여명의 ‘상습시위꾼’을 파악하고 있다”며 “그 전체를 검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주상용 청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경찰을 공격한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묵과할 수 없기 때문에 경찰의 피해가 생기더라도 반드시 검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죄목으로 이들을 잡는단 말인가. ‘과격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상습시위꾼’이라 규정된다? 그리고 이 상습시위꾼을 무조건 잡아들인다고? 그러나 미안하게도 우리나라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이다. 때문에 단순히 상습적으로 시위를 한다고 해서 이들을 검거하겠다는 사고 자체가 법개념을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가능하다. 누구나 시위를 할 수 있는데 시위를 상습적으로 한다고 잡아간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조중동 및 경찰의 집시법 독소조항 비틀기

이러한 주상용 청장의 말도 안되는 사고도 우습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를 통해 조중동이 집시법 자체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도 재밌는 사실이다. 이들 신문은 지난 7일 집회 참가자들의 ‘마스크’를 강조해서 기사화하고 있다. 기사들을 보면 경찰을 때린 시위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시위 상황을 어디론가 알리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아주 가볍게 ‘복면착용금지(마스크)’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일 이철성 영등포경찰서장은 병원에서 입원 치료 받고 있는 김 순경을 면회하는 자리에서 “차라리 전쟁 상황이라면 마음껏 진압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우리로서도 답답하다. 주말마다 도로를 점거하는 등의 시위 방법은 분명히 잘못됐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김 순경은 시위 문화와 관련, “평화적 방법이 아닌 마스크를 쓰고 나와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는 의사 관철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단순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 않나.

▲ 3월 9일자 동아일보 사설
그리고 정말 본격적으로 건드리는 것이 바로 ‘야간 옥외집회 금지’다. 동아일보는 9일 사설에서 “이 조항(야간 옥외집회 금지)마저 없다면 서울 도심 일대는 밤만 되면 불법 폭력이 난무하는 시위대 해방구로 변하게 될지 모른다”며 이 조항에 관련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에 “헌법상의 집회시위권을 무차별적으로 인정해 사회 혼란과 국민 불안을 감내할 것인지, 국가가 일정한 안전장치를 통해 불법 폭력에 대응하고 선량한 국민의 삶을 보호할 것인지 헌재는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조중동은 지난 주말 7일 집회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상습시위꾼’ 잡아들이기는 것을 넘어 ‘복면착용금지’를 포함하는 집시법 개정과 헌재에서 심리 중인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 유지까지.

‘상습시위꾼으로 몰릴 자가 진단표’를 통해 경찰로 인해 ‘상습시위꾼’으로 규정 가능한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하는가.(조선일보에서 제공한 ‘우울 척도 자가 진단표’를 통해 우울증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나올까?) 조중동의 목표는 이제 ‘상습시위꾼’으로 나온 당신이다. ‘복면착용금지’, ‘야간 옥외집회금지’를 넘어서 말이다. 도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당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우리. 저녁시간에 도심을 걸어 다니는 국민들. 이렇게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의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권리는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 10일자 조선일보 10면 기사 ‘우울 척도 자가 진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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