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 비판의 중심은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된 미디어법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기구’. 그러나 한나라당에 대한 날선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미디어 관련법을 직권상정하지 못하고 100일간의 ‘사회적 논의기구’ 운영에 합의한 한나라당에 대한 신경질적인 분풀이에 가깝다.

그런 와중에 지난 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약칭 문방위) 여야 간사들이 모여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한 구성과 역할 및 위상에 대한 합의가 진행됐다. 그 결과 기구의 공식 명칭은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로 하며 위원은 총 20명의 비정치인으로, 한나라당 추천 10인, 민주당 추천 8인, 선진과창조모임 추천 2인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위원장은 여야가 1명씩 추천해 공동위원장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한 틀의 공개는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에 대한 분풀이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오늘(6일) 1면 “한나라 171석 버거웠나 여야 미디어법 동수논의 거대 여당 ‘자승자박’”기사에서 한나라당을 비판하며 ‘사회적 논의기구’ 자체를 폄하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의 짜증은 어떻게 구성됐나?

조선의 짜증1: 한나라당에게 “국회 절대 다수의석임에도 미디어법 직권상정하지 않아”

▲ 3월 6일자 조선일보 1면·6면 기사
“한나라당 어깨에 걸머지기에 171석은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 한나라당은 5일 작년 총선에서 국민이 준 절대 과반의석을 허물고, 여야(與野) 동수 논의구조로 대체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여당은 국회 절대 다수의석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도 미디어법이라는 자기 의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여론에서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일부 방송 등 친야 매체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국가의 언로가 비틀어질 것처럼 국민에게 겁을 주고, 상당수 여당 의원들은 그 기세에 눌려 미디어법에 관한 언급 자체를 꺼렸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당은 부담스러운 논전을 사회적 논의기구에 맡기고 자신들은 그 뒤에 숨어 지켜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수당 힘의 논리’가 등장했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의석을 많이 준 이유가 있다’며 그이유가 바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을 직권 상정시켜 빠르게 통과시키라는 것이란 식의 편협한 주장이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지난 총선은 2008년 4월 9일. 이제 1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그 1년이란 기간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었다. 때문에 그 당시 한나라당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지금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여전히도 작년 총선의 결과 다수당이 된 한나라당이 마치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양 떠들고 있다. 이것은 바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대의정치를 완전히 무시하는 언사이다. ‘대의’정치라 함은 ‘다수가 옳다’가 아니다. 다수이든 소수이든 국민의 뜻을 얼마나 대변하여, 소수의 뜻까지 포함해 합의를 이루어내느냐는 토론의 과정이 필수인 것이다.

조선일보는 위에서 “일부 방송 등 친야 매체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국가의 언로가 비틀어질 것처럼 국민에게 겁을 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역으로 “일부 신문 등 친여 매체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국가 경제가 살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시켰다”고 한다면 그 일부 신문은 어떤 매체가 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조선의 짜증2: “‘사회적 논의기구’는 여야 정치권의 ‘무능’과 ‘비겁’의 산물”

“사회적 논의기구는 여야(與野) 정치권의 ‘무능’과 ‘비겁’이 어우러져 나온 산물이다.”
“당시 합의문에는 ‘문방위 자문기구인 여야 동수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고, 문방위에서 100일간의 여론수렴 등의 과정을 거친 후,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 처리한다’고 돼 있다. 여야 3당의 원내대표들이 모여 ‘국회 기능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는 “미디어법안에 대한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사회적 논의기구가 타협안을 도출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사회적 논의기구는 결국 정책결정에 도움은 주지 못한 채, 국회가 자율적으로 문제해결을 하지 못한 ‘정치의 실패’의 증거물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노골적으로 ‘사회적 논의기구’에 대해 폄하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논의기구가 정치권의 ‘무능’과 ‘비겁’의 산물이며 이는 여야 3당의 원내대표들이 ‘국회 기능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시작 전부터 찬물을 끼얹은 조선일보였다.

▲ 3월 6일자 조선일보 만평
이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총파업으로 맞서고 있고, 전국의 언론학자 수백명이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에 반대한다고 나선 상황이며, 반대여론이 과반수를 훌쩍 넘고 있다. 이러한 여론에 대해, 귀 막고 토론도 없이 다수의석으로 밀어부치는 것이 과연 국회의 제대로 된 기능일까.

사회적 논의기구가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던 아니던간에, 만일 사회적 논의기구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한나라당의 무례’에 큰 책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나라당이 고집해서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처리’하기로 못 박아둔 상황이라는 점, 또한 토론을 시작하기도 전에, 의견을 수렴하기도 전에, ‘자문기구일 뿐’이라며 역할을 축소시키려고 애쓴다는 점 등으로 짐작 가능한 사실이다.

때문에 조선일보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향한 짜증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이 들어있는 미디어관련 법이 날치기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한나라당의 짜증’과 괘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100일도 기다리지 못할 만큼 방송 진출이 급했어도 말이다.

조선, ‘여론조사’가 곧 ‘국회 무시’라 주장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처음 사회적 논의기구 얘기가 나올 때부터 ‘국회 일을 밖에 맡기려면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도 ‘입법절차를 국회 외의 어떤 기구에 맡긴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스스로 내던져버린 무책임한 처사’라고 했다.”
“여론조사대로 법을 만든다면 국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사안마다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법 조문으로 만다는 기능인만 있으면 된다. 여론조사는 여야 합의에도 없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또한 여러 인사들의 말을 인용해 ‘사회적 논의기구’가 곧 ‘의회정치를 무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역으로 조선일보에게 ‘의회정치를 잘하기 위한 장치로써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바라볼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국회가 대의 정치의 장이자, 국민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한다는 역할에는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파업과 반대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100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여론을 좀더 수렴하지 못할 만큼 시급할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불신은 확고하다. 문방위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 역시 6일 KBS라디오 <이규원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가 과연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나경원 의원은 또한 “기구가 출범한 이상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거쳐 국민의 여론을 수렴할 수 있다”며 “기구에 전문가들을 포함시켜 그들의 의견을 구하는 방법으로도 여론을 수렴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여론조사는 통과된 법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국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여론수렴 과정이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야 말로 국회의원으로써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 아닐런지.

한나라, 여론조사하면 자신없기 때문?

지난달 26일 MBC <100분토론> “이명박 정부1년, 무엇이 달라졌나?”라는 주제 패널로 참석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참고로, 이날 <100분토론>은 한나라당 소속의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미디어법 등 22개를…”이라며 끝맺지 않은 말로 날치기 직권 상정한 다음 날이었다.

“악법이다 말씀하시는데 악법이 명백하다면 논의 테이블에서 올려놓고 토론하자는 겁니다. 저희가 강행 통과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정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정조차를 막으셨습니다.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토론을 하면 민주당이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습니다.(웃음)”

나경원의 발언을 그대로 빌려, 오늘치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답을 해주면 이렇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및 자유선진당에서 ‘사회적 논의기구는 자문기구일 뿐’이라는데 악법이 아니라면 국민 전체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두고 토론하자는 겁니다. 또한 여론조사대로 법을 만든다면 국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시는데, 저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여론조사를 하면 한나라당이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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