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지난달 급히 처리된 ‘조직개편’으로 여러 날 몸살을 앓았다. 고대영 사장이 취임한 후 5개월 만에 준비된 조직개편안은 기존과 달리 ‘역대급’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조직의 틀을 크게 바꾸는 안이었으나, ‘공영방송’ KBS가 수호해야 할 공적 가치에 대한 고려나 구성원들의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급속 진행된 것이라 내부 반발이 컸다.

방송본부, 미래사업본부 등 좀 더 사업하기 수월하게 하기 위한 부서들이 신설되는 등 ‘사업 중심’과 ‘업무 프로세스 중심’으로의 변화를 꾀한 조직개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수신료 현실화 전담 부서’(수신료현실화추진단)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추진단 소속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2~3명 가량 소수 인원만이 대외협력실에서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실정이다. 개편에서 ‘경쟁’과 ‘수익성 추구’를 앞세웠던 KBS이니만큼, 공적책무를 다하라는 시청자들과의 약속과 다름없는 수신료를 소홀히 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KBS 내부 구성원들은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수신료 현실화 전담 부서가 사라진 것에 대한 약간의 입장차는 있었으나 고대영 사장이 공영방송 재원의 두 축 중 하나인 수신료를 ‘홀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 했다.

“전담 부서 사라진 것만 가지고 의미 부여할 순 없지만…”

과거 수신료 현실화 추진 관련 업무를 맡았던 A씨는 ‘수신료 전담 부서’가 사라진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길환영 사장 당시 (수신료 현실화) 3번째 시도를 하면서 조직을 만든 것이다, 이사회 요구에 의해서. 그래서 안을 만들고 이사회, 방통위를 통과해 국회에 올렸지 않나. 그런데 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법안이 폐기되어) 무산됐다”며 “애초 (수신료 현실화 대응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니 (그 기능이 종료돼) 해체된 것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조직개편을 하면서 대외협력실에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기능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며 “아마 (20대 국회에 제출할 안을) 다시 만들 테니까 그때는 새로이 추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KBS 고대영 사장은 지난달 23일부터 시행된 조직개편에서 수신료 현실화 전담 부서를 없앴다. (사진=KBS, 미디어스)

B씨 역시 “수신료와 관련된 조직을 두느냐 와해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추진단이 없어졌다는 것만 가지고 ‘수신료를 포기했다’거나 ‘공영성을 저버렸다’면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조직개편에 말이 많지만 좀 더 효율적인 조직으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고대영 사장은 퍼주기나 읍소 등 여태까지의 방식으로 수신료 현실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수신료 현실화 전담 조직 해체를 통해) 어쨌건 ‘수신료’가 주는 현실적 재원으로서 주는 함의를 일부러 지우는 느낌은 맞다. 조직개편 이후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수신료는 두고) 광고 경쟁만 잘하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돌고, 자연스레 수신료가 주변화되고 있긴 하다. 수신료에 신경을 안 쓰겠다는 건 (수신료를 내는) 시청자들과의 관계 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고대영 사장,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 없어”

반면 고대영 사장의 판단이 이례적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C씨는 “수신료 추진단이 없어진 것은 간단한 논리다. 총선이 야당 승리로 끝났다. 결국 수신료 인상 주체인 국회에서 야권이 다수를 차지했으니까 회사도 이런 점을 공략해 나가야 하는데, 고대영 사장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수신료 추진단이 있어봤자 국회 통해서 올릴 수 없으니까, 아예 ‘사업해서 돈 벌어와라’ 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끌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C씨는 “현재 수신료 추진단에 있던 직원들도 다 흩어져 있다. 이사회도 바뀌었고 사장도 바뀌었으니 수신료 인상을 다시 추진해야 하지 않나.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수신료가 올라가는 게 아니니까 최소한 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조차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건 사실상 자기 임기 내에서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내부에서도 ‘왜 조직을 없앴냐. 수신료 안 하자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었다”고 전했다.

D씨는 “역대 사장 중 취임 후 수신료 현실화 추진을 공식화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고대영 사장은 아직까지 수신료 추진을 공식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추진단을 해체해 버렸다.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국회가 종료돼 안이 폐기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예 조직을 없앤 적은 없었다. 이름이나 조직 형태는 달라졌지만 전담 기구는 유지돼 왔었다. 수신료 전담 기구가 없고 그 업무를 했던 직원들을 부서 내 한 파트로 흡수하는 것은, 수신료 인상에 있어서 경영진의 인식이나 비중이 떨어진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KBS이사회 야당 추천 한 이사는 “공영방송 사장이 수신료 현실화 추진을 안 하는 순간 사장 자격이 없다고 보아도 된다. 수신료 현실화를 하기 위해서는 보도의 일정한 중립성을 유지하고, 내부 구성원과 시민단체, 여야의 의견 수렴이 기본인데 그게 싫다는 것”이라며 “완전히 해체된 건 아니라고 하지만 두어 사람을 대외협력실로 옮겨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공영방송이 가진 공적 기능에 대한 철학이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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