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성소수자들은 ‘혐오론자’들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일까. 지난 주말 2016퀴어문화축제가 화려한 막을 올랐다. 퀴어축제는 한국에서만 열리는 행사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성소수자들이 모여 자긍심을 보여주자는 의미에서 마련된 장이다. 존재에 대한 부정과 차별을 견디며 성소수자들 스스로 만들어 낸 축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저항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는 올해가 열일곱 번째지만, 이번에도 성소수자들의 축제는 언론에 의해 부정당했다.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뉴스는 ‘실랑이’(KBS), ‘또 충돌’(SBS), ‘도심 한복판’(KBS·TV조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보도했다. 이번 퀴어축제의 슬로건은 ‘QUEER I AM : 우리 존재 파이팅!’이다.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Here I am’에서 ‘Here’를 ‘QUEER’로 바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 여기에, 우리 그대로의 모습으로, 퀴어하게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이 퀴어축제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이번에는 왜 그 같은 슬로건으로 정했는지를 전달한 리포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과연, 반대집회가 열리지 않았다면 이를 어떻게 보도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불편한 부분을 한 가지 더 꼽자면 ‘도심’에 성소수자들이 모였다는 것이 영 못마땅한 듯한 논조다.

6월 11일 KBS '뉴스9'

거의 모든 방송뉴스가 성소수자 ‘혐오론자’의 주장을 전했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대표 공영방송 KBS의 경우, 퀴어축제에 모인 사람들의 규모에 대해 “주최 측 추산 4만5000명, 경찰 측 추산 1만1000명이 모였다”라고 보도했다. KBS는 또 “대한문 앞에선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와 시민단체 회원 1만2000명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집회 인원에 대한 이런 식의 보도가 어떻게 통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비등비등한 수가 모였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걸로 추정된다.

6월 11일 KBS '뉴스9'

KBS는 퀴어문화축제가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것도 문제 삼았다. “서울광장에서 퀴어축제를 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의 절대 대다수가 우려하는 상황이 아니겠느냐”라는 퀴어축제반대국민회의라는 단체의 소강석 상임대표의 말을 강조한 것이다. TV조선 또한 ‘도심 한복판’이라는 수식을 붙인 부정적 관점을 내비쳤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가능한 ‘광장’을 성소수자들이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것을 문제 삼는 이들이야말로 성소수자는 시민이 아니라는 저열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KBS는 이를 걸러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발언들 중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이 같은 보도는 <KBS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정면을 위배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일반준칙 중 ‘다양성’ 항목은 “KBS는 사회적 신분이나 계층, 성별, 나이, 종교, 출신지역, 정치적 입장, 국적, 인종 등에 따른 다양한 의견과 이익을 차별 없이 반영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편견을 조장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고 규정한 대목도 있다.

SBS 뉴스 역시 보도의 중심을 ‘충돌’에 맞춰졌다. 기자는 스케치 형식에 맞춰 “퀴어축제 참가자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행진을 벌입니다. 행진 대열 옆 인도에서는 보수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반대 집회를 벌입니다. 도로로 뛰어들어 행진을 가로막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합니다. 서울광장에선 올해로 두 번째 열리는 성 소수자 문화축제에 기독교 단체 등 보수단체가 맞불 집회로 반대한 겁니다”라고 보도했다. 퀴어축제의 충돌을 그리다보니 리포트의 마무리 또한 “퀴어문화축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커서 매년 행사 때마다 이런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라는 말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의 '악담' 수준의 보도다.

6월 11일 SBS '8뉴스'

SBS뉴스에서도 혐오론자의 발언은 그대로 보도됐다. “동성애는 가정을 파괴시킨다. 자녀가 생산이 안 되고 사회가 존립이 안 된다”는 나라사랑 자녀사랑 운동연대 양현모 목사의 말이 대표적이다. 그의 말을 거꾸로 되돌리면 ‘자녀 생산이 안 되는 가정으로 사회 존립이 안 된다’가 될 수 있다. 한국사회 난임·불임 부부들이나 경제적 이유 등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자녀를 계획을 포기한 부부와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비혼들 까지 모욕하는 주장이다. 인간의 존재론을 재생산 여부로 가르는 최악의 담론이다.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동성애’가 아니라 경제적 이유다.

성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언제 언론매체들이 제대로 다뤄주긴 했는지 의문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성소수자들이 연루된 ‘범죄’에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뉴스를 팔아먹기 바빴던 게 한국사회의 언론들이다. 해외 드라마를 가져오면서 성소수자 역을 일부러 없애기도 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심의위원들이 “손잡는 것만 표현해도 되지 않느냐”며 성소수자적 표현을 자제시킨다.

지금은 퀴어축제 기간이다. 365일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축제다. 이런 축제에 대한 보도마저도 기계적 중립을 말하며 혐오론자들의 이야기들을 꼭 뉴스에 담아야 할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이번 축제의 슬로건을 상기한다. 그들이 다시 ‘존재’를 언급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MBC는 퀴어축제를 아예 보도하지도 않았다. 축제 소식을 전하면서 혐오세력의 발언을 퍼트리는 것과 아예 축제 보도를 하지 않는 것 중에 무엇이 나은 것인지 솔직히 단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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