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가해’라는 개념이 있다. 이게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 하는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서 수사관들은 피해자들에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놨다’는 등 폭언을 했다. 이런 유형의 2차 가해들은 지금도 버젓이 자행된다. 피해자에게 피해 당시 상황을 반복 진술 하게 만들거나 가해자와 대질 시키는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요즘 2차가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대상은 언론이다. ‘OO녀’라는 표현으로 사건의 내용을 단순 유희거리로 만들거나,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여성이 “술에 취해서”, “짧은 옷을 입어서”라고 규저앟??등 가해자의 관점을 드러낸 보도들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벌어진 여교사 성폭력 사건 또한 이 같은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헤럴드경제의 기사 제목은 대표적 사례다. 헤럴드경제는 해당 사건을 다루면서 차마 다시 옮기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선정성을 담고 있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헤럴드경제는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제목만 문제가 아니다. 이 기사는 가해자의 시각을 그대로 담고 있다. 기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해당 기사는 ‘(피해자가)술에 취했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했다’라고 읽혀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헤럴드경제 사과문은 사이트에서 삭제된 상태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4일 발표한 사과문. ⓒ한국기자협회보 기사캡처

MBN과 채널A 보도 또한 문제로 제기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채널A <종합뉴스>는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라는 주민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7일 채널A는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술자리에 동석했던 A씨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담았다”며 ‘단독’보도했다. 내용은 “(가해자들은)다 착실한 사람들이다”, “술 먹다 우발적으로”, “남자들은 (나이가)80이라고 해도 유혹 앞에서는”라는 등의 가해자를 두둔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민언련은 “‘신빙성이 없는 내용’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내용을 보도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채널A가 해당 사건을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적이다. 채널A는 뉴스에 ‘재연 장면’도 삽입했다. 가해자 3명이 피해자에게 술을 먹이는 모습과 피해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들이 노출됐다. 만일, 피해자가 해당 리포트를 보았다고 가정하면 또 다른 피해를 받을 만한 심각한 내용이다. 종편들의 이 같은 ‘재연’ 기법은 이미 방통심의위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2013년 김학의 성접대 의혹 관련 보도를 하면서 JTBC는 “영상을 직접 본 사람들의 묘사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며 하의를 벗는 남성의 모습을 재연하는 등 중계하듯 보도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중징계(경고) 제재를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종편 MBN도 2차가해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MBN은 7일 <뉴스8>에서 “서울에서는 묻지마 해서 막 사람도 죽이고 토막 살인도 나고 그러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라는 등의 마을주민 반응을 리포트로 전했다. MBN은 이게 마치 특종이라도 되는 듯 시사토크쇼 <뉴스&이슈>와 디지털뉴스국을 통해 재가공해 기사화했다. 전날 6일에도 MBN은 해당 사건을 섬 이미지 훼손을 걱정하며 피의자들을 두둔하는 일부 주민의 목소리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는 게 민언련의 지적이다. 실제 문제가 된 리포트에는 “술이 시켜서 그랬는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까지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는데…”라며 피의자를 두둔하는 주민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인권보도준칙>과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등이 거론된다.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 권고 기준’ 총강 5항은 “언론은 성범죄를 보도할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인권을 존중해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실천요강 5항도 “언론은 성범죄의 범행동기를 개별적 성향 -가해자의 포르노, 술 , 약물 등 탐닉, 자제할 수 없는 성욕 등-에 집중함으로써 성폭력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하거나 가해자의 책임이 가볍게 인식되지 않도록 주의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채널A와 MBN의 보도는 명백한 2차가해로 볼 수 있다.

이런 행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4조의4(피해자등의 인권 보호)는 “방송은 피해자등의 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솜방망이 제재라는 비판을 받지만 방통심의위는 해당 방송사에 대해 과징금 혹은 방송사 재허가시 감점이 되는 법정제재를 부과할 수도 있다.

앞서 지적했듯 문제는 언론사들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각과 태도에 있다. 우리는 이미 이른바 '고종석 사건'에서 언론들의 하이에나와 같은 습성을 정면으로 바라봐야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른바 속칭 ‘팔릴만한’ 사건이 터지면 무차별적인 취재경쟁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반드시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발생한다. 진보-보수의 구분도 없다.

고종석 사건을 보도한 한 매체는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게임광이다’. ‘해당 가족의 월수입은 OO만원이 채 안 된다’는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물론, 이것만 갖고 해당 매체가 가해자의 행위를 옹호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는 피해자가 처해있는 환경의 문제를 언급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문제 있는 보도다. 또 다른 매체 기자는 피해자의 언니를 만나겠다면서 화장실 안까지 잠입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겪어야했던 또 다른 심적 고통은 취재, 특종, 단독 앞에서 무력화됐다.

헤럴드경제가 ‘사과문’을 게재했듯 언론매체들은 또 다시 반성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기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언론사와 내부 구성원들 자체적인 반성이 필요한 문제다. 그래야 말로 만이 아닌 ‘인권보도’를 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될 수 있다. 더 이상 ‘언론의 습성’이라는 말 뒤에 숨지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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