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미디어스

Updated 2019.2.23 토 15:05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한 노동자의 죽음과 공방노 출범식 유감[기고] KBS 최용수 PD
KBS 최용수 PD | 승인 2007.10.31 15:02

지난 30일 언론사 최초의 ‘제2 노동조합’으로 출범한 KBS ‘공정방송노동조합’(이하 공방노)과 관련해 KBS 최용수 PD가 <미디어스>에 기고문을 보내왔습니다. <미디어스>는 토론과 논쟁을 환영하는 차원에서 이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28일 또 한명의 노동자가 운명을 달리 했습니다. 10월 27일 오후에 열렸던 인천시전기공사협회와 영진전업에 대한 규탄집회 도중 ‘인천전기원 파업투쟁 정당하다’고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정해진 전국건설노조 인천지부 전기분과 조합원이 그 분입니다. 그 분은 분신 시도 후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이승을 떠났습니다.

그 분의 주장은 “주 44시간 근로시간 준수, 토요 격주 휴무 보장, 단체협약 체결 등”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그이의 이 소박한 외침은 언론의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울림 없는 메아리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공영방송 KBS는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날 소식을 그나마 상세히 전한 언론사는 한겨레신문뿐이었고, 경향과 서울신문, SBS와 MBC 등은 간단히 사건기사로 분신사망소식만을 전했습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이 기사화하지 않았음은 물론입니다.

대다수 언론의 무관심에 묻혀간 한 노동자의 분신

   
  ▲ 한겨레 10월28일자 12면.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유로 운명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내걸며 외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런 주장들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일까요?

고 정해진 노동자가 고통 속에서 운명을 달리 하신 이틀 뒤인 어제(10월 30일)는 KBS 시청자 광장에서 언론사 최초의 ‘제2 노동조합’ 출범이라는 KBS ‘공정방송노동조합’(이하 공방노) 창립식이 열렸습니다. 이 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을 비롯하여 이주천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이석연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등 우파시민단체 관계자와 배정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등 한국노총 관계자 50여 명이 귀빈으로 참석했습니다. 물론 어제 저녁부터 이 행사는 언론의 주목을 받아 보도되었고, 또 많은 보수 언론은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기사까지 실어주고 있습니다.

이날 출범식에서 이광연 공방노 공동위원장은 공방노 설립을 위해 회사의 갖은 압박과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조직을 건설할 수 있었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전했고, 또한 창립 선언에서 윤명식 공방노 공동위원장은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편파, 왜곡 방송을 일삼아 온 KBS를 바로 세우겠다”며 ‘공정방송’에 대한 강력한 수호의지를 천명했습니다.

이날 공방노 분들의 말씀들을 행간을 무시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앞으로 KBS의 방송은 공방노가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훨씬 더 국민의 사랑을 받을 것 같습니다. 고 정해진 씨의 죽음처럼 그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시장의 왜곡된 구조와 비참한 실상도 그대로 다 전달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몇 년전까지 사측 간부였다가 이제는 노동자? 

이건 정말 코미디입니다. 공방노 공동위원장인 윤명식씨가 그동안 안팎으로 돌아다니면서 하고 다닌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앞으로 공방노의 활동을 통해 공영방송 KBS가 더 기득세력에 가깝다고 느끼며 좌절할 노동자들의 분노가 두려워집니다. 이미 우리조차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들에 대해서 이렇게 무감각해져 있는데 말입니다.

   
  ▲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1층 시청자광장에서 열린 KBS '공정방송노조'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은경  
 
이건 기만입니다. 어떻게 131일 파업에 가족들의 생존권을 보장할 자유조차 갖지 못한 채 절망적인 삶을 마감한 정해진 씨와 생존권 보장의 자유는 물론이고 더 많은 우파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며 노동조합을 설립한 윤명식 씨가 어떻게 같은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묶일 수 있습니까? 불과 몇 년 전까지 사용자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측 간부의 지위에 있던 분들이, ‘노동자’로서의 지위에는 도무지 성이 안차 간도 쓸개도 다 빼놓고 간부자리를 구걸하던 분들이 어떻게 갑자기 ‘노동자’로 화려한 변신을 할 수 하게 된 겁니까?

화려한 미사여구로 ‘비참한 처지에 내몰려 있는 노동자’의 이름을 팔지 마십시오. 그냥 솔직하게 우파권력 창출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그 밑천으로 우파 방송사의 간부가 되고 싶어서 ‘노동자 조직’이 아닌 ‘정치 조직’을 만들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다니십시오.

그리고, 제발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후배들 욕하고 다니지 마십시오. 진짜 그동안 많이 해먹지 않았습니까? 지금 후배들은 공방노 선배들의 월급의 반도 안되는 이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리고 그 월급도 감지덕지 받으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소위 88만원 세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일부 후배들이 특정이념에 경도되어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잃고 있다는 주장, 보기에 따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방노 선배들처럼 특정 정치세력에 빌붙어 권력의 떡고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는 식의 과격한 발언은 삼가해 주십시오. 누릴 떡고물도 없지만 그런 떡고물 바라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제 윤명식 위원장께서 ‘KBS의 도덕 재무장’ 주장하시더군요. 후배들 기가 찹니다. KBS의 모럴 해저드는 ‘80’의 국민이 주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을 ‘20’을 위한 편파방송 만들려는 거 아닌가요?

37년 전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놓은 다음의 말을 옮기며 공방노 선배들게 물어봅니다. 조영래 변호사가 남겨놓은 ‘전태일 평전’이라도 제대로 한 번 읽어 보시고 노동조합운동 하겠다고 나서신 것인지.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가마,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 전태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중에서

KBS 최용수 PD  webmaster@mediaus.co.kr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BS 최용수 PD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3
전체보기
  • 친구가 2007-10-31 19:22:46

    그 쪽으로 말 갈아타나   삭제

    • 친구가 2007-10-31 19:21:09

      그 나마 당신의 글이 있어 위안으로 삼는다   삭제

      • 양문석 2007-10-31 15:35:07

        전태일열사를 당신 덕에 다시 돌아본다...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형제와 고향이 있는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버리고 간 그 절박절실한 마음을...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그 마음을 최용수 피디 당신 덕에 다시 돌아본다....   삭제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2길 22 가든빌딩 608호 (우) 07238  |  대표전화 : 02-734-9500  |  팩스 : 02-734-2299
        등록번호 : 서울 아 00441  |  등록일 : 2007년 10월 1일  |  발행인 : 안현우  |  편집인 : 안현우  |  개인정보책임자 : 윤희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희상 팀장
        Copyright © 2011-2019 미디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mediaus.co.kr

        ND소프트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