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오후 4시, 오랜만에 따스한 토요일이 찾아왔지만 프레스센터 앞에는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과 MB악법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언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유가족들 그리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시민들 1천여 명이 모여들었다.

▲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한 언론노조 결의대회 모습ⓒ나난


지난 25일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이 미디어관련법안을 직권상정시킨 상황에서 오는 3월2일 본회의 상정이 예고되고 있어서인지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모습에는 비장감이 엿보였다.

더욱이 결의대회 사회를 맡은 김성근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의 “이 자리에는 용산 희생자 유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다. 용산참사 집회를 ‘불허’하기 때문에 함께 진행하게 됐다”라는 말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나난

이날 첫 번째 발언을 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전날 벌어진 전여옥 의원 피습 논란에 대한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제가 어제 그 현장에 함께 있었습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브리핑을 통해 ‘5~6명의 여성들이 달려들어 욕설을 해대며,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때리고, 전여옥 의원의 눈에 손가락을 후벼 넣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욕설 퍼붓고 눈 빼버리겠다며 10분간 위협·폭행’, 중앙일보는 ‘머리채 잡힌 채 눈·목부위 가격당해’ 그리고 동아일보는 ‘눈을 뽑아버려야 돼(욕설)’이라고 다뤘습니다.”

이어 그는 “왜 이명박 대통령이 언론을 장악하려는가”라고 물으며 “방송에서 이런 기사 쓰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성토했다. “장기집권을 위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두고) 기자에게 ‘눈을 후벼팠다’고 하며 KBS, MBC, SBS, CBS, EBS의 앵커들에게 원고 읽으라는 거 아닙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위원장은 단호하게 “그러나 저희는 그런 기사 죽어도 못씁니다”라고 못 박았다. 용산참사 관련해서도 “우리는 절대 도심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싶지 않다”며 “그래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김영호 미디어행동 대표는 고흥길 국회 문방위 위원장의 직권상정이 원천무효임을 강조했다. 그는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법안명을 호명하고 ‘상정을 선포합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22개 미디어법안’이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법’은 없습니다”라며 직권상정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KBS노동조합에 대해 “3월2일 본회의를 앞뒀는데 KBS노조는 그제야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고 합니다”라며 쓴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그는 “용기 있는 KBS PD·기자·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되어 더러운 KBS노조 깃발을 찢어버리고 전국언론노조 깃발 아래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라고 이들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흥길 문방위 위원장의 직권상정 바로 다음날인 25일 새벽 6시를 기점으로 전면 파업에 돌입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박성제 본부장이 등장하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 박성제 MBC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나난

박 본부장은 “중단됐던 PD수첩 수사가 재개됐습니다. 신경민·박혜진 앵커의 멘트도 징계한다고 합니다. 저와 지도부에게는 다음주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입니다”라고 말해 참석한 시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박 본부장은 “두렵지 않습니다”라며 “다만 우리의 입과 눈, 카메라와 마이크가 막힐까봐, 조중동 보도가 될까봐 그것이 겁이 납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울 각오로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박수가 다시 터져나왔다.

이날 집회 마지막 발언은 용산참사 유가족 및 용산 참사 범대위에게 주어졌다. 용산참사로 인해 숨진 故 이상림씨의 며느리이자 용산참사로 인해 부상 및 구속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부인인 정영신씨가 유가족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용역들에게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기 싫어, 더 이상 맞기 싫어서 망루에 올라갔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경찰과 용역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면서 철거민들을 자살테러범으로 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국민들이 믿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주검이 되어 돌아오신 아버님이지만 다리를 부상당한 남편은 문상 한번 하지 못하고 구속당했습니다. 가난이 죄입니까? 힘없는 것이 죄입니까?”라며 울분을 토했다.

박래군 용산참사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용산문제가 나오면 ‘불법’이랍니다. 추모제도 추모 행진도 못하게 하는 것이 진정 불법이 아니겠습니까? 경찰은 범대위 소속 활동가들을 체포했으며 저 또한 현장에서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 철거민들은 살려고 올라갔는데 이들을 자살테러집단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라며 분개했다. 진정 언론의 역할과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나타내주는 발언이었다.

▲ 언론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한 MBC 아나운서들ⓒ나난

이날 경찰은 집회 시작 전부터 프레스센터 건물 앞까지 전의경들이 배치해 원천봉쇄를 시도했다. 그러나 모여드는 언론노동자들과 시민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집회 도중에는 해산명령을 위한 경고방송이 이어졌고 한때 언론노조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경제에 입각한 뉴스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뉴스코리아 소속 기자들이 경찰 및 용역으로 오인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결의대회는 3월 2일 언론노조 전면파업을 예고하며 끝이 났다.

이날 오후 7시 다시 프레스센터 앞에는 ‘언론장악저지·민주주의수호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이어졌다. 촛불문화제 역시 500명이 넘는 언론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결의대회와 촛불문화제에는 유독 재밌는 사건·사고·발언들이 많아 정리해봤다.

#1. 오늘 집회는 전의경도 함께~3컷
시민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이곳을 접수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전의경들. 전의경들은 광화문 사거리에서부터 범국민대회가 열리는 프레스센터 앞까지 가는 길목마다 정렬해 집회를 방해했다. 결의대회가 진행되는 장소 한 가운데까지 전의경들이 배치돼 있어 집회에 차질이 빚어지자 언론노조 김성근 조직쟁의실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늘 집회에는 전의경분들도 참석해주셨습니다. 집회 참석자 여러분, 경찰 사이사이로 서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집회에 참석한 전의경들이 구호외치는 것이 서툴 것이니 잘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살인진압 책임지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지지 않는 전의경들을 보고 참다 참다 못한 김성곤 실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전경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사진으로 언론에 나가면 곤란할 것이니 뒤로 물러나라.”
이래서 연출된 전의경들의 집회모습 오인 사진!

▲ 전경들이 마치 '언론장악 포기하고 국민아게 항복하라'는 플랜카드를 든 듯 하다ⓒ나난

▲ '우리에게 더이상 고통분담을 요구하지 말라!'라는 전의경?ⓒ나난

▲ 집회에 앞서 묵념을 함께 하는 전의경들?ⓒ나난

#2. ‘언론’노조 집회에서 ‘욕’이 등장했다는데…

▲ 김성근 언론노조 실장
◇ 집회도중 대오 뒤편에서 전의경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언론노조 지본부장들의 발언 중이었으나 김성근 실장이 바로 마이크를 잡았다. 김성근 실장은 또 다시 명언을 남기는데….
“‘씨발… 성질 뻗쳐’. 문화부 장관이 이런 욕은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손님들 모시든 말든 니네가 무슨 상관이냐?”

▲ 노종면 YTN노조위원장

◇ 언론노조 지본부장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차례가 온 노종면 YTN 지부장.
“MBC본부가 직권상정에 맞서 26일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MBC가 선도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저는 MBC발 파업이라고 생각합니다. ‘MB C(씨)발 파업’”(물론 수많은 환호성을 받았다.)

#3. 결의대회 및 촛불집회에 등장한 유쾌한 말

▲ 김보협 한겨레지부장
◇ 김보협 한겨레지부장, 시민들 때문에 당황했다는데…
“언론노조가 파업하면 한겨레도 윤전기를 멈추고 파업에 동참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그렇게 하라면 하겠습니다. ‘한겨레도 파업에 동참할까요?’”
(시민들) “네~”
(당황한 위원장) “한겨레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투쟁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죠?”
(시민들) “네~”
(장난인 거 아시죠?. 열심히 보도투쟁해 주세요~!)

▲ 심석태 SBS지부장
◇ 나도 발언을 길게 하고 싶다?
전의경들과 몸싸움이 벌어질 당시 발언을 하던 이는 심석태 SBS본부장이었다.
“제가 뭔가 말을 하려고 마이크만 잡으면 이상하게 이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오늘도 그렇고 지난번 청와대 앞에서도 그렇고….”
그리고 7시에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심 본부장의 발언이 이어지기는 했는데…
“낮 결의대회 때는 전의경들이 제가 발언할 때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촛불문화제 때에는 하고 싶은 말 다 하려했는데 이번에는 사회자가 시간이 없다고 짧게하라고 하네요^^;”
짧은 발언 시간이었지만 심 본부장은 중요한 말을 남겼다.
“종편채널 허용한다고 하면 지상파를 지켜도 소용없습니다. 종편되면 지역방송은 다 죽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지상파만 보면 안됩니다. 지상파는 양보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왜 종편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지도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 백기완 선생님
◇ 촛불집회 사회자가 MB같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백기완 선생님에게 사회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1분간 언론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기를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달라.”
이 말을 듣고 백기완 선생님이 어렵게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는 말.
“날더러 기를 달라고 하네. 야, 이놈들아! 나는 자리에서 앉을 때도 일어설 때에도 부축을 받아야 하는데 니들이 나에게 기를 줘야지.”
그리고는 바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회자! 이놈아 1분 지났어.”
이에 사회자는 1분 더 드리겠다고 했고, 이 말을 들은 백기완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니가 MB같애, 언론자유를 주려면 완벽하게 줘야지.”
(오해 마시라, 사회자와 백기완 선생님은 이전부터 아는 사이라 장난으로 이야기한 것임. 미디어법안이 통과되면 이런 말을 인터넷상에 올릴 때 조심해야 한다. 사이버모욕죄에 걸릴 수도 있다.)

#4이들의 등장이 반가웠다

▲ KBS PD협회 깃발
◇ KBS PD협회 깃발
이날 집회에도 역시 KBS노동조합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스센터 앞 집회장에서 휘날리던 한 깃발이 있었으니 ‘KBS PD협회’. 김덕재 KBS PD협회장에게 발언기회가 주어졌다.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영방송 KBS가 이병순 사장이 들어오고 6개월 만에 이렇게 쉽게 무너질지 몰랐습니다. 더욱 선제적이고 강고하게 싸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KBS노동조합은 우왕좌왕하고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KBS노조가 월요일에 파업 찬반투표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싸움에 동참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KBS PD협회는 총회를 열고 PD 차원에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3월2일 5시를 기해 전면 제작거부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 노중일 OBS지부장
◇ 노중일 OBS지부장
“민영 OBS에도 MB특보가 꽂혔습니다. 정권 및 자본에 독립해 스스로 서야 하는 방송사인데 YTN에 이어 OBS에 MB특보라니. 여러분, OBS에 MB특보가 사장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로써 단식 18일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러한 노조투쟁을 두고 고소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공익민영방송 OBS 꼭 지켜내겠습니다.”


◇ 노종면 YTN지부장
노종면 지부장의 발언 순서는 OBS지부와 아리랑TV지부 다음이었다.
“YTN을 비롯해 셋을 모아 놓은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낙하산 사장. 똘똘 뭉쳐서 열심히 투쟁하라는 의미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노종면 위원장의 눈은 집회대열 앞쪽에 앉아있는 유가족들을 향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카메라로 쳐다봐도 눈시울이 일렁입니다. 맨 눈으로 봐도, 카메라도 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방송전파만 타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박제화 려는 것이 MB정권,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안입니다.”

◇ 동아일보 신문 인쇄지부
따로 발언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신문 인쇄지부가 이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5. 촛불집회에 등장한 한 시민의 시
◇ 아멘(김제현)
하나님이시어 여기 당신 자제 한 분 이 장로가 있습니다.
육백년 도읍지를 당신께 봉헌하고, 입만 열면 거짓말이요,
헌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모르며 언론과 자유를 짓밟고
국민의 소리에 귀 막고 그토록 촛불이 목 터지게 외쳐도
아편보다도 나병보다도 더 무서운 광우병을 돈 주고 수입하는
하나님 자제 이 장로를 어서 빨리 쫓아 내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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