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방영된 <썰전> 168회에서는 <주간 떡밥>으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다뤘다. 패널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모두 이 사건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은 달랐다. 전원책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이와 유사한 사건의 예를 들며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 사회가 방기가 '강남역 살인 사건'을 낳았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유시민 변호사는 '여성'을 최후의 식민지로 여기는 '남성' 일반의 전근대적인 인식이 결국 강남역 살인 사건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유시민 변호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오히려 그런 인식들이 우리 사회 남과 여의 대립을 조장하며 본질을 왜곡한다는 뉘앙스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유시민 변호사는, 그 '남성'은 여성이 들어올 때까지 여섯 명의 자신과 같은 '남성'들을 그냥 보냈다는 사실을 짚는다. 물론 그 '남성'은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병적 인식의 근저에는 바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잡아 보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 남자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차별'을 잘 모른다고.

최후의 식민지, 여성

전원책 변호사도 그랬다. 세상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요즘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왜 새삼스레 '여혐'이니 ‘차별’이냐고 묻는다. 유시민 변호사의 '모른다'는 말조차 선뜻 수긍하기 힘들어 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표정은 어쩌면 바로 우리 사회 표준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오히려 억울해 하며 강남역에 모여든 여성들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전원책 변호사의 이런 수긍하기 힘든 표정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디어 마이 프렌즈> 6화는 바로 그 오늘날 '여혐'으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 최후의 식민지, 여성 차별의 역사를 짚는다.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꽃보다 청춘>에서 '구야 형'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새삼스레 노년의 인기를 회춘한 신구가 <디어 마이 프렌즈> 정아 이모의 남편 김석균으로 분한다. 하지만 넉넉한 웃음에 배려심 넘치던 '구야 형'은 온데간데없이, 동네방네 시끄럽게 아파트 현관문을 발로 차며 마누라 이름을 불르는 김석균 씨는 이 시대 전형적인 꼰대 할아버지다.

문을 제때 안 열어주는 아내, 밥을 제때 안 차려주는 아내, 이러저러한 그의 요구에 딱딱 맞춰 주지 않는 아내에게, 아니 요구를 제때 맞춰 주더라도 그저 집에서 하는 없이 밥만 축내는 여편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말뿐이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문도 안 열어주는 식으로 '실천'도 마다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드러났듯 김석균 노인의 아내에 대한 태도는 그가 한평생 견뎌온 트라우마의 방출이다. 중졸 학력으로 고졸 아내와 결혼한 콤플렉스부터, 사회적으로 늘 못 배운 것으로 인해 겪은 수모 등이 자신의 '안사람'인 아내에게 쏟아 부어지는 것이다. 내 사람, 가장 만만한 사람, 바로 그의 아내가 그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소외의 '배설지'가 된다.

그런 남편을 아내 정아 이모(나문희 분)는 인내해왔다.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다 이제는 요양병원 신세가 된 친정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10억을 모은 남편이 세계일주 시켜줄 것만을 고대하며 모든 모욕을 견뎌왔다.

가부장, 그 폭력의 역사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6화 정아 이모의 큰딸의 가정 폭력 사건이 공개되면서 정아 이모 부부의 일이 그저 '부부'만의 일이 아닌, '내림'이 되는 역사였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어린 시절 석균이 일하던 공장 사장 아들에게 추행 당했던 순영은 결혼을 하며 남편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고, 그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골병이 들도록 '폭력'에 시달려 왔다.

순영은 어린 시절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아버지가 보였던 '기집애가' 라는 모멸적 반응, 거기에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참아내는 어머니를 보며 '가부장적' 기제를 내재화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듯, '나 하나만 참으면'이라는 의식으로 남편의 폭력을 견뎌왔다.

정아 이모네만이 아니다. 평생을 남편에게 얻어맞고 살다, 다 늙어서야 '폭력'에서 벗어난 난희 모 오쌍분 여사(김영옥 분)네도 만만치 않다. 난희 남편의 사랑을 빙자한, 집 안방에서까지 마다하지 않은 외도는 어떤가. 남편을 벽장 속에 가둬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희자(김혜자 분)가 평생 견뎌야 했던 남편의 바람끼는 또 어떻고.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사실은 그 공장사장 아들을 두드려 팼었고, 이제 또 폭행 사실을 알게 되어 사위를 찾아가 패악을 부렸다지만,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팔자 좋은 여편네와 딸들이 견뎌온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는 산소통 없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오쌍분 여사 남편이 제 아무리 아내바라기를 해도, 아내 오쌍분 여사의 시선은 남편에게 돌아갈 수 없다. 남편의 그늘에서 살아온 김희자 여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늘 위태롭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결국 아름다운 가족애로 마무리될지는 몰라도, 그녀들이 지난 세월 견뎌야 했던 '가부장'이란 이름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맞은 아내가 겨우 경찰서에 찾아가면 가정 내 문제라고 되돌려 세우는 세태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위협을 느끼며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세상에서 거울 앞에선 할머니들의 얼굴에 새겨진 '가부장'이란 이름의 문신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모르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세상이 이를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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