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가장 많이 ‘시달린’ 곳 중 하나는 언론이었다. ‘언론 장악’이라는 말이 오랜만에 소환될 만큼, ‘공영언론’은 권력이 보낸 낙하산 사장으로 몸살을 앓았다. 국내 대표 보도전문채널인 YTN도 그 희생양이 됐다. YTN에는 이명박 대통령 특보 출신인 구본홍 사장이 내려왔고, ‘공정방송 사수’를 외쳤던 내부 구성원들은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격렬히 항의했다. 그러나 이 투쟁은 6명 기자의 ‘일시 해고’라는 상처를 남겼다. 해고자 6명을 포함해 총 33명이 대량 징계를 받았다.

2008년 9월 9일, YTN노조원 50여명이 사장실로 출입하려는 구본홍 사장을 막고 있다. ⓒ미디어스

지난 9일, 91.92%라는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하며 제12대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지부장으로 당선된 박진수 기자도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참여를 이유로 징계를 받은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국무총리실에서 작성한 민간인 사찰 문건에 나타나듯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의 개혁에 몸을 바칠 각오가 돋보’인다는 배석규 사장 퇴진 및 공정방송 쟁취를 위해 벌인 2012년 파업에서는 ‘노래하고 춤춘 죄’로 정직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을 만큼, ‘만만치 않은’ 시간들을 보내왔다.

사측에 눈에 들어 고초를 겪었던 그는 노조위원장 출마에 나서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봄’을 이야기했다. “와야 할 동료들”도, “우리 삶의 터전”도 “추운 겨울 속”에 있지만 “겨울 기운을 몰아내고 봄의 온기를 퍼뜨리기 위해” 첫 발을 뗐다는 것이다. ‘해고자 복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건 박진수 지부장은 “우리는 시즌1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임기 중 3명의 해직자가 돌아오면 12대 집행부의 임무는 끝났다는 의미다. 앞서 대법원은 2014년 11월 27일, 공정방송 투쟁에 나섰던 6명의 기자 중 3명(노종면·조승호·현덕수)의 해고는 유효하고 3명(권석재·우장균·정유신)의 해고는 무효하다는 고법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해고자 복직을 이뤄내 진정한 ‘상암동 새 시대’를 열고 싶다는 박진수 지부장은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뉴스퀘어 YTN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1. 찬성률 96.36%에 역대 최고 투표율로 당선됐다. 간단히 소감 부탁드린다.

소감은 ‘기쁘다’, ‘잘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다기보다 차라리 무겁고 책임감이 든다. 앞으로 제가 맡게 될 2년이 YTN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 변동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어서 어려운 마음이 크다. YTN엔 아직 해직자가 다 돌아오지 못했고, 언론의 원론적인 기능인 비판과 감시 기능이 현저히 줄어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자괴감이나 패배의식이 만연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불안해하고 있다. 그래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2. 등록한 후보가 없어 선거가 2차례 미뤄질 만큼 어려운 시기에 지부장에 나섰다. 특별한 출마 계기가 있나.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에 공영성, 공정성 담보해야 할 방송의 언론노동자들이 탄압받아 위축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언론노동자들이 이렇게 위축되는 건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까지 어둡게 만든다. 방송에 공영성,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현재뿐 아니라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

물론 내부에서 ‘우리가 뭘 한다고 될까’, ‘우리가 비판하는 기사를 쓴다고 해서 그게 보도가 될까’ 하는 생각들이 팽배해져 있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 나서지 않으려고 하는 배경에는 그런 게 있다고 본다. 저도 2008년부터 동료들과 함께 언론탄압의 위험성을 뼛속깊이 느끼고 저항해 온 사람으로서, 사실 후배들 중에 누군가가 맡으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 없다면 제가 브릿지(다리) 역할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저희 YTN 노동조합은 다른 사업장하고 다른 게 하나 있다. 투쟁을 해 온 사업장 중에서도 주니어 세대들이 아직 건재하다는 점이다. 건전한 친구들이다. 다른 곳에선 노조 가입 자체도 잘 안 하고 노조에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저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힘들지만 희망을 보고 있다. 이번 투표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저는 가능성을 봤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우리 YTN노조 사람들이 여전히 ‘한 번의 기회는 오지 않겠느냐’는 가능성을 갖고 노력해 내부 동력이 살아난다면 해직자 문제도 당연히 풀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내부에서 누군가에게 권유하고 이런 문화를 끊고 싶었다. 누가 하는 게 어떻느냐 라고 해서 나오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자발성’이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제가 정직도 3번 받고, 인천, 세종에 있는라 이번이 상암동 출근 처음이었다. 아직 남대문 사옥에 있을 때 자원해서 세종시로 갔다. 그땐 해직자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을 때였는데, 상암동으로 가는 짐을 싸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암동 사옥 공사현장 보고 와서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휴직 낼까도 했다. 마치 아들 군대 보내고 이사 가는 심정이랄까. 스스로 많이 힘겨웠다. 그러던 차에 세종 근무자를 구하기에 지원했고 회사도 적극 환영하면서 금세 처리해줬다.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 ‘그렇다면 내가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은 못 하더라도,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이었다.

3. 권준기 사무국장과 함께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지금 사무국장과 일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이 친구 동기 그룹이 다 유능하지만 (권 사무국장은) 생각의 유연성이 굉장히 넓고, 노동운동을 해 왔던 건 아니지만 건전한 비판을 하려고 하는 점 이런 게 굉장히 저와 맞았던 것 같다. 또 하나의 노종면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때는 싸우기만 잘 싸우고 막으면 됐지만 지금은 다변화된 환경 속에서 우리 조합원들 사기도 끌어올려야 하고, 비판 기사도 과감하게 쓰면서 맞설 수 있는 환경 만들고, 사측 감시도 해야 하는 복합적인 상황이다. 권 국장과 노동조합 환경 문제, 동력 문제 등 실질적인 부분들을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4. ‘젊은 기자층’이 건재하다는 점을 YTN노조의 차별점으로 들었는데.

2008년에도 젊은 사원들의 모임이라는 게 있었다. 근데 벌써 그때 기자들이 15년차 이렇게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오늘 국회에서 공영성 토론회가 열렸는데 MBC에선 박성제 해직기자, KBS에선 성재호 본부장이왔지만 저희는 현재 공추위원장(김도원 기자)이 참석했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YTN은 아직도 젊구나’ 하는 느낌이어서. 사실 요즘 노조에서 젊은 사람들이 앞에 나와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얘기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들이 해직자들이나 우리 선에서 끝나면 무의미한 것이다. 후배들에게까지 이어져야 하는 거다. 공추위원장이나 권준기 사무국장, 그 이후 사람들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회사 사장 선임 문제, 인선 문제, 보도 방향 문제, ‘우리가 과연 공영방송인가 민영방송인가’ 하는 것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야 한다. 토론하고 비판하는 문화는 언론사에서는 순기능이라고 본다. 2008년 이전까지 가감 없이 했던 그런 기능들이 지금은 많이 억압돼 있다. (불공정한 보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보도 편성위를 노사 협의로 열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으면 뭐하나. (사측이) 안 하면 무용지물 아닌가. 그래서 오늘 토론회에서도 그런 걸 ‘법제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에 앞서 내부 목소리가 있어야 하는데, 저희는 젊은 사원들까지 언제든지 점프할 의욕도 있고 상황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희망적으로 본다.

5월 25일 발행된 YTN 노보

5. 이번 12대 집행부 명단을 보니 힐링부장, 비전부장, 참여부장 등 다른 노조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직책들이 많더라. 노조 집행부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제가 노종면 위원장 시절 조직쟁의부장을 했고 한 텀 쉬고 그 다음 집행부 때 부위원장, 그 다음 집행부 때에는 수석부위원장이 됐다. 회사에서는 계속 승진을 물먹었지만 노조에서는 계속 승진하는 모양새였던 거다. 노종면 집행부 때 경찰 조사받을 때 ‘쟁의부장이시던데 쟁의 행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여하신 거 아닙니까’ 하더라. 그때 제 정확한 직책을 알았다. 조직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내야 하고, 어떤 부서, 직종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각 부서에서 하나씩 맡아 왔었는데, 노종면 집행부 때는 워낙 이런 저런 일(구본홍 사장 퇴진 투쟁 때 노조위원장이었던 노종면 기자는 구속되어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이 많았고 비상상황으로 꾸리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다.

이번에는 정말 ‘일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자는 생각이었다. 직책도 14개에서 11개로 줄였다. 이름은 너무 고루해서 바꿨다. 직책만 들어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고쳤다. 사원들한테도 노동조합은 2008년 2012년 파업했던 선배들만의 것도 아니고, 별개의 조직인 것도 아니고 ‘우리 다 같이’ 가야 하는 곳이란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집행부 전체적으로 기수를 확 내린 것도 특징이다. 11년차 이런 분들이 전진 배치돼 있다. 참여부장은 말 그대로 참여를 독려하는 부장이다. 조합원들 좀 챙기고 전화 돌리고 이런 역할. 협력부장은 각 직종, 직능 간 예민한 부분이 있을 때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는 자리고, 힐링부장은 조합원들이 ‘힐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옛날 같으면 복지부장 같은 거다.

취임식도 전임자가 아닌 부장이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선언을 하는 것만큼 공감대를 이루는 데 주력하려고 한다. 또, 노조 사무실도 조합원들 의견을 들어 새 단장을 하려고 한다. 사무실에서는 일하지만 적어도 조합에 오면 쉴 수 있게끔 사랑방 같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제가 위원장 되고 나서 처음으로 벌인 일이 페이스북 계정 생성이다. YTN 오프더레코드라는 우리 조합원들만 들어올 수 있는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불과 2~3일만에 조합원 50% 이상이 들어와 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접속건수를 보면 상당히 긍정적인 상태다.

6. 현재 YTN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또 그게 어떻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보나.

당연히 해직자 문제다. 일단 저는 대법원이 내린 3:3 판결에 동의 못 한다. 대법원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판단을 했다. 6명의 행위도, 요구사항도 같았으니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게 자명하다. 이건 우리만 하는 얘기가 아니라 학자, 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공정방송 요구는 방송사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대법원은 (해고무효 판결 시) 업무방해 측면만 자의적으로 따졌다.

그래서 우리가 복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고, 당연히 이 요구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 방안을 많이 물으시는데 사측과 심도 깊게 논의되어야 할 과제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연대를 해서 이 부분에 대해 적극 의견을 개진해 나갈 것이다. 어쨌든 8년 동안 제가 느낀 건 회사는 가만히 있는 목마른 자에게는 절대 물을 주지 않는다는 거다. 요구하고 계속 물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합법적으로 피케팅도 하고 성명도 쓰고 연대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YTN은 단순한 민영방송이라고 볼 수 없다. 공적 지분이 있기 때문에 공영적 요소를 가진 방송이라고 보는 게 맞다. MBC도 광고를 하지만 지분과 성격을 보고 공영방송이라고 하지 않나. 이번 4거다. 공영성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 4·13 총선에 대해서도 민의가 나타났듯, 해직 언론인들은 다시 일괄 복직되어야 한다. 공영성 있는 언론이 겪고 있는 이 과제를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

7. YTN의 보도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 공정방송추진위원회가 잘 이루어지고 있나?

일단 공추위 소집하면 회의는 원활하게 열리는 편이다. 앞으로도 상시적으로 보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시정 요구도 하고 공추위 위원도 소집하고 해서 ‘공추위 기능’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결국 조합원들의 동력을 이끌어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더 활발히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자기검열도 약화될 것이다. 무엇을 하거나 안 하거나 똑같이 효과가 0이라고 한다면, 저는 ‘하는’ 편이다. 해 봐도 똑같으니까 안 한다, 이런 건 아니라고 본다. 현재 YTN은 백조가 수변 아래서 수없이 발버둥치듯 또 다른 비상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8. 조준희 사장이 취임한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어떻게 평가하나.

배석규 사장은 아예 소통을 단절하거나 ‘웃기지 마 이 XX야’ 이런 식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공추위를 열자고 하면 묵살하고 민간인 사찰 문건이 나왔는데도 ‘나도 피해자야’라고 하질 않나, 평일 골프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다. 그런 전임 사장보다 조준희 사장은 명쾌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고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언론사는 결국 유능한 간부들을 통해 보도국 기능을 살려야 하는데 그런 점이 잘 안 되고 있다. YTN에 있는 간부들을 무능력하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실상 사장이 회사의 모든 걸 관할하려는 상황이 됐다고 본다. 하지만 YTN은 조준희 사장 임기가 끝나도 존속하는 곳이 아닌가. 좋은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YTN의 비전’을 위한 일이지만, 잘못될 경우 ‘사유화’가 된다. 그만큼 종이 한 장 차이다. 사유화를 막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간부들이 직언을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돼 문제점이 발생하는 거다. 결국 이런 부분을 노조가 해야 한다. 내부를 성찰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박진수 지부장 ⓒ미디어스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권 국장과 같이 얘기했다. ‘우리는 시즌1을 담당한다’고. 만약에 임기 중에 해직자가 돌아오면 우리 임무는 끝내는 걸로 하자는 거다. 2년 임기 중에 시즌1(해직자 복직 성공)을 하고 싶은 건 자명하다. 우리 집행부가 그걸 이루어, 다음 노조는 상암동에서의 진정한 새 시대를 열고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데에 몰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속성, 전문성, 공정성과 ‘YTN이 하는 건 믿을 수 있어’ 하는 신뢰를 꼭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노력하고 싶다.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안 한다, 될 것이기 때문에 한다’ 이런 자세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조합원들과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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