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이야기로 언론이 ‘도배’됐다. 반기문 총장은 국내 여론의 이런 분위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후문이지만 내심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다수 언론이 제기하는 해석처럼 지금 이 시점이 국내에서 대선 출마 관련 의사를 피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직접 대선 출마 의사를 공개적으로 흘리기는 어려우니 ‘비공개’라는 연막을 친 셈이다.

최근 외신에 의해 반기문 총장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걸 생각하면 대권에 대한 지나친 적극 행보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건 반기문 총장이 그만큼의 매우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첫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무책임하다. 27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정의화 국회의장과 묶어서 반기문 총장을 비난하고 있다. ‘직에 충실하지 않고 자기 욕심이나 챙긴다’는 비난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확대할 수 있는 논리이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맡은 직책이 일정 이상의 중립성이 요구되는 중요한 자리인 이상 이런 비판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공항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도착,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총장의 행보는 유엔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국내 여론의 관심은 이코노미스트가 반기문 총장을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한 것에 집중되고 있는데, 이건 다시 말하자면 반기문 총장의 행보가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 구도를 바꿔 놓을 수도 거다. 유엔사무총장은 관례상 지역별 순환이 이뤄지며 역내 강대국은 배제되기 마련이다. 반기문 총장은 강대국에 할 말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 즉 친미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걸로 해석되는데 이후의 구도에 영향을 끼칠만한 내용이다.

걱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반기문 총장이 갖고 있는 국내정치의 비전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은 국제기구에서 행정가적 수완을 발휘한 게 사실이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그런 정도의 자리가 아니다. 때문에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는 정도의 이유로 ‘검증’됐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다. 반기문 총장은 ‘통합적 리더십’이나 ‘남북관계 개선’ 등의 발언을 내놓고 있으나, 국내정치의 위기가 그런 문제의 해결로 해소될 거라고 보는 건 어렵다.

그를 향한 대중적 지지의 성격이 무엇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다. ‘무게감 있는 행정가’라는 리더십은 과거 고건 전 총리의 것과 유사한 게 사실이다. 조선일보는 27일자 <같은 듯 다른 고건과 반기문> 제하 기사에서 이 문제를 세세하게 해설했다. 반기문 총장이 딛고 있는 정치적 맥락이 고건 전 총리 사례와 유사한 측면이 분명 있으나 충청이라는 지역기반이 있다는 점, 여권 주류인 친박계가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 북핵 문제나 미 대선 등 외교적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에서 다른 측면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분석은 ‘상품’으로서의 반기문을 논하자는 것이지 ‘정치인’으로서의 반기문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정치 지도자는 어떤 비전을 갖고, 어떤 수단을 통해, 어떻게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꿔나갈 것인가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제3후보’들이 단명할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이것이 없기 때문이다. 반기문 총장을 ‘제3후보’로 볼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으로 보자면 여권의 주류 세력이 이런 사람을 대권 주자로 미는 것도 문제다. 정권재창출을 특정한 가치와 노선이 아닌 통치권력의 연장이라는 측면으로만 사고하고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4·13 총선 이후 새누리당이 겪은 온갖 혼란상을 보면 이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친박과 비박이 도대체 무엇을 두고 왜 싸우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보수언론들마저 비판할 정도였다. 논란 끝에 혁신위 비대위 이중체제는 혁신형 비대위라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김희옥 전 동국대 총장이라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사가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친박과 비박은 드러내놓고 쟁점화하지 않고 있으나 적어도 비대위원장이라는 권력을 둘러싼 구도 속에서는 친박이 판을 한 번 엎는 실력행사를 통해 비박을 제압했다는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7월 말, 8월 초에 치러질 전당대회의 향방을 전망해본다면 김희옥 비대위 체제가 뭘 의미하는지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다. 전당대회는 당내 구도와 시점상 상대적으로 친박에게 유리할 것이다. 비박계 구심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한계다. 정병국 의원의 당권 도전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으나 비박을 아우를만한 리더십이 형성돼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이 ‘밀어서’ 당선됐다. 즉, 원내대표-비대위원장-차기 대권후보가 모조리 친박계가 원하는 인물로 채워지는 그림으로 무게 중심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4·13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만일 집권 여당이 말 그대로의 ‘정치’를 제대로 하려고 했다면 이런 결과를 내서는 안 된다.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른바 ‘상시청문회법’에 대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게 아니라 통제하자는 것”이라고 말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국회사무처는 재의결을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다수인 19대 국회 내에 해야 하며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경우 자동폐기 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야권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요구하는 등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절차와 관련해서는 당연히 최대한 법에 맞는 방향으로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른바 상시청문회법을 ‘행정부 통제’라고 본 국무총리의 인식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통제가 아니라 견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 삼권분립의 원칙에 관한 발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 의회정치에서 행정부의 비대화와 입법기관화가 언제나 문제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고래의 이론으로 보아도 입법권력의 우위를 인정하는 체제를 상정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행정권력의 우위에 대해서는 ‘독재’ 등의 우려가 담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결국 반기문 총장에 대한 기득권의 환호나 새누리당의 현실, 상시청문회법에 대한 논란은 모두 정치를 포기 또는 해체하는 것으로 통치권력을 강화하는 박근혜 정권의 실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박근혜 정권에 반대한다는 것, 또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권력을 세운다는 것은 정치를 복원하는 것인 셈이다. 4·13 총선의 결과 역시 누가 무너진 정치를 일으켜 세울 적임자가 누구인지 묻는 거였다는 걸 이제라도 정치권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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