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 드라마 <에덴의 동쪽>이 종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막장이라는 드라마적 기호를 완성시키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밤 10시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내 삶과 동떨어진 재미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기도하듯 돌린 채널에서 매일 막장 앞에 서는 탄광노동자들의 삶이 펼쳐졌을 때, 그들의 싸움과 삶에 함께 울고 웃는 것이 신데렐라와 장군님을 모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임을 우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동떨어진 삶인 것 같지만 지금도 유효한 삶, 동떨어진 역사인 것 같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싸움, ‘살아라, 이겨라’ 하는 심정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하지만 드라마 <에덴의 동쪽>이 선택한 낙원은 결국 ‘막장 드라마’였던 것일까. 어느새 그 곳에는 삶도 싸움도 사라지고 핏줄만 남았다. 이제 막 방영이 시작된 <카인과 아벨>은 차라리 에덴으로 돌아오지 말고 지상의 부대낌을 보여주길 바라게 되는 걸 보면 삶의 고단함이란 잊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 될 기쁨의 흔적들이기도 한가 보다. <편집자>

“시간이 없기 때문에 완성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완결을 해야 돼.” (유재석)
“이건 정말 막 정했구만.” (정형돈)
“와, 이거 완전 막장이구나.” (정준하)
“왜?가 어딨어, 막장 드라마에 / 잔디는 기억상실증이라는 식상한 설정 / 염색약 PPL?” (자막)

‘대한민국 드라마 총집합’을 내건 MBC <무한도전> ‘쪽대본 특집’편(2월14일 방송분)은 ‘1회 대본으로 시작해 쪽대본(시간에 쫒겨 급하게 만들어 곧바로 찍을 장면의 대본을 넘기는 관행)으로 6회분을 12시간 안에 찍는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과연 끝이 있을까 싶은 막장 드라마의 ‘끝’에 도전했다.

▲ MBC <무한도전>의 '쪽대본 드라마 특집'편(2009년 2월 14일 방송분) 화면 캡쳐ⓒMBC
<무한도전>은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천국의 계단+에덴의 동쪽+가을동화…’의 짬뽕 드라마와 ‘식상한 소재’, ‘엉성한 CG’, ‘과도한 간접광고’, ‘극단적인 억지 설정’을 내보이면서 당당하게 말한다. 삼각관계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툭하면 픽픽 쓰러지는 불치병의 여주인공이 넘쳐나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완성도는 문제가 아니다’는 구조적인 시스템의 이유를 들이대면서.

그러니까 ‘막장 시스템’의 상징은 ‘링거’인 셈이다. 지난해 말 종영된 KBS 2TV 월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등장하는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어떠했나. 작가도, PD들도, 모두 링거를 맞아가며 대본을 써서 내달리고, 링거를 맞아가며 밤샘촬영을 한다. 그들은, 방송사가 쥐어주는 궁상떨 만큼의 제작비를 가지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당연한 듯 그렇게 살아간다.

▲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그들이 사는 세상> 제12회(2008년 12월 2일 방송분) 중 화면 캡쳐ⓒKBS
링거 주사를 맞아가며 사는 인생들이 모여 만드는 한국 드라마판은, 그야말로 병들어 있다. 병든 한국 드라마 제작 상황은, 아무래도 ‘쉽게 빨리 가자’는 ‘막장 드라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쉽게 빨리 시청자들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만들어낼수록 시청률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결국 막장(석탄 광산의 끝) 노동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에덴의 동쪽>도 종영일이 다가오자 출생의 비밀과 복수를 극한으로 내몰면서 또다른 ‘막장’의 길로 들어서버리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스타들의 엄청난 몸값을 내걸고 거대 연예기획사들 사이에 벌이는 캐스팅 전쟁과 부족한 제작비를 채우기 위한 각종 간접광고의 소재들, 이들 자본의 흐름에 따라 배경이 뒤바뀌고 주인공이 죽고 사는 ‘시청률 만능주의 쪽대본 드라마’는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어찌됐든 한국 드라마의 ‘링거맞는 제작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마르고 닳도록 써먹어온 불륜· 출생의 비밀·복수·불치병·신데렐라·금지된 사랑 등의 소재들은 ‘막장의 끝’을 향한 ‘무한도전 경쟁’은 갈 데 까지 갈 것이다.

‘욕먹으면 더 좋다’는 막장 드라마의 시스템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의 도움상회 식 접근법으로 그저 오늘의 방송제작 환경을 바라보기만 한다면, 아마도 연말 방송가 시상식에서 기획사별로 상들을 안겨주는 ‘무더기 시상 퍼레이드’라는 재미없는 장면은 매년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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