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에덴의 동쪽>이 갈수록 막장 드라마가 되고 있다. 핏줄에 대한 지나친 집착, 배경의 디테일까지 고려하지 않는 무신경함 등. “그래도 훌륭한 신파”라는 초기의 평가는 빛을 잃고 갈수록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뭐, 서민 여고생들의 판타지 실현 드라마 ‘꽃남’이나 머리잡고 싸우는 장면만 나오는 ‘아유’ 못지 않다.

기가 막힌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동욱 엄마는 동욱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뭐래도 넌 여전히 내 아들”이라고. 하지만 ‘핏줄끼리는 서로 통하는 벱’일까.

악의 화신인 신태환 회장을 단죄하기 위해 검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동욱은 머리에 기름 바르고, 양복을 쫙 빼입은 모습으로 이제와서 “그래도 우리 아버진데”라고 외친다. 수십년 동안 찢어지는 살림에도 넘치는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던 동동브라더스(동철&동욱)는 결국 서로의 적으로 변신한다.

에동 제작진은 홈페이지에서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대해 “가족간의 사랑과 헌신, 끈끈한 혈육의 정. 그것은 익숙하지만 잊혀져가는, 어머니의 젖가슴 같이 포근하고 따뜻한 우리 한국의 고유한 정서이고,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간절히 바라는 구원의 희망이며, 나아가 수십억 아시아인들이 공감하는 아시아적 가치이며, 한국뿐 아니라 30억 아시아 시장을 목표로 하는 이 드라마의 강력한 무기”라고 거창하게 말한다.

그런데, 제작진들아. 미안하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극적 반전이 잠시 흥미로웠지만, 극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집착에 가까운 ‘핏줄끼리 뭉치기’는 보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하더라. 급기야 <미디어스>는 이 드라마를 ‘막장’ 반열에 올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문득 궁금하다. 에동속 출연진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핏줄’이 중요한 것일까. 기획의도에 쓰인 것처럼 ‘핏줄’이란 ‘한국 고유의 정서’이자 ‘구원의 희망’일까?

설문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싶었으나 그럴 시간과 돈은 없었다. 간편하게 내주변의 열혈 에동 시청자인 부모님께 물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은 평생동안 생활비, 학비 등을 벌어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음에도 “예쁜 내새끼 키우는 게 최고의 보람이었다”는, 대한민국 전형적인 4, 50대다.

“엄마가 동욱이 엄마라면 어떻게 하겠어? 낳은 정이 먼저야, 기른 정이 먼저야?”

“당연히 기른 정이 먼저지. 수십년 세월동안 같이 밥 먹고, 울고 짜고. 그렇게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는데…. 꼭 내 배로 낳아야만 자식인가?”

“만약에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랑 똑닮은 아이가 나타나서, 나랑 바뀌었다고. 엄마 자식이라고 하는데 내칠 수 있겠어?”

“닮든가 말든가 뭐가 중요해. 난 기른 자식만 자식으로 받아들이고 살 거야.”

“엄마가 이렇게도 냉정한(?) 사람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며, 가벼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극히 보수적인 생활관과 아주 조금 진보적인 정치관을 갖고 있는 아버지에게도 물었다. 아빠 역시 단호했다.

“기른 정이 먼저라고 생각해. 핏줄이란 개념이 참 독특한데 난 그게 하나의 미신 같은 거라고 생각해. 살아가면서 정이 드는 거지. 난 핏줄이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독특한 건지 모르겠는데, 애틋함이란 같이 부대끼면서 지내왔던 경험들에서 나오는 거야.”

옆자리의 편집장에게 핏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핏줄이란 본능적 이끌림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져야 할 윤리,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해. 한 개인의 존재화에 직접 개입을 한 것이므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문제는 핏줄이 아닌 자들에 대한 태도를 타자화,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미디어스> 드라마퀸 나난 여사에게도 물었다. “둘다 관계를 이어나가면 되는데, ‘핏줄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갑작스럽게 돌변하는 모습에 거북함을 느껴요. 드라마를 보면 하루에도 핏줄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하루에 5번 이상 10번 가까이 나왔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길러왔음에도 신태환은 회사의 비밀이 레베카에게 알려지자 신명훈을 의심하며 일말의 주저없이 감금하고 폭행하는 거 봐요”라며 혀를 끌끌 차신다.

전국 성인남녀 4명을 대상으로 핏줄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결과, 기른 정 역시 낳은 정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별거 아닌 결론을 얻었다.

에동의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수십년간 다져진 복잡다단한 관계에 대한 세심한 묘사 없이 “결국 우리 아버지야” “형은 내 친형이 아니잖아”라는 대사 몇마디로 그 과정들을 생략하며 ‘핏줄’만 강조하는 것. 핏줄 이데올로기 개입으로 이전의 스토리라인이 급격하게 허물어지며 갑자기 존재의 변화무쌍함을 드러내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불편한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터.

참고로 내가 생각하는 에동 마지막회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현(한지혜)의 아버지가 신태환, 혹은 이기철임이 밝혀지면서 원수였던 신태환 가족과 이동철 가족이 결국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는 식으로 얼싸안고 울면서 끝나는 것이다. 부디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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