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전문 시위꾼입니까?”

20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 지부 김보협 지부장이 서울시의 지하도 상가 민간위탁 공개입찰을 반대하며 촉구대회를 열고 있던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소속 상인들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상인들은 웃으며 일제히 “아니요”라고 답했다. 김 지부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테러리스트입니까?” 이번에도 상인들은 “아니요”라고 큰 목소리로 답했다.

▲ 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한나라당 언론악법 반대 및 합의기구 구성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송선영

김 지부장은 상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론악법이 통과되면 여러분들은 전문시위꾼이 되고, 테러리스트가 된다. 언론악법이 통과되면 작게나마 바른 소리를 해왔던 경향신문과 한겨레, MBC, YTN이 다 넘어가게 된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박성제 MBC 본부장, 노종면 YTN 지부장을 비롯한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500여명의 상인들 앞에 섰다. “재발방송 조중동방송 한나라방송 절대 반대” “언론장악 획책주범 한나라당 해체하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당초 언론노조는 한나라당사 앞에서 ‘한나라당 언론악법 반대 및 합의기구 구성 촉구 기자회견’을 계획했으나 ‘상가 경쟁 입찰 반대’ 촉구대회로 인해 한나라당사 옆으로 비켜서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의 도움으로 상인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시작할 수 있었다.

최상재 위원장이 상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첫 말문을 열었다.

“저희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리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저희들이 하는 말이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사실 쉽다. 재벌인 용산 개발 업체들이 방송 뉴스를 만들게 되면 철거민들의 아픔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겠나? 상위 1%를 위한 정책을 요구하는 조중동이 방송 뉴스를 만들게 되면, (서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도할 수 있겠나? 국민의 재산인 방송을 찢어 나누려는 것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최 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상인들은 그들이 들고 있던 노란봉을 이용해 크게 박수를 쳤다.

▲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전국지하도상가상인연합회 상인들이 서울시의 지하도 상가 민간위탁 공개입찰을 반대하는 촉구대회를 하고 있다. ⓒ송선영

▲ 노종면 YTN지부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송선영

이어 박성제 MBC 본부장이 말을 시작했다. 박 본부장이 상인들을 향해 “한 달 전, 언론노조와 MBC노조가 총파업을 한 것을 알고 있나?”라고 묻자, 상인들은 “예”라고 답했다.

박 본부장은 “저희들이 일터를 버리고 나온 이유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양심껏 취재해 보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조중동 방송, 재벌방송을 하기 위해 언론 악법을 통과시킨다면 길바닥으로 나와 모든 민주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날 언론노조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게 ‘언론과 미디어산업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언론노조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사회적 합의기구는 한나라당이 추종해 마지않는 OECD 국가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언론 관련법이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살리기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취업 문제로 고심하는 대학생들에게 고용창출을 미끼로 한 사기 홍보전에 국민의 혈세를 마구 쓰는 작태를 중단하고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한다는 제안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또 “한나라당이 국민의 명령을 거절한다면 합법을 가장한 반민주”라면서 “잠시 중지했던 언론악법 저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총파업에 다시 나서기 전까지 대답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상인들은 언론노조의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인 언론 관련법은 조중동 방송, 재벌방송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며, 기자회견 내내 큰 박수로 화답했다. 몇몇 상인들은 기자회견 중간 중간 언론노조 관계자들이 발언을 할 때마다 “옳소”라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제, 조중동방송 재벌방송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친절하게 알려준 언론노조 덕에 언론 관련법의 실체를 알아버린 상인들에게 마저도 외면당한 셈이 됐다. 여론을 얻지 못한 채 법안을 강행할 때, 한나라당이 맞게 될 후폭풍은 얼마나 거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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