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 동물판 ‘그것이 알고 싶다’
SBS <동물농장> (5월 15일 방송)

“미리 말씀드리지만 상당히 불편합니다. 하지만 끝까지 보셔야 합니다.” SBS <동물농장> 오프닝에서 신동엽이 이렇게 얘기할 때만 해도 그 심각성을 몰랐다. 영상에서 ‘강아지 공장’이라는 문구가 나왔을 때에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강제’라는 수식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끔찍한 실체를.

강아지 번식장 주인은 새끼 강아지를 팔아 돈을 버는 것에 혈안이 된 존재였다. 억지로 암컷과 수컷을 교배시키는 것도 모자라, 수컷의 정자를 빼내 암컷에게 투여했다. 몸이 불편해 출산이 어려운 개들은 주인이 병원에서 “눈요기”로 배운 실력 아닌 실력으로 불법 제왕절개 수술을 시켰다. 늙은 개들은 “밥값을 못한다”는 이유로 손수 안락사를 시켜 나무 밑에 대충 구덩이 파고 돌로 눌러뒀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을 마치 훈장처럼 자랑하는 주인의 태도에는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영상이 나가는 동안 스튜디오 MC들의 한숨과 흐느낌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다시보기로 보던 필자도 몇 번을 정지시키고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다.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강제 교배의 순간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5월 15일 방송된 SBS <동물농장>

뜬 장에 갇혀 평생 50여 마리의 새끼만 낳는 번식견들이 모인 강아지 공장은 새끼 강아지들에겐 비참한 고향이자 모견들에겐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감옥이었다. “자 푸들입니다. 5~6개월 정도 처녀견입니다. 발정은 지나간 거 같고요. 자, 10만 원입니다”, “검정푸들 처녀견입니다. 10개월, 11개월 정도로 보이네요. 교배 잘하겠네요” 같은 애견 경매장의 멘트는 신사적인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평소 신기하거나 특별한 동물 위주로 소개하던 <동물농장>은 이 날만큼은 같은 방송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서사처럼 진행됐다. 우선 전직 번식장 직원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예고하고, 그 다음으로 강아지 공장을 직접 찾아가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알렸다. 제작진은 그들이 들은 것과 본 것을 가감 없이 전달했고, 내레이션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영상을 설명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전문가들과 함께 현행법상 강아지 번식장 주인을 처벌할 수 있는 부분과 그 한계를 짚어본 것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장점과 닮아있다. 전남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주인이 제왕절개 수술 때 불법적으로 사용한 케타민 마취제를 찾아냈고, 동물자유연대 측은 치료가 시급한 모견들을 구조했다. 그리고 수의사는 무릎뼈가 빠진 상태로 강제 임신된 강아지의 건강한 출산을 도왔다.

그렇게 <동물농장>이 6개월 동안 구한 번식견은 모두 80마리. 문제제기로 시작해 구조까지 성공한 <동물농장>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건 박수가 아니다. 강아지 공장 폐지 운동에 동참하는 것, 그리고 애견숍 쇼윈도에 있는 새끼 강아지들을 마냥 귀여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이주의 WORST : 정말 이게 최선이라굽SHOW?
KBS <어서옵SHOW> (5월 20일 방송)

이서진, 김종국, 노홍철이 KBS <어서옵SHOW> 제작진의 긴급 호출을 받고 한 자리에 모였다. 노홍철이 물었다. “방송 시작하자마자 긴급 대책 회의하는 거에요?” 5월 20일, 긴급 대책 회의를 거친 방송이 나왔다.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긴급 대책 회의한 결과물이 이거에요?”

물건이 아닌 재능을 파는 <어서옵SHOW>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재능을 잘 발견하고 부각시키는 것이다. 얼마나 능숙하게 재능을 판매하느냐보다, 그 사람의 어떤 재능에 주목해서 파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노홍철은 판매 스킬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지현 쇼호스트가 진행하는 생방송에 투입됐다. 동지현 쇼호스트로부터 어떠한 노하우도 전수받을 시간 없이, 30분 뒤에 무작정 랍스터를 팔았다. 노홍철이 배운 건, 랍스터를 해체하고 밥을 비벼먹는 것이 전부였다.

5월 20일 방송된 KBS <어서옵SHOW>

노홍철이 판매할 재능 상품은 패션 디자이너 부부 스티브&요니의 옷 리폼이었다. 긴급 대책 회의 결과에 따라 생방송 홈쇼핑 체험까지 했건만, 호스트 노홍철의 역할은 아주 미미했다. 스티브&요니가 리폼한 옷의 장점을 부각시키지도 못했고, 옷 리폼을 의뢰한 출연자들을 능숙하게 리드하지도 못했다. 본인이 홈쇼핑을 진행하고 물건을 파는 호스트라는 사실을 잊은 것인지, 유재환과 수다 떨기에 바빴다.

재능 기부자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방식도 매우 진부했다. 지난 주 안정환의 축구 교실을 판매했기 때문에 ‘서장훈의 농구교실’ 대신 ‘서장훈의 일일 주부’를 재능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결국 제작진은 서장훈과 세 호스트의 농구 대결을 유도했다. 심지어 농구 대결을 진행한 것은 호스트들이 아닌 서장훈이었다. 서장훈과의 농구 대결이 끝나자 하석진과 IQ 테스트 대결을 벌였다. 마치 서장훈과 <우리 동네 예체능>을 녹화한 뒤, 하석진과 <뇌섹시대 - 문제적 남자>를 연이어 녹화한 느낌이었다. 어디에도 <어서옵SHOW>만의 콘텐츠는 없었다. 긴급 대책 회의를 한 결과물이 이 정도라니. 호스트들이 서장훈의 정리정돈, 하석진의 일일과외, 스티브&요니의 옷 리폼을 판매하는 동안, 제작진은 다른 PD의 연출 재능이라도 구입해야 할 판이다.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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