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꽃보다 아름다워>,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노희경 작가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새 드라마로 돌아왔다. 자유분방한 싱글녀와 꼰대들의 이야기라는데, 일단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김혜자, 나문희, 고두심, 박원숙, 윤여정, 김영옥, 주현, 신구, 고현정. 이 배우들을 한 드라마에서 모두 보는 것도 놀랍지만 조인성, 다니엘 헤니의 특별 출연이 더 놀랍다. 어떤 작품에서든 주연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조인성도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만큼은 열 번째 되어서야 이름을 올리는 막내 배우일 뿐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이들을 어르신이나 노인이 아닌 ‘꼰대’라 부른다. 유독 기센 엄마 장난희(고두심 분) 때문에 엄마 친구, 선배들과 얽히게 된 박완(고현정 분)은 이들을 꼰대라 부르며 상당히 귀찮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중에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사람은 없다. 어르신답게 조용히 살아주셨으면 좋겠지만, 이들의 주변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자극적인 소재와 이야기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디어 마이 프렌즈> 속 꼰대들의 하루하루는 귀여운 애교 수준이다.

난희의 ‘개딸’, 유학도 다녀오고, 나름 잘나가는 번역 작가에 멋진 남자들이 끊이지 않는 미모의 골드미스 박완이라는 캐릭터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박완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어르신들은 마치 우리 엄마, 아빠 혹은 이웃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어느 순간 목소리를 높이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야 마는 난희와 완이 모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는 평범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 외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많다. 물론 그들이 가끔 벌이는 진상짓에 정나미가 뚝뚝 떨어질 때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자신들의 지난날을 들먹이며 젊은이들에게 훈계질을 하지는 않는다.

<디어 마이 프렌즈>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획의도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어른들에 대한 청춘들의 시각을 취재한 제작진은, 자신들의 윗세대를 어른 아닌 노인으로 폄하하며 ‘꼰대, 불편, 의무, 부담, 뻔뻔, 외면, 답답’ 등 부정적인 단어로 규정짓는 젊은이들의 시선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춘들의 이러한 인식을 어른들에 대한 정보의 부재, 관찰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지은 <디어 마이 프렌즈>의 제작진은 기존 드라마 혹은 언론에서 보여지는 시니어 즉, 돈과 자기 자식들에게만 목메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젊은이들을 경쟁상대로 여기거나 방해하며, 끝없이 훈계만을 늘어놓는 노인들이 아닌, 젊은이들과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는 어른들을 그리고자 한다.

그래서 <디어 마이 프렌즈>의 시니어들은 기존 드라마에서 봤던 어른들과 다르게 보인다. 자식들의 인생보다 자신들이 행복을 더 중요시여기며,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tvN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처럼 세계 일주를 꿈꾼다. 하지만 30대 후반 박완에게 그들 또한 귀찮은 ‘꼰대’들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히 엄마의 상처를 알게 되면서, 박완은 조금씩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을 이해하고 그들 곁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랬더니 그저 나이 많은 사람들인 줄 알았던 이모, 삼촌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몇 달 전 남편을 여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조희자(김혜자 분)에겐 친구들에게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고민들이 생겼다. 그리고 구두쇠 남편(신구 분)과 고된 시집살이를 용케 버텨낸 문정아(나문희 분)를 묵묵히 살게 하는 원동력은 세계 일주에 대한 꿈이다.

이 세상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들의 삶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죽어도 길 위에서 죽을 것이라며 여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정아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인생 최대 위기에 봉착했으며,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은 인생을 비관하던 희자는 자살을 기도한다. 래 전 난희 남편의 불륜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난희와 이영원(박원숙 분)의 관계 복원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디어 마이 프렌즈>의 어른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잘살 것이고, 설령 원하지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감내해야 하는 것임을 넌지시 보여 준다. 눈 번쩍 뜨이게 하는 굵직한 사건, 사고 없이도 마음을 울리는 진짜 어른 드라마가 우리들 곁을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