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 어버이연합 패러디 영상 장면

#1. 방송인 유병재의 <고마워요, 어버이> 편

휴가 나온 군인 친구에겐
매일 입대하시는 어버이에겐
대리비 2만원 챙겨주신 팀장님에겐
일당 2만원 전부 주신 어버이에겐
북한하고 싸우는 유시진 대위에겐
북한하고 싸우는 어버이에겐

“요즘 종북좌파 언론 이 XX들이 우리를 왜곡 보도했대. 이 개XX들이”
“빨갱이 이놈의 XX, 너도 빨갱이 XX지”
“(뭘 왜곡했는데요?) 몰라, 뭘... 왜곡했대”

KBS '개그콘서트' 이상훈 어버이연합 풍자

#2. KBS <개그콘서트> ‘1대1’ 코너

유민상) 이것은 통장 없이도 거래할 수 있는 계좌를 뜻하는데요. 쉽게 돈을 송금 받을 수 있는 계좌, 뭐라고 할까요?(가상계좌)
이상훈) 쉽게 돈을 송금 받을 수 있는 거, 어버이연합.
유민상) 아이고, 깜짝이야. 무슨 소리에요?
이상훈) 맞습니다. 전경련으로부터 수억 원의 돈을 차명계좌로 송금 받았는데 어느 순간 입을 이렇게 다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보내준 전경련도 이렇게 부르르 떨면서 말을 안 하고 있어요. 이렇게 떨고 있어서 전'경련'인가.
유민상) 왜 자꾸 그런 소리 하시냐고요.

삼성 VS 한화, 경기에서 등장한 포카칩

#3. 한화 팬의 ‘특별한’ 응원 방법

지난달 29일.
프로야구 한화 VS 삼성의 맞대결이 펼쳐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삼성이 5:3으로 앞선 8회 말 2사 1·3루 위기 상황에서 투수 안지만이 투입됐다.
...
그러자 포수 뒷편 좌석에 앉아있던 한화 팬 한 명이 과자 봉지를 꺼내 흔들기 시작했다. 해당 과자 제품은 ‘포카칩’이었다.
그 후, (특별한 응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안지만은 흔들렸고 이날 삼성은 역전패 당했다.

한국사회, 풍자는 어디쯤에 서있나

때 아닌 과자 ‘포카칩’ 논란까지, 참 재밌는 세상이다. 우리 사회를 떠뜰썩하게 만들었던 어버이연합 사태가 다양한 방식으로 풍자의 대상이 됐다. 청와대와 협의해 어버이연합이 탈북자들에게 일당 2만원을 주고 친정부 집회에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다. 그들의 돈줄이 전경련을 비롯한 SK와 CJ 등 기업, 그리고 정부보조금이었다는 보도 역시 쏟아졌다.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의 이름이 나왔고 보수성향 단체들의 콘트롤 타워가 국정원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근에도 각종 의혹들이 연일 쏟아지는 중이다.

프로야구에서의 특별한 응원법과 관련된 논란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안지만·윤성환·임창룡은 불법도박 사건에 연루돼 논란을 빚었다. 그 이유로 구단 측은 임창룡을 방출시켰다. 하지만 나머지 안지만·윤성환은 어떤 처벌도 없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됐다는 점에서 이는 ‘풍자’의 대상이 될 만하다.

문제는 이 같은 풍자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버이연합은 방송인 유병재 씨와 개그맨 이상훈 씨를 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고소했다. 자신들은 LPG가스통을 들고 시위한 적이 없다는 거다. 또, 쉽게 돈을 송금 받을 수 있다는 표현 역시 자신들에게 모멸감을 줬다고 한다. 맥락은 좀 다르지만 야구장에 등장한 포카칩 봉지 역시 삼성라이온즈 팬들이 “불쾌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면서 또 하나의 논란이 됐다.

12일 JTBC <뉴스룸>은 <‘고소당한 개그’…풍자와 명예훼손의 경계는?>(▷링크) 팩트체크를 통해 어버이연합 관련 풍자와 고소건을 다뤘다. 명예훼손 여부를 따지려면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른바 어버이연합 게이트 사건은 충분히 공공의 이익과 연관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어버이연합의 명예회복은 소송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검찰 수사에 협조해 전후맥락을 투명히 밝히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JTBC 팩트체크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더 흥미로웠던 점은 어버이연합의 유병재·이상훈 고소가 ‘진지한’ 방송뉴스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거다.

KBS <개그콘서트>의 ‘풍자’ 논란은 한 발 더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개그콘서트>는 공영방송 KBS의 장수 코미디프로그램으로 그동안 ‘정치풍자’를 이유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러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은 메르스 사태를 둘러싸고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풍자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 제재를 받았다. 정부의 제재 이후 KBS는 ‘민상토론’의 때 아닌 불방사태를 일으켰고 이후 얼마의 기간이 지나지 않아 해당 코너는 무관심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KBS <개그콘서트> 정치풍자에 대한 ‘논란’은 이명박 정부와 함께 시작됐다. 2010년에는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과 ‘봉숭아학당’ 코너가 논란이 됐다.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박성광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대사를 두고 당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국회 공식질의과정에서 “김인규 사장이 취임했는데도 계속 이 프로그램에서 그런 대사가 나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시기 보수단체인 방송개혁시민연대는 ‘봉숭아학당’에서 동혁이형(장동혁)이 “신문 기사 통계를 봤더니 10년 동안 물가는 채 36%가 안 올랐는데 등록금은 116%나 올랐다”며 “아니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한 학년 올라 갈 때마다 우리 아빠 얼굴에 주름살만 팍팍 늘어. 우리 아빠가 무슨 번데기야?”라고 발언한 걸 두고 “복지포퓰리즘”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2011년 강용석 변호사는 KBS <개그콘서트> ‘사마귀유치원’ 코너에 출연 중인 개그맨 최효종 씨를 ‘국회의원 집단 모욕’을 이유로 형사 고소했다. “집권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집권여당의 공천을 받아 여당의 텃밭에서 출마하면 돼요. 출마할 때도 공탁금 2억만 들고 선관위로 찾아가면 돼요…(중략)…선거 유세 때 평소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돼요”라는 발언이 문제라는 거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풍자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2012년 12월 당선 이후, <개그콘서트> ‘용감한녀석들’은 당선자 신분의 박근혜 대통령에 “이번에 대통령이 된 박근혜 님 잘 들어. 당신이 얘기했듯이 서민들을 위한 정책, 기업들을 위한 정책. 학생들을 위한 정책, 그 수많은 정책들 잘 지키길 바란다,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다”고 말했다가 ‘행정지도’ 제재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 코너 역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풍자가 사라지고 있다

결국 이런 일련의 흐름은 우리 사회에 ‘풍자’가 사라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한다. PD저널 <‘이명박근혜’ 8년, ‘시사풍자 라디오’가 사라졌다>(▷링크)에 따르면, 지상파 3사 라디오 프로그램 중 시사풍자 프로그램은 MBC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가 유일했다. PD저널은 이런 현상이 보수정권에서 점점 더 강화된 방송사 내부의 아이템 검열과 심의 제재의 영향이 라디오에까지 미친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풍자는 풍자(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로 기능할 때에만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KBS <개그콘서트>의 정치·사회 풍자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은 권력자들이 이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떄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그만큼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풍자가 사라져가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로 부를 수 있을까. 과잉 대응은 또 다른 ‘풍자’를 낳기 마련이다. 삼성라이온즈에 대한 포카칩 논란이 대표적이다. 만일, 구단 측에서 도박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을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했다면 팬들은 스스로 자제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개그콘서트> 정태호 씨의 개그를 다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코미디는 하지마. 우리가 할 게 없다”. 사실은 이게 우리 사회에서 ‘정치풍자’가 사라진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기득권이 코미디를 직접 하니 풍자를 해야 할 사람들의 일이 없어져 버렸다. 기득권이 원래 해야 하지만 안 하는 일을 대신하기 위해 <개그콘서트>를 <정책 토론과 협의의 콘서트>로 바꿔야 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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