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고 저는 ‘비혼’이라는 단어 사용도 좀 그렇더군요. 어떤 취지에서 나왔는지는 알겠는데 단어 사용 자체가 뭔가 인간을 결혼에 속박된 존재로 보는 것 같아서…”

동료와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나온 이야기 한 토막이다. 얌전하게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큰 의문 없이 받아들이며 자라온 나는 대학에 가서야 부모님의 시선에서 ‘엇나가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가치관의 변화 가운데 부모님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히 때 되면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겠지 하는 부모님의 기대와 다르게 수년 전부터 ‘결혼 없는 삶’에 대해 고민해 왔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너무 많다. 최대한 손상 없이 ‘나’를 유지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어떤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 마지막으로 닿게 되는 결론이 결코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시간 관찰해 온 결과 결혼은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결합을 넘어선 무엇이다.

결혼으로 가는 과정부터가 만만치 않다. 세상은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며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붙여줬으나, 정작 결혼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면 모든 것이 너무나 어려워진다. 적당한 날짜를 정하고 예식장을 고르고 누구를 초대할지 추려야 함은 물론, 스튜디오 촬영을 할까 말까, 결혼식 당일 헤어와 메이크업은 어떻게 할까 등 결혼이라는 관문으로 가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밀려온다. 새로운 결혼 형태로 급부상한 ‘작은 결혼식’을 치를 수 있(게 허락하는 부모님이 있)는 커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위치에 있다는 게 ‘다행’으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결혼을 시작부터 내게 많은 무게를 지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낯설고 별 관심 없는 사람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껴안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나 하나 건사하고 살기 어려운 와중에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로서의 역할까지 얹어진다.

불만은 많지만 소심한 나는 결혼을 하게 되면 결국 어느 정도는 부모님과 남편, 시댁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쓸 것 같다. 아이를 가질 계획이 전혀 없고, 최소한의 요건만 갖춰진다면 프리터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정규 종업원이 되지 않고 자유로운 전직을 반복하는 젊은이를 이르는 말) 같은 삶을 고려하고 있으며, 때때로 취미생활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쓰거나 집을 한나절 이상 비울 생각도 있는 지금의 ‘나’는 결혼 후 얼마나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SK텔레콤 매장에서 모델들이 5월 한달 동안 실시되는 가정의 달 프로모션 ‘폼나들이’ 이벤트를 알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런 생각이 특별히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혼 없는 삶’을 꿈꾸는 것 자체를 ‘별종’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뿐이다. 더 골치 아픈 것은 ‘좀 특이하네’ 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저렇다’며 비난하는 태도다. 내 주제를 알고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게 왜 미성숙한 태도인지 잘 모르겠다.

“혼자 살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한다”, “나중엔 외로워져서 생각이 바뀌게 될 거야”, “그래도 애 낳아 기르는 게 인생의 재미다” 같이 걱정을 가장한 압박도 사양이다. 둘이 살아도 돈은 많이 필요하며, 가정을 꾸리게 된다 하여 외로움이 사라진다고 장담할 수 없고, 나는 인생의 재미를 아기가 아니더라도 무궁무진한 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 솔직히 내게 아기는 길가에 피어 있는 관상용 꽃 같은 거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예쁘고 귀여운 존재.

나이를 먹을수록 ‘평균적’인 삶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게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취업문을 뚫고 일 좀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애 대학 보내고 노후 준비하고. 시대는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는데 왜 ‘요구되는’ 라이프사이클은 이렇게 획일적이란 말인가. 조금 더 다양한 형태의 삶이 ‘이야기되고’, ‘이해되며’,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결혼이란 선택지를 제외시키는 게 그리 특이한 일도, 유난 떠는 일도 아니라고 받아들여지는 때가 언젠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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