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하는 네가 감히 내 며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TV드라마에서 늘상 나오는 대사다. 20세기 이야기인가? 아니다. 현재 방영중인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의 등장 대사 일부다. 가부장적 질서가 강력히 구축된 가족 구성원들에게서나 나올 법한 대사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저런 가족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굳이’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3번의 출산을 한 여성을 지인으로 두고 있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더 그렇다. 참고로 그 여성은 현재 세 딸과 아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개그맨 장동민이 tvN <코미디빅리그> ‘충청도의 힘’ 코너에서 한부모가정을 조롱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그 프로그램, 해당 코너만의 문제는 아니다. TV프로그램 속 세상에선 부, 모, 자녀로 규정된 그들만의 ‘정상적인’ 가족들이 대세다. 다른 형태의 가족은 모두 비정상적으로 취급된다. 여기에는 한부모가정도 포함된다. 장동민 사례에서 보는 ‘조롱’까진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요소로만 다뤄지는 건 매한가지다.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 TV 속 가부장적 가족의 모습을 그리다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 속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모습

MBC 드라마 <가화만사성>은 가부장적 가족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봉해령(김소연 분)은 아이를 낳기 위해 남편 유현기(이필모 분)와 가임기간에 부부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한다. 남편이 회사 일로 바빠 집 밖에 머물 때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환멸을 느낀다. 그런데 봉해령은 어느 날 갑자기 ‘조기폐경’ 진단을 받는다. 그 이유 때문에 시어머니 장경옥(서이숙 분)은 봉해령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더 이상 이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하는 네가 감히 내 며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라는 대사는 이 대목에서 나온다. 봉해령의 가족 내 역할은 그저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만 한정된다. 주목해서 봐야할 부분은 봉해령 부부 불행의 시작은 ‘아들’의 사망, 즉 ‘자녀’의 결핍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유현기는 ‘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봉해령이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아이를 원한다면 ‘입양을 하면 된다’고 말한다. 입양을 자신의 가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수단쯤으로 여긴 셈이다. 부부로 구성된 2인 가족의 행복은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 의문이다.

극중 봉해령의 친정집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 쌍둥이 오빠 봉만호(장인섭 분)가 외도로 낳은 아들이 나타나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 거다. ‘부모’없는 며느리 한미순(김지호 분)을 친딸처럼 여긴다던 시아버지 봉삼봉(김영철 분)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리고 한미순이 이혼을 결심하자, 시아버지는 두 딸의 양육권을 내놓을 수 없다며 “혼자 나가라”고 한다. 한미순은 그런 봉삼봉을 보고 “이제 보니 시아버지 맞다. 주제넘게 (내가)봉미순인 줄 알고 까불었다. 이러실 거면 적당히 예뻐해 주시지 그랬냐”며 눈물을 쏟는다. 결국, 핏줄이 중요하다는 전근대적 결론이다.

봉해령의 여동생 봉해원(최윤소 분)은 '원나잇 스탠드'를 통해 혼전 임신한 여성으로 설정됐다. 드라마는 여기서도 현실의 비극을 재현하기 보다는 정상가정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상대 남성인 이강민(박민우 분)과 조금씩 가까워지는 에피소드가 그려지는 것이다. 결국 ‘임신’을 계기로 철없는(?) 두 젊은 남녀가 가정을 꾸리는 결말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MBC <가화만사성> 구성원들은 ‘핏줄’로 맺어진 전형적인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가화만사성>은 현재 한참 방영중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예상과 다른 전개를 보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이런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난 도건우·한지훈·강일주는 왜 불행했을까

왜곡된 한부모가정을 보여주는 드라마들도 있다. MBC 드라마 <몬스터>에서 도건우(박기웅 분)는 미국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불행’하게 살아간다. 그들의 불행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라고 해석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도건우를 찾은 쪽은 변일재(정보석 분)였다. 그의 친부가 대기업 도도그룹의 회장이라는 점에서 ‘핏줄’을 이용해 그룹을 장악해보다는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세습’의 행태가 소재다. 도건우를 비롯한 도도그룹의 자녀들은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노회한 정치인 황재만(이덕화 분, 여당 원내대표)은 자신의 딸(지수)을 지역구에 공천하는 데 성공한다. 앞서 종영한 MBC <화려한 유혹>에서 또한 강일주(차예련 분) 또한 아버지 없이 병든 어머니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왜곡된 ‘사랑’의 모습을 드라마를 통해 보여줬다. 이 모든 것들은 정상적 가족의 형태가 일부 ‘결핍’ 때문에 무너진 것에 대한 한국 드라마의 통상적 표현들로 볼 수 있다.

드라마 속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몬스터' 도건우와 '결혼계약' 한지훈, '화려한 유혹' 강일주의 모습

MBC 종영드라마 <결혼계약> 또한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한지훈(이서진 분)은 대기업 회장 혼외자로 ‘외롭고’, ‘쓸쓸한’ 유년기를 보낸 탓에 가족과 결혼, 아이 같은 단어에 시니컬하고 냉담한 태도를 갖고 있다. 이건 이 드라마의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 문구를 요약한 것이다. 즉, 이 캐릭터의 불행의 이유는 그가 ‘혼외자’라는 데서 온다. 그를 다시 웃게 한 것은 싱글맘 강혜수(유이 분)와 그의 딸을 만나고 한 가정을 이루면서다.

KBS 주말드라마 <아이가다섯>에서 안미정(소유진 분)은 친구와 바람이 난 남편을 떠나보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라는 커다란 존재를 빼앗을 수 없었기에 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회사에 일하러 갔다고 거짓말을 하며 삼년 간 홀로 살아왔다. ‘정상적인 가정’을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tvN 종영드라마 <슈퍼대디 열>은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차미래(이유리 분)는 능력 있는 싱글맘으로 살아가던 중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혼자 남게 될 아홉 살 딸에게 아빠를 만들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자신의 딸을 안심하고 맡길 곳은 ‘가정’이라는 설정이다.

이처럼 TV 드라마 속 가족들의 모습들은 많이 닮았다.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의 “모든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아니다”라는 대사는 그 중 그나마 예외적이다. ‘핏줄’의 의미와 가족 관계의 무상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마지막회에선 어떤 '예외성'을 잃고 만다는 데서 아쉬움을 남겼다.

tvN '슈퍼대디열' 포스터

드라마 밖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는 이미 많이 변화하고 있다. 1인가구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고 한부모가정이나 다문화가족 또한 한국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TV속의 가족형태는 아직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부, 모, 자녀로 구성된 그들이 그려놓은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만을 그린다. 그러다보니 이를 벗어난 형태는 ‘비정상적’ 가족이 된다. ‘한부모가정’은 곧 불행으로 왜곡되고, 이것은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 한부모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오로지 결핍된 ‘부’, ‘모’, ‘자녀’의 자리를 채우면 그만이라는 공식이 생겨난 것이다. 변화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모든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 방식을 가정에서 찾고 있다.

한부모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은 '한부모가정'이라는 형태 자체에서만 찾을 수 없다. 한부모가정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자녀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이혼가정의 경우라면, 법원을 통해 결정된 양육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한국사회에 적용되는 ‘가족임금’ 또한 큰 문제 다. 여성의 노동은 가족의 가계를 책임지는 주수입이 아니라 부수입으로만 인식된다. 여성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될 리 만무하다. 어머니의 노동은 ‘알바’로 불리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의 이러한 근본적 차원에 미디어는 접근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린이들은 가정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가

TV가 그리는 가족들의 모습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모든 ‘자녀’는 정상적인 가정에서라야 행복하다는 신화를 생산하고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부당함을 넘어 위험한 인식이 되고 있다. 최근 큰 충격을 줬던 ‘아동학대’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월 부천의 한 초등학생이 4년 만에 냉동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이의 아버지 최 씨는 “평소 목욕을 싫어하던 아들을 목욕시키기 위해 욕실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아들이 넘어져 의식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평소 아들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김동현) 심리로 열린 이 사건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계모 김모(38)씨의 국선변호인과 친부 신모(38)씨의 사선변호인이 각각 출석했다(사진=연합뉴스)

평택에서 발생한 사건 또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긴 마찬가지였다. 계모는 추운 한 겨울 얇은 여름옷을 입히고 아이를 밖으로 내보냈으며 곰팡이가 핀 밥을 주고 때렸다. 소변을 좌변기에 흘렸다는 이유로 화장실에 가두기 일쑤였으며 대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몸에 락스를 뿌렸다. 친부와 계모는 학대 끝에 숨진 아이를 야산에 암매장했다.

부천 그리고 평택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가해자의 이름은 ‘부모’였다. 과연 어린이들은 가정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가.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미디어와 여론은 ‘부모’의 부족한 점을 찾는 것에만 몰두한다. 어머니가 계모였다거나, 아버지가 게임광이었다는 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어머니가 계모이거나 아버지가 게임광인 것은 그들이 ‘정상적인’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며, 언론은 바로 그것이 사건의 원인이었다는 것처럼 말한다. 오히려 계부나 계모에 의해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현실은 대부분의 아동학대가 친부모에 의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거다. 정상가족에서도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지적하지 못하는 데에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은 사라진다.

TV 속 미디어가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만을 주되게 보여주는 것은 사회의 이 같은 문제들을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실질적인 피해자를 낳기도 한다. 1인가구 그리고 2인가구,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이 그들이다. TV속에서 자연스럽게 노출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은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치부된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다문화에 대한 혐오는 단적인 예다.

'정상'에서 벗어난 부부관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신념을 꺾어야 했던 사람도 있다.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33년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그 당사자다. 애초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던 그의 사례는 새로운 가족형태를 보여주는 걸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와 남편을 구청에 비치된 혼인신고서 서식 안으로 몰아넣은 것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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