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평생 평교사로 살아온 아버지가 퇴직하던 날, 아버지는 온 가족들 앞에서 이혼을 발표한다. 가족들은 크게 동요하고 한시라도 빨리 철원을 뜨고 싶어 하지만, 폭설로 인해 2박3일 아버지가 살던 관사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언뜻 보면 지극히 평범한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곯을 대로 곯아있으며, 진짜 속내를 감춘 채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족을 이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포장하려고 한들, 썩은 부분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다.

영화 <철원기행> 스틸 이미지

자신들을 위한 부모의 헌신을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자식들은 예전 같지 않은 부모의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반대로 부모는 자신의 뜻대로 자라지 않은 자식에게 종종 불만을 토로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툭툭 내던지는 이들의 관계엔 오해만 쌓인 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만 간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가족의 갈등은 아이러니하게도, 폭설로 인한 고립된 환경에서 그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물론 이들의 동거가 마냥 순탄치 않았다. 자식들이 성인이 된 이후 같이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지냈던 시간이 더 많았던 <철원기행> 속 가족은, 오랜 시간 동안 좁은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에 적잖은 불편함을 느낀다. 아버지, 어머니, 큰아들 내외, 작은 아들 다섯 명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는 것도 이들에게는 고역이다.

영화 <철원기행> 스틸 이미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탁 막히는 답답함을 호소하던 가족은 결국 폭발하게 되고, 그제야 각자 닫혔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된다. 오프닝에서도 별 말 없이 아버지 퇴임 기념사진을 찍고 식사를 하던 가족들은, 폭설이 끝나고 각자 살던 곳으로 돌아가던 날에도 별다른 말 없이 밥을 먹고 원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가족 간에 크고 작은 균열이 일어난 전과 후,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확연히 다르다. <철원기행>은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온 부모에게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며, 때로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넌지시 일깨워주는 영화다.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일상의 풍경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파동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아로새기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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