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지 않아 어스름한 오전 7시. 구본홍 사장의 출근 시간이 다가오자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 노조원들은 하나 둘씩, YTN타워 후문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YTN노조의 ‘구본홍 저지 투쟁’ 200일을 맞은 2일, 노조원들은 차분하고도 담담했다. 그 사이 일곱 달이 가고 두 계절이 바뀌고 해도 바뀐 뒤 음력설까지 지났다. 그들은 평소처럼 구 사장의 출근 시간에 맞춰 손팻말을 든 채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 7시11분, 구 사장이 탄 에쿠스 승용차가 YTN타워 후문에 도착했다. 노조원들은 ‘법원 권장 구호’(회사 쪽의 가처분신청에 대한 결정에서 법원이 허용한 구호)인 “구본홍은 물러가라”를 외치기 시작했고, 간부들과 용역 직원들을 포함한 회사 쪽 관계자들은 구 사장을 에워쌌다.

▲ 2일 오전 7시10분 YTN노조원들이 구본홍 사장을 향해 “구본홍은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다. ⓒ송선영
지난 23일 구본홍 사장을 비롯한 회사 쪽이 노조원 19명을 사장실 점거 농성과 관련해 추가 고소한 것에 대한 노조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오는 2월24일 방송통신위원회의 YTN에 대한 재승인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원들에 대한 추가 고소가 꼭 필요했냐는 것이었다.

노조원들은 구 사장을 향해 “당시 사장실에 없었던 사람들도 고소가 됐다”며 “고소를 한 기준이 뭐냐. 고소 시점과 규모, 고소 대상 특정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보도국 정상화를 위한다는 사람이 추가 고소를 하냐. 이게 이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의 자세냐”며 “재승인이 안 되게 하려는 게 목적이냐”고 반문했다.

한 노조원은 “구본홍씨가 최근 사석에서 ‘YTN 사장 오래하고 싶지 않다. 노조 때문에 힘들어서 못하겠다. 혼자 물러서지는 않겠다. 논개가 되어서 끌어안고 가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구 사장은 “작문을 왜 하냐”고 일축한 뒤 “당시 경찰이 사장실 점거는 불법이라고 인지했다. 노조가 가처분 결정을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 자리에서 구 사장은 YTN 정상화 및 추가 고소에 대한 노조원들의 잇단 질타와 지적에 시원스레 답변하지 못했다.

그는 주변 몇 명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가 하면, 성토하는 노조원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으며, 괴로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구본홍은 물러가라”를 외치는 수십명의 노조원들의 목소리에 담담한 척했지만, 표정에서는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 2일 오전 7시43분, 구본홍 사장이 사장실로 향하고 있다. ⓒ송선영
오전 8시부터 시작된 YTN노조의 ‘조합원 비상 총회’에서도 노조원 추가 고소, 부·팀장 인사 등 재승인을 앞둔 회사 쪽 행동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앞서 YTN은 지난달 30일 △이재윤 보도국 문화과학부장 △이준호 보도국 그래픽팀장 △ 황선욱 경영기획실 미디어전략팀장 등 14명에 대한 부·팀장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현재 보도국 내에서는 이번 인사가 보도국장의 의중 보다는 구본홍 사장을 비롯한 일부 간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노조는 그동안 보도국 내에서 사원들과의 잦은 마찰을 일으킨 일부 간부들에 대해 이번 인사에서 배제할 것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조는 이에 대해 “노조와의 합의를 무시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노종면 지부장은 이에 대해 “이번 부·팀장 인사는 보도국장이 낸 인사가 아니라, 구본홍씨가 보도국장을 휘둘러 낸 인사라고 보고 있다”며 “이번 인사에서 보도국을 정상화하려는 의지는 단 한 줄도 읽히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다른 노조원도 “이번 부·팀장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보도국장이 낸 인사라고 볼 수 없고, 구본홍씨가 낸 인사”라며 “추후 사원 인사도 그들 입맛에 맞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예전 생방송 중 동료 앵커의 원고를 빼앗은 분이 발령 받은 문화과학부는 미디어관련법을 비롯해 재승인 등 관련 기사들을 처리해야 하는 부서”라며 “문화과확부 소속 사원들이 앞으로 얼마나 갈등을 겪게 될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게 될지 눈에 선하다”고 일갈했다.

그는 또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남아있는 것은 노조원들뿐”이라며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하지만 스스로 다잡아 공정방송점검단원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의 투쟁이 200일이 되었는데, 자랑도 아니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슬픔의 200일”이라며 “옳다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노조원도 “아까 구본홍씨가 경찰에서 먼저 인지를 했기 때문에 고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YTN이) 잘 되려고 할 때마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구본홍씨한테 목적이 뭐냐고 물어봤었다”며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구본홍씨 개인 목적이기도 하지만,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생각과도 일치한다”고 우려했다.

뜨거웠던 7월, 투쟁을 시작했던 YTN노조는 가을, 겨울을 넘겨 2월을 맞이했다. 그리고 어느덧 봄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그 뜨겁고도 잔혹한 7월을 맞게 되기를 아무도 바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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