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삼성증권은 국내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마이너스(-0.2%)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곧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삼성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성장률을 2.0%로 제시했다. 이런 ‘상향조정’은 최근 국내외 기관들이 하루가 다르게 전망치를 낮추고 있는 상황에서 이례적인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말했다.(한겨레신문 1월31일자)

최근,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이 밝힌, “정부의 정책을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이나 연구원장은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아마 제거되어야 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도 정치 변수화한 이 마당에 그것은 아마 당연한 일이겠지요”라는 내용의 이임사는, 더 이상 한국의 국책연구기관, 특히 경제관련 연구기관을, 비록 지금까지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더욱 불신할 수밖에 없음을 증언한 것이다.

▲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

정부정책의 홍보기관으로서 연구원이 전락하고, 무리한 명분과 몹쓸 논거를 조작하는 연구원으로 타락했음을 확인하는 한편, 민간기업과 연구소에게까지 현 정부의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증권’의 경제성장률 보고서의 수치조작은 충격적이다.

불과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같은 기관에서 발표한 경제성장률이 -0.2%에서 2.0%로 돌변한다. 경제성장률 1%의 의미를 알면, 기절초풍할 수치조작이 일어난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25일 ‘2009 세입예산안’을 발표하면서, 2009년 경제성장률을 5%로 제시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은 12월16일 ‘2009 경제운용 방향’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경제성장률을 3%로 하향조정한다. 12월13일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 2%’라고 발표한 직후 1%를 더 얹어 강만수 당시 장관이 발표함으로써,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다. 경제성장률 1%가 애들 장난이냐고…. 한데 정부의 예측치는 계속해서 떨어져왔는데, 삼성증권의 예측치는 거꾸로 상승했다. 한국은행이 예측한 수치 2%로에 묻어가려고.

그렇다면 1%의 의미는 뭔가?

2007년 한국경제상황을 기준으로, 경제성장률 1%가 증가하면 순수고용은 0.2% 증가한다. 즉 5만6천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 2% 성장률이면 무려 11만명 이상이 취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가당찮은 주장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SBS 토론프로그램에서 나와, 2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인 방송법 문제에 대해 말하면서,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면 바로 2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데…”라면서 강행추진 의사를 밝힘으로써, 엄청난 사회적 저항을 자극하고 있다. 소위 MB악법의 대표선수가 방송법 개악인데, 2만개의 일자리 창출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근거없는 ‘2만개 일자리’만 강조한다. 2만개의 일자리를 위해서, 사회적 저항도 뚫고 나가겠다고 주장하는 대통령. 비록 방송법 등 개정안에서 일자리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2만 개 일자리’라는 주장은 일단 국민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수치다. 그렇다면 5만6천 가량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1%의 성장률은 얼마나 큰 숫자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도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성장률이 2% 포인트가 오락가락하는 수치 조작을 일삼고 있는 삼성증권이다. 문제는 삼성증권의 '비윤리성'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 발표한 -0.2% 경제성장률을 삭제하는 과정에, ‘정치권력의 부당한 개입’ 의혹이 있다는 점이다.

▲ 경향신문 1월30일자 2면
삼성증권과 같은 대기업, 그것도 민간기업의 대표선수라고 할 만한 기업마저도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환경, 경제지표, 경제예측이라는 현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현재 경제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지상파 토론프로그램에 나와서 아무리 떠들어도 국민들이 믿지 않는 이유, 소비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경제침체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불신’이 핵심원인 중 하나이다. 정치권력의 거짓말과 정치권력에 의한 국책연구기관의 거짓말, 정치권력에 의한 민간기관의 거짓말. 바로 이런 불신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끊임없이 확산, 재확산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지난해 12월10일 이상배 <머니투데이>기자는 ‘미네르바 신드롬, 5가지 이유’라는 칼럼에서 ‘미네르바 신드롬의 2번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난 9월까지 경제연구소, 증권사 등 대부분의 제도권 연구기관들이 이해관계 탓에 현실을 외면하고 ‘낙관’ 또는 ‘중립’에 가까운 보고서만 펴낸 것도 미네르바가 집중조명을 받은 이유다. 대부분의 언론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제도권 연구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뭔지 뚜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바, 정부의 압력도 그 이해관계 중 하나다. 즉, 현실적으로 예측되는 상황마저, 국민들이, ‘개미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권리마저 정치권력의 압력에 의해서 차단되고 있다는 정황을 증명하는 칼럼이다.

이 칼럼은 미네르바에 대해서 ‘미네르바가 일부 누리꾼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초인적인 분석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개(?)한다.

지난 3월 미국 5위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가 무너진 직후부터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비공식적으로 4위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해 상업은행인 씨티뱅크, UBS 등의 부실화 위험을 경고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제도권 분석가들은 해당 기관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관적 전망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었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리먼브러더스 부실화와 그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올 여름부터 예상됐던 것”이라며 “분위기 상 대놓고 발표할 수 없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소속 기관의 입맛에 맞고 틀에 박힌 보고서만 양산하는 제도권 전문가들과 달리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미네르바와 같은 재야 전문가들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치권력의 밀실행정, 무능행정을 숨기기 위해서 국책연구기관뿐만 아니라 민간기관까지 통제하고 있는 경제. 여기서 죽어나는 사람들은 ‘개미투자자’로 상징되는 서민들이고, 잘못된 정보를 믿고 시장에서 살아가는 ‘중소기업’들이다. 또한 개미투자자나 중소기업들을 위해, ‘익명’으로라도,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자 했던 사람은 구속되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의 또 다른 사례다. 이 문제 또한 우리는 또 기록해 둬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에게 알려야 한다. 21세기에도 이런 일이 있다고, 있었다고, 오늘을 말하고, 역사로 기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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