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새해 벽두부터 연예계에 올드 스타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있다!”

최근 개그맨 최양락이 10년 만에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성공적으로 복귀한 것을 두고 “왕의 귀환”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반응이 압도적이다. 게다가 언론은 그동안 브라운관에서 볼 수 없었던 중장년층 연예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잇따라 방송에 출연하는 현상을 집중조명하며 80~90년대 스타들의 복귀가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것마냥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최양락과 함께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이봉원, 양원경, 김정렬, 황기순, 김한국 등 개그맨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요계에서도 이선희나 강수지, 이소라 등 중견가수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또, 오는 2월4일 밤부터 KBS 2TV를 통해 방영될 멜로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에는 전인화, 박상원, 최명길 등 중년층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해 본격적으로 중장년의 사랑과 애환을 그릴 거라고도 한다.

▲ KBS 2TV 중장년 멜로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 번'
이처럼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중장년층의 복귀가 하나의 ‘현상’으로 불릴 만큼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트렌드’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최양락 이외에도 제2, 제3의 성공적인 복귀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와 ‘예능계에 새로운 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도 과연 최양락 만큼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최양락의 복귀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가 대부분 현 시기 예능 방송계가 처한 구조적 상황과 80년대 연예인 일반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최양락이라는 개인의 특이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최양락의 복귀 성공요인으로 꼽고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소수의 10~20대 아이돌스타들이 가요계와 드라마, 버라이어티물 등 예능계를 완전히 독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양락은 이들에게 부족한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입담’을 가지고 ‘관록이 느껴지는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단순 예능인이 아니라 개그맨으로서 정통 희극을 해온 그가 버라이어티 일색의 예능프로그램에 새로운 충격을 가지고 왔다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80~90년대 코미디계를 주름잡던 그의 귀환에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반가워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의 성공요인으로 지목된 위의 내용들을 최근 복귀했거나 복귀하려고 하는 개그맨이나 가수, 탤런트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한 개인의 성공사례를 집단의 사례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90년대 초반 씨름선수 강호동이 개그맨으로 변신하며 연예계에 진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그와 비슷한 외모의 씨름선수 박광덕은 완전히 실패했다. 얼마 전 상습도박 혐의로 연예계에서 퇴출당한 강병규를 제외하자면 운동선수에서 연예인으로 전업해 성공한 사례는 강호동이 거의 유일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선희, 강수지 같은 80~90년대 인기가수들이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여부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카라, 빅뱅, 동방신기 등 10대 아이돌그룹이 접수한 가요계에서 한때 ‘국민요정’이던 이효리도 ‘이 여사’라 불리며 중년층으로 분류되고, 윤종신은 완전히 노년층 대우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 방송에 출연중인 개그맨 이봉원, 최양락

그렇다면 이제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그의 성공요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안한 말이지만, 최악의 경기악화로 인해 각 방송사들이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애쓰는 현 상황이 아니라면 최양락의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복귀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출연료가 비싼 배우나 연예인들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출연자 수가 많거나 해외 로케가 필요한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 수를 줄이거나 좀 더 극단적으로는 프로그램을 폐지시키면서까지 제작비를 절감하려고 고투하는 현재, ‘요즘 코드’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섭외하려 한 바탕에는 ‘비교적 싼 출연료’라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말이다.

게다가 최양락은 10대들에게는 ‘듣보잡’이었을지 몰라도, 30~40대 중장년층 사이에서는 이름만 대도 알 만큼 지명도가 있고, 그간 청취자와 네티즌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끈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 진행을 통해 재치와 입담을 인정받아왔던 터이므로 예능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섭외하는 데에 따른 위험부담은 덜한 편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예능프로그램 제작사나 방송사 측에서 보자면, 그는 큰돈을 안 들이고도 괜찮은 반응을 끌어낼 만한 재활용 게스트였던 셈이다. 이미 여러 개의 예능프로그램에서 MC를 맡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박미선의 예나, 크게 두드러진 반응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김국진의 선행 복귀활동이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양락과 같은 몇몇 잘 풀린 사례가 아이돌스타나 거대스타들이 모든 프로그램을 차지하는 ‘승자독식’의 연예계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그리고 비슷한 에피소드와 의미 없는 말장난이 난무하는 예능프로그램에 형질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하겠다. 연예프로그램을 독점하는 스타급 연예인들과 나머지 절대다수의 레디메이드 인생, 혹은 계약직·비정규직 연예인들 간의 출연료나 출연 프로그램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최양락의 복귀 이후 급물살을 타며 시도되는 80~90년대 연예인들의 복귀가 결국은 각자의 주력분야에서 전업해 ‘예능 늦둥이’로 편입하려는, 또 다른 ‘쏠림현상’의 발생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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