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로닉>의 주인공 데이비드(팀 로스 분)의 직업은 호스피스 간호사이다. 그 어떤 호스피스 간호사들보다 환자들에게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라기보다 이상하게 다가온다. 자신이 맡은 환자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모자라, 남들에게 환자를 자기 가족인 양 소개하는 일도 빈번하다. 환자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의 삶 자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미스터리다.

영화 <크로닉> 스틸 이미지

하지만 영화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환자에게 감정 이입하는 데이비드의 이상 행동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 후반부 들어서, 데이비드가 환자들에게 유독 헌신적으로 대하는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되긴 하지만, 그 또한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는 듯하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데이비드에겐 아픈 아들이 있었고 감추고 싶은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그의 아들 사이에 얽힌 비밀을 알고 있었던 한 환자는 그 약점을 이용해 데이비드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한다. 고민도 잠시, 그의 아들도 그랬듯이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마냥 지켜만 볼 수 없었던 데이비드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데이비드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탱해나가는 환자들은 데이비드의 부축 없이는 단 몇 초 자기 몸 하나 가누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혼자서는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배변활동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죽는 날만 기다리는 그들은 가족이 아닌 데이비드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으며, 데이비드 역시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영화 <크로닉> 메인 포스터

왜 데이비드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대신, 죽어가는 환자들의 삶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결말이 보여준 충격적인 반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쩌면 데이비드는 아들의 죽음을 택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 죽지 못해 마지못해 살아가는 인간은 데이비드가 맡은 환자들이 아니라 데이비드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환자들을 돌보지 않을 때면, 데이비드는 틈나는 대로 달리고 또 달린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 남은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아니면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저질렀다는 양심의 가책? 어느 하나 명확한 설명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제 몸 하나 스스로 가누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축복이라는 것, 그리고 아픈 가족으로 고통을 받다가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이들에게 감히 돌을 던질 수 없겠단 생각이 든다.

불혹에도 이르지 않은 나이에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넌지시 일깨워주는 감독 미셸 프랑코 감독의 통찰력이 놀랍다. 제68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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