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사원행동 핵심인물에 대해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내렸다가 KBS PD·기자협회가 무기한 제작거부에 들어간 지 하룻만에 징계 수위를 대폭 경감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내부 동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높은 가운데, 윗선의 입김이 작용했거나 공영방송법 국면 앞두고 사측이 내부 투쟁 동력을 차단하려 했다가 거센 저항에 놀라 후퇴한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노사간 협상 테이블에서 노조가 무엇인가를 내줬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 28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KBS PD·기자협회의 무기한 제작거부 출정식 모습. ⓒ곽상아

◇ KBS 내부 “값진 승리”…“노조 역할도 있었다”

KBS PD·기자협회가 무기한 제작거부에 들어간 지 하룻만에 사원행동 핵심인물들에 대한 중징계가 대폭 완화된 것에 대해 현재 KBS내부는 “값진 승리”라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한 내부 관계자는 “28일 사측은 직능단체들이 무기한 제작거부에 들어간다고 하자 불법집회 참가자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사내 게시판에 올렸었는데 이 문제도 유야무야되고 있다. 사측으로선 이번 사태가 빨리 봉합되길 바라고 있으니 더이상 도발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제작거부 이후 KBS 내부에서는 직능단체들의 동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고 밝혔다.

KBS노동조합은 29일 발표한 특보에서 “이번 투쟁은 사측의 오만한 징계권 남용에 대한 정당한 저항투쟁이었다. 또한 언론노동자의 양심과 소신에 대한 억압은 오히려 노동자의 단결력을 키울 뿐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라며 “이례적인 대폭 경감은 사측의 징계가 부당징계였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며, 5천 조합원의 단결투쟁으로 이뤄낸 값진 승리라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문석 언론연대 사무총장도 “29일 새벽까지 노사가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사측의 징계 완화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사전에 노조가 어느 정도 협상을 통해 끌어낸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사측, 중징계 내렸다가 완화한 배경은?

사측이 징계를 내리고 완화한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윗선의 입김이 작용했거나 공영방송법 국면을 앞두고 사측이 내부 투쟁 동력을 차단하려 했다가 거센 저항에 놀라 후퇴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내부 관계자는 “애당초 이번 징계는 이사회가 징계 요청을 해서 내려진 것”이라며 “이사회는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도 “KBS 내부만의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며 “징계 자체가 황당했는데, 번복도 황당하고 그 내용도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전 소장은 “협상의 성과가 빠르고도 놀라운 결과로 나온 셈인데, 노조가 투쟁 중단과 정상근무 복귀만으로 징계수위를 낮출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양가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부소장은 “곧 관제국영방송법(한나라당의 공영방송법) 국면이 다가오기 때문에 회사쪽은 이에 대한 복잡한 셈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사측으로선 사원행동과 노조의 결합, 이들과 언론노조의 연대 총파업이 불러올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처음에 강수를 뒀을 것”이라며 “그런데 내부에서 무기한 제작거부라는 강력한 카드를 들고 나오니 사측이 겁을 내고 후퇴한 것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양문석 총장도 “공영방송법 국면을 앞두고 사측이 투쟁 동력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초강경 징계를 내려 노노간 싸움을 붙이려 했을 수 있다”고 동조했다.

▲ 22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KBS노동조합이 대휴투쟁에 돌입하며 개최한 ‘부당징계 규탄 결의대회’ ⓒ곽상아

◇ “긴장의 고삐 늦추지 않겠다…이젠 공영방송 사수”

인사위 결과가 알려지자 29일 오후 집회에서 민필규 기자협회장은 “이번 투쟁을 통해 자신감과 동력을 확인했고, 향후 투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위해 비대위 체제를 유지해서 지속적으로 뉴스에 대한 문제제기, 방송법 투쟁 등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BS PD·기자협회는 30일 발표한 ‘제작 거부 투쟁을 접으며’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번 투쟁을 통해 이룩한 강력한 연대를 바탕으로 공영방송 장악 시도에 대해서 제작 거부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KBS 뉴스와 프로그램이 진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논란이 내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앞으로 뉴스와 프로그램의 공정성 문제에 대해 감시와 개선 노력을 기울일 것을 천명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기자협회는 2월2일 비대위를 개최해서 상시적인 뉴스 모니터팀과 방송법 TF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결정할 예정이다.

KBS노조도 29일 특보에서 “이번 투쟁은 단순히 부당징계에 대한 저항일 뿐 아니라 이병순 사장 체제의 관료적 조직운영과 제작 자율성 침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점을 경영진은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당장 다음달 4일 공청회를 시작으로 KBS를 옥죌 공영방송법 제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므로 이번 투쟁의 승리를 발판삼아 조합을 중심으로 KBS의 미래가 달린 공영방송법 투쟁을 착실하게 준비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밝혔다. 다음달부터 열리는 공방위에서 뉴스와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 내부 결의에 회의적인 시각도

하지만 이같은 포부에도 일각에선 회의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규찬 소장은 “이번 투쟁으로 노조가 힘을 갖게 됐다고 보기는 어럽다”며 “KBS 구성원들의 역량을 볼 때 뉴스나 프로그램에서 발생해온 ‘보수화’ 문제가 사라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무기한 제작거부에 돌입한 직능단체들도 강경징계 전까지는 다소 모호한 입장이었다. 언론노조 총파업과 관련해서 KBS가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해왔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KBS노조와 내부 구성원들의 역량과 의지가 관건인 셈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