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1월30일자 정영은 기자의 기사를 보면, 한국 경찰이, 틀림없이, 20여 년 전, 즉 1987년 1월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경찰의 해명, 결국 거짓말로 드러났고, 국민적 저항의 도화선이 되었던, 그 당시로 돌아갔다고 확신하게 하는, 정황들을 보여준다.

먼저, <미디어스>의 주요 기사를 보자.

경찰은 “진압작전은 시민안전 차원의 결정”이라며 “용역업체 직원들은 작전 개시 전 모두 철수했다”고 발표했지만, 민주당 김유정 의원이 속속 공개한 기록에 따르면 ‘용역업체와 합동 작전’을 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유정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공개한 경찰 무전통신 기록(20일치)이다.

“아울러서 용역 경비원들 해머 등 시정장구를 솔일곱(지참)하고 우리 병력 뒤를 따라가지고 3층에서 4층 그 시정장치 해제할 진중(진행중)입니다”(오전 6시 29분 42초)
“일팔(알았다). 경넷(경찰 네 명)과 함께 용역경비원들 시정장구 솔입곱(지참)하고 3단 4단(3층과 4층) 사이 설치된 장애물 해체할 진중. 일팔”(오전 6시 29분 59초)

이에 서울경찰청은 곧바로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건물 외곽에 있던 용산경찰서 경비과장이 서울경찰청 경비과 관계자에게 무전으로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황을 잘못 파악하는 바람에 오해가 빚어진 것”이라며 “전날 용역업체 직원들이 내부진입을 시도하는 것을 경찰이 여러 차례 차단한 적이 있어 순간적으로 오인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김유정 의원은 24일 현장 특공대원과 지휘본부 간 오간 20일치 무전내용을 추가로 공개하며 경찰의 해명을 전면 반박했다.

“건물 2단에 철거반들이 있는데 왜 시정(잠금)이 됐지요?”(오전 6시25분08초)
“그 용역들은 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밖으로 전부 철수한 것 같습니다”(오전 6시25분16초)
“아니 철거반원들이 3, 4층에 있는 장애물 제거 설치를 해야지, 가급적이면 철거반원들이 설치하도록 하고 만약에 바로 설치가 안 되면 우리 경찰력이라도 3, 4층 장애물을 신속하게 제거하도록…”(오전 6시25분42초)

이에 대해 경찰은 “무전내용으로만 보면 오해를 살 만하지만 철거현장 밖에 있던 보고자가 착각해서 잘못 보고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니까 무선교신 기록에 대한 경찰 해명의 핵심은 ‘착각했다’는 것이다.

▲ 경향신문 2009년 1월28일치 6면 기사

착각. 아주 중요한,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 저들의 말 대로, 시민의 안전을 위한 긴급작전에서, 무슨 착각이 이렇게도 많은가. 국민들이 착각이라고 하면 믿을 성 싶은가. 저항하는 사람들을 죽여놓고, 착각이라…. 이들이 사람 죽여놓고, 착각같은 착각, 진짜로 믿고 싶었던 착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1987년 1월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졌을 때, 그 때의 경찰이 왜 그렇게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초래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임기응변으로 ‘소나기만 피하면 끝’이라는 계산을 한 모양인데, 국민들은 경찰이 왜 그렇게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어버리더라.

당시 박종철의 죽음을 두고 경찰이 밝힌 ‘죽음의 과정’이었다. 국민들이 일어났다. 언론들이 철저히 침묵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쇼크사’라며, 지금처럼 경찰을 두둔하는 논조를 보였고, 당시까지 ‘아주 훌륭한 신문’이었던 동아일보만 유일하게 사회면 1단짜리 기사로 고문치사 가능성을 시사하며 보도한다.

국민들은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죽어버리는 쇼크사에 대해서 믿지 않았다. 동아일보가 넌지시 암시했던 ‘고문에 의한 치사 사건’으로 인식한 것이다. 아니 사실로 믿었다. 국민들은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정권은 곧장 초강경 진압작전을 펼쳤고, 1~2월 겨울거리를 대학생들이 먼저 휩쓸기 시작했고, 3월 개학을 맞아 대대적인 저항운동을 펼친다. 당시 노동계와 시민들이 대학생들의 투쟁을 지지 옹호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싸움의 전초전이 갈수록 확대된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4·13호헌조치’라는 극단적인 자해 카드를 꺼내 든다. 전두환 정권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자충수’였다. 그 때까지 여당 속의 야당으로 길들여져 있던 한국의 야당들이 궐기를 시작하면서, 학생 시민 야당들이 함께 4월과 5월을 거리에서 보내며, 결국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독재를 불사르는 광야의 햇불이 큰 불로 진화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지금 경찰이 보이고 있는 ‘임시방편’ ‘임기응변’을 통한 ‘위기모면’이라는 작전은 결국 경찰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붕괴를 앞당길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이다.

조중동이 아무리 경찰의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고 하더라도, 용삼참사의 책임을 철거민에게 뒤집어 씌운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론은 저 언덕 위에서 굴러 내려오는 ‘눈덩이’이다. 구를수록 그 크기는 커질 수밖에 없다. 조중동의 붕괴까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촛불 이후 자각한 시민들이 조중동의 사기극에 결코 속지 않고 있고, 경찰의 폭력에 결코 동의하지 않고 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을 수밖에 없고, 그 거짓말이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의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경찰이든 검찰이든, 조중동이든, 수구보수집단이든, 최소한의 상식과 양심 앞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용산참사를 사과하고 책임자를 구속하는 결단을 촉구할 것인지, 아니면 ‘정권에 대한 맹종과 추종의 역사’가 항상 파국으로 끝났듯이, 함께 파국을 맞이할 것인지.

역사의 교훈은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 잣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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