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건 제작발표회를 방해하는 행위입니다!”(KBS 홍보팀)
“성명서를 전달하고 가겠습니다.”(KBS 출입기자들)
“성명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경영진한테 주세요. 한두번 볼 사이도 아닌데 왜 이러십니까.”(KBS 시청자센터장)

2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KBS 드라마 ‘미워도 다시 한번’ 제작발표회를 앞두고 KBS 출입기자 30여명이 입구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취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견해를 보이콧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날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도중에 발언이라도 해야하는 것 아냐?” “그림이 연출되도록 모여서 앉아있다가 단체로 퇴장하자” 등등의 의견이 오갔다.

▲ ‘미워도 다시 한번’ 제작발표회에 앞서 KBS 출입기자들이 구체적인 보이콧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곽상아

▲ 한 출입기자가 주최측과 보이콧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곽상아

▲ 한 출입기자가 성명서를 전달하는 모습 ⓒ곽상아

주최측이 이들을 심상치 않게 바라본 것은 당연한 일일터. 주최측이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이에 한 기자가 “저희는 KBS의 취재 통제 조치에 반발하는 의미에서 오늘 제작발표회 취재 보이콧을 선언하러 왔다”고 설명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KBS쪽에 전달하겠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행사를 주최한 외주제작사 관계자는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기자들의 뜻을 받아들였고, 가급적 행사 전이나 끝난뒤에 해달라고 요청했다. 출입기자들도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까진 큰 문제가 없었다. 상황이 다소 ‘웃기게’ 돌아간 것은 KBS 측에서 출입기자들에게 “제작발표회를 방해하는 행위다”며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부터다. 출입기자들은 자리에 있던 KBS 드라마 국장과 시청자센터장에게 성명서를 전달하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연옥 시청자센터장은 “제작발표회에서 이런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성명서를) 경영진한테 주라”고 했다.

▲ KBS 출입기자들이 보이콧을 선언하고 집단 퇴장하는 모습 ⓒ곽상아

▲ ‘미워도 다시 한번’ 출연진들 ⓒ곽상아

성명서를 받지 않겠다는데 억지로 들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30여명의 출입기자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의견을 표시하고 현장에서 퇴장했다. 그사이 포토타임을 위해 무대에 오른 배우 전인화, 최명길, 박상원, 박예진 등의 스타들은 약간 놀란 눈치.

문제의 발단이 된 취재 통제 조치는, KBS가 지난 18일부터 갑작스럽게 출입기자들의 본관과 신관 취재를 불허하고 나선 일을 말한다. ‘주요 방송시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게 주된 이유라는데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KBS 출입기자들은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사장실, 임원실, 정책기획센터 등 KBS의 핵심 부서가 있는 본관 주요 층은 현재도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같은 조처는 KBS가 요청하는 신원정보를 제출해 정당하게 검증을 받은 출입기자들이 중요 시설에 훼손을 가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둠으로써 사실상 우리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는 최근 들어 벌어진 KBS의 공정성 논란과 사원 파면 사태 등에 비등하고 있는 KBS 내 비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을 봉쇄하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KBS 홍보팀 관계자가 출입기자에게 “제작발표회를 방해하는 행위다. 이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하는 모습 ⓒ곽상아
이들은 29일 KBS쪽에 전달하려 했던 성명서에서도 “KBS는 공영방송사로 국민에게 더욱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 곳”이라며 “더 이상 불합리한 억지 논리로 취재 통제 조처를 고집하지 할 경우 취재 보이콧에 이어 제2, 제3의 직접 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밝혀두는 바”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제작발표회 현장을 퇴장한 직후 회의를 열어 대표단을 뽑았으며, 향후 행동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취재 통제에 반발하는 기자들이 보이콧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제작발표회 방해 행위’ 쯤으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KBS의 인식이 우려스럽다. 건물출입 금지로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통제’하며 ‘방해’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KBS다.

KBS의 ‘기자 출입금지’ 조치 탓에, 기자들은 KBS PD·기자협회의 ‘무기한 제작거부 돌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사내 취재를 전혀 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직능단체별 총회와 내부 선전전 등 건물 내부에서 일어난 현장 취재는 모두 ‘전화’로만 상황을 전해들어야 하는 답답한 상태였다.

▲ 제작발표회 취재를 위해 모여있는 기자들 ⓒ곽상아

그나저나 무조건 “홍보팀을 경유하라”는 KBS의 출입기자에 대한 취재 통제 조치에, 어쩐 일인지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나 직능단체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한 것 같다. 공영방송 KBS 취재의 통제 조치도 ‘국민의 알권리 침해’이자 ‘언론 통제’로 보아야 할 문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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