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문은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을 ‘폭력시위’를 주도한 ‘시위대행업체’로 규정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29일 “‘용산 농성’ 전원 기소 방침”이라며 검찰이 ‘무관용 원칙’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이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에게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검찰의 입장은 그렇단다. 조선일보는 또한 “전철연이 시위를 ‘대행’해주고 돈을 챙겼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수사”를 위해 남경남 전철연 의장 등의 계좌조회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도 “검찰은 전철연이 점거 농성에 개입하는 등 ‘대리 투쟁’을 대가로 금품을 받은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이모 용산 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점거 농성 준비를 위해 모은 6000만원을 어디에 썼는지 밝혀내기 위해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 1월 29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문화일보는 조중동보다 한발 빠르고 한수 위였다. 지난 21일자 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망루 농성 사전 연습했다”고 뽑으며 실력(?)을 과시했던 문화일보는 어제(28일) “‘대리투쟁’ 대가 철거민에 돈 받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경남 전철연 의장이 철거민 대리 투쟁을 명목으로 정기적인 활동비 상납을 요구, 조직자금을 확보한 정확을 잡고 남씨와 전철연 간부들의 자금 흐름을 집중 추적하고 있다”며 “남씨와 전철연 간부들이 건설사와 시행업체에도 투쟁 중단을 빌미로 시위비용 보상금 등 뒷돈을 요구했다는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확정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조중동은 뭐하느라 하루 늦게 보도하면서도 이같은 ‘확정적 사실’을 전하지 못한 걸까?)

▲ 1월 28일자 문화일보 1면 기사
조중동문의 보도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들쑤신다. ‘제3자는 불순하다’는 전설의 고향 리메이크 버전. ‘제3자 개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어떤 이데올로기 기제였던가.

1987년 8월22일 경남 거제 옥포관광호텔 앞에서 행진 중이던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다. 젊은 노동자 이석규씨가 날아온 최루탄에 오른쪽 가슴을 맞아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당시 이 사건으로 항의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국무총리 담화 등을 통해 “좌경세력이 노동현장을 투쟁의 거점으로 삼아 학생들과 연계해 벌인 강경투쟁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노동자들을 비롯해 여럿이 구속됐고 당시 부산지역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시신 부검과 임금협상을 위한 법률 자문을 해주다 구속됐다. 혐의는 ‘제3자 개입금지’ 위반이었다.<한겨레 22면 ‘유레카’ 일부>

오늘자 경향신문 1면에는 ‘당정, 재개발사업 제3자 개입금지 검토-서민 생존권 문제는 외면’이라는 기사가 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용산 철거민’ 대책과 관련해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당사자들이 아닌 제3자 개입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또한 지난 22일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이 “용산 사고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 다시 말해 전철연 같은 조직이 개입하면서 커졌다”며 “당은 제3자가 개입하는 제도적 미비점 보완에 역점을 두고 2월 중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사실을 함께 전했다.

▲ 1월 29일자 경향신문 1면기사
용산참사, 누가 불순하고 누가 3자인가

경향신문은 정부와 한나라당이 검토하는 ‘제3자 개입 금지’가 지방자치단체 등 철거 시행 당사자와 철거민 조합 등이 ‘제3자 배제’규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마디로 ‘전철연’은 빠지라는 얘기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당사자들끼리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균형이 이뤄진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힘의 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당사자끼리만 이야기하라는 규정은 체급 규정이 없는 1대1 격투기, 그것도 생존권을 담보로 한 ‘데스 매치’를 하라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 등이 ‘제3자개입금지법’에 대해 ‘반노동자’, ‘반민주’라며 폐지를 권고한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이미 용산 철거지역 역시 이미 힘의 균형은 깨져 있었다. 시공사는 삼성건설과 포스코건설, 대림산업이었고 재개발조합은 세입자들에게 인테리어 비용에도 못 미치는 최대 2500만원의 보상비를 제시했다. 그동안 그 상권을 발전시킨 것은 세입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것은 책정되지 않았다. 박장규 용산구청장은 대화하자던 세입자들을 떼잡이들이라고 치부해버렸다. 세입자들은 과연 누구와 대화를 나눠야 했을까.

참사 직후 검찰의 수사는 시종 깊숙한 ‘개입’이다. 그런 검찰을 향해 시민사회는 편파수사라 주장한다. 실제로 검찰은 연행된 철거민에 대해 전원 기소 조치했으나 과잉진압에 대한 경찰책임자에 대한 기소 결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용산참사를 두고 “세입자들은 떼잡이”, “과격시위의 악순환 끊는 계기되길”, “고의방화”, “도심테러” 등 연일 막말을 퍼붓는 이들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철연을 한마디로 ‘폭력시위’를 주도한 ‘시위대행업체’로 규정하고 용산철거민들과 전철연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있는 조중동문은 또 어떠한가.

오늘 경향신문 만평은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뒤에 앉은 ‘3자’는 빠지라 이거야”라는 말에 뒤에서 “우리요?”라고 되묻는 이들은 ‘막말용역’, ‘철거용역’, ‘색깔용역’이었다. 과연 용산참사 사건에서 누가 불순하고 누가 3자인가.

▲ 1월 29일자 경향신문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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