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워크아웃’에 지방신문에 유탄

광주지역에 신문사가 많은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공식적으로 13개 신문이 발행되고 있는데, 상당수 건설회사를 모기업으로 하고 있다.

광주전남기자협회 회원사만 보더라도 7개사 가운데 5곳이 건설관련 기업이 모기업이다. 광주일보의 모기업은 대주건설, 전남매일은 삼능건설, 광주매일은 남양건설, 전남일보는 조선내화, 남도일보는 대지건설 등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건설사 워크아웃에 관한 얘기는, 한동안 지역언론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일부 매체는 “건설사 워크아웃 등의 조치가 이뤄지면 지역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위기감을 주는 기사를 싣거나, 노골적으로 “건설업체를 살려야 한다”는 기사를 1면 머리에 내놓기도 했다.

결국 지난 20일, 금융감독 당국과 채권은행들이 신용위험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워크아웃 또는 퇴출 대상으로 확정 발표된 건설업체 가운데 두 곳이 광주지역 기업이었다.

유일하게 퇴출대상인 대주건설은 자칭 이 지역 신문사들의 터줏대감인 광주일보의 모기업이고, 워크아웃 대상으로 발표된 삼능건설의 경우 전남매일의 모기업이다.

▲ 대주건설 사옥 ⓒ광주드림 자료 사진
전해오는 이들 신문사 내부 분위기는 그야말로 ‘충격’이란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놀라움과 당혹감은 차원이 다를 터. (원래 23일쯤 발표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사흘 앞당겨 발표된 게 혹시 용산철거민 사태에 대한 시선 돌리기 의도 때문은 아닌지.)

모기업의 경영위기가 이들 신문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은 어렵지 않다. 안그래도 최근 지역 신문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번 사태가 타사기자들의 움츠린 어깨까지 더욱 짓누르는 구실로 작용할까 걱정이다.

하지만 지역 언론의 위기는 또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외부에서 불어온 위기라면, 이건 지역 언론계 내부의 고질적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사에서 사라진 광주시장 성적표

지난 19일 아침, 한 통신사의 광주·전남판에 눈에 띄는 기사 하나가 떴다. 여론·정책 전문연구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사)장산이 공동으로 광주·전남지역거주 성인남녀 1000명(광주 407명, 전남 593명)을 대상으로 전화ARS로 실시한 ‘광주·전남지역 현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였다. 그 안에 광주전남 시도지사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가 들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광태 광주시장의 시정운영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평가는 ‘낙제점’이었다. 박 시장의 직무수행에 대해 응답자의 41.1%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7.1%에 그쳤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9%p)

이와 달리 박준영 전남지사의 도정운영에 대한 전남도민들의 평가는 ‘잘하고 있다’가 44.1%로, ‘잘못하고 있다’(20.1%)는 응답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지난 12일 실시된 이 조사는, 민선 4기 들어 외부기관에서 양시도 자치단체장에 대해 실시 공개된 첫 평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특히 지방자치의 최대 관심사인 차기 지방선거가 1년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차기 입지자들에 대한 하마평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당사자들로선 민감한 사안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신사의 이 기사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 바뀌었다. 양 시도지사의 구체적 성적표는 사라지고, 대신 “광역단체장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에서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박광태 광주시장보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로 변해 있었다.

이번 여론조사는 양 시도지사의 시도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함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공사와 관련된 문제와 △광주시와 전남도가 추진하고 있는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J프로젝트 등 대형 현안사업, 그리고 △4대강 정비사업 등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튿날 지역 신문들의 반응은 일제히 ‘침묵’이었다. 물론 기사에 대한 가치판단은 온전히 해당 편집국의 몫이다. 기사가 되겠다 또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편집권 침해’라는 반발을 살 수도 있다.

▲ 대주건설 퇴출 소식이 알려진 20일 아침 대주건설을 모기업으로 하고 있는 광주일보 1면.
하지만 적어도 기사 판단 여부에 따라, 그 매체의 성격은 드러난다. 할 말은 하는 매체인지, 알아서 거르는 매체인지 말이다. 사실 이 지역 신문에서 광주시장에 대한 부정적 내용의 기사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그 이유를 건설모기업 구조에서 찾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시에서 발주하는 각종 관급공사에서 모기업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 때문이다. 그동안 광주전남민주언론시민연합의 비판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일부에 해당하지만, 그런 모기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내부 일각에선 “차라리 할 말이라도 할 걸 그랬나”는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지역 신문업계의 진짜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고 있다.

광주지역 일간신문 광주드림 행정팀 기자입니다. 기자생활 초기엔 지역 언론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주로 했는데, 당시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많이 절감했구요. 몇 년 전부턴 김광석의 노래가사 중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진다"는 말을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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