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이라는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면. 가장 많은 답변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안 자체가 워낙 복잡하기도 하지만 이를 전하는 언론 보도가 대부분 각 정당의 입장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러다보니 독자나 시청자 입장에서 ‘대체 이게 어떤 사안인지’ 궁금해서 TV나 신문을 들여다봐도 사안 정리에 있어 별 도움이 안된다. 복잡한 사안을 복잡한 그대로 전달하고 ‘쌈질’만 붙인다. 재미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재미도 없다.

하나은행 내부문건의 의미와 파장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자

대통합민주신당 정봉주 의원이 이명박 후보가 BBK 소유주임이 확인됐다며 하나은행의 내부 문건을 공개한 건만 하더라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내부 문건 공개→한나라당 반발’이라는 공식에 입각해서 보도를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겐 ‘정치 공방’이라는 이미지만 남게 된다. 28일 KBS <뉴스9>와 SBS <8뉴스> 리포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 10월28일 KBS <뉴스9>(왼쪽)와 같은 날 SBS <8뉴스>(오른쪽).
솔직히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가려낼 재간 - 언론에게도 없다. 다만 유력 대선주자와 관련된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이전과는 다른 ‘사실’이 추가적으로 공개가 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갖는 의미와 이후 파장 등에 대해서는 한번 정도 짚어줘야 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 사안이 대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알려주는’ 것, 이거 언론 말고 다른 곳에서는 하기 힘들다.

‘어려운 내용’(하나은행 내부문건)이 나왔고, 여기에 대해서 ‘어려운 내용’(한나라당 반박)을 전하다 보니 내용 자체가 헷갈리고 어렵다. 방송뉴스와 신문뉴스 모두 다 살펴봐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8일 방송사 메인뉴스와 29일자 아침신문을 쭈욱 한번 살펴보시라. 무슨 말을 '끄적여 놓았는지' 아시겠는가. 이 사안 자체를 관심 있게 쭈욱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당췌 뭔 소린지를 모른다. 그러다보니 시청자나 독자에게 남는 건 리포트 말미, 양쪽의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는 정도. ‘들어도 뭔 소린지’를 모르고, 모른다고 하자니 ‘쪽 팔리는 감’도 없지 않다.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뭔가 당사자의 해명이 필요한 대목으로 보이네요”

28일 MBC <뉴스데스크> ‘이명박 자필 서명 무슨 의미인가’를 주목한 것은 이 리포트가 ‘고객서비스 마인드’를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MBC 김주하 앵커와 최명길 선임기자의 대화형식으로 구성되는 리포트(매주 일요일 한 주의 정치 관련 뉴스를 전망해 보는 ‘고정 꼭지’와 같은 형식이다)인데 어려운 용어 구사하지 않고 참 ‘친절하게’ 내용을 풀이해 준다.

▲ 10월28일 MBC <뉴스데스크>.
김주하(이하 김) : 오늘 공개된 하나은행 문서. 지금까지의 얘기와는 좀 다른 거 같죠?

최명길(이하 최) : 대형 은행이 외부 출자를 위한 품의서에 쓴 내용입니다. 내부 감사도 받아야 하고, 금융감독원에 제출되는 결재문서고요. 일반 보고서와는 다릅니다. 내용은 LKe뱅크가 설립한 BBK 관련사업에 하나은행이 투자를 한 건데, 사업이 잘 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별도의 계약서를 썼는데, 그 계약서에 이명박이란 이 자필 서명이 있다는 게 문젭니다.

김 : 뭔가 당사자의 해명이 필요한 대목으로 보이네요.

최 : 한나라당은 일단, 하나은행 문서가 김경준에 속아서 작성된 거고 서명은 단순한 연대보증 서명이란 설명입니다. 이 말이 맞다면, 이 후보는 당시 계약 내용을 모르면서 이 계약이 잘못되면 돈을 돌려주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한 게 되는 겁니다. 경영을 잘 아시는 분이 그랬을까 싶고, 해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경영 잘 아는 분이 그랬을까. 해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정리하면 이렇다.

△하나은행 문건 : 대형 은행이 외부 출자를 위한 품의서에 쓴 내용. 내부 감사도 받아야 하고, 금융감독원에 제출되는 결재문서. 일반 보고서와는 다름.
△문건 내용 : LKe뱅크가 설립한 BBK 관련 사업에 하나은행이 투자를 한 것. 사업이 잘 되지 않을 경우 투자금을 돌려받기 위해 별도의 계약서를 썼음. 그런데 그 계약서에 이명박이란 자필 서명이 있음.
△의미 : BBK와 관련 없다던 이명박 후보측 그동안의 해명과는 좀 다름. 한나라당 해명대로 단순 연대보증 서명이라면 당시 이 후보는 계약 내용도 모르면서 손실발생 시 돈을 돌려주겠다는 문서에 서명한 게 됨. 경영 잘 아는 사람이 그랬을까? 해명 필요함.

▲ 조선일보 10월29일자 4면.
쉽게 말해 하나은행이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작성한 것이 이번 보고서인데 이 보고서는 내부 감사도 받아야 하고 금융감독원에 제출되는 결재문서이기 때문에 일반 보고서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날(28일) 방송사 리포트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 보고서에 따라 실제 LKe뱅크에 5억원의 투자가 이뤄졌다. 은행의 까다로운 투자심사 절차를 고려해 보면 투자를 결정하게 만든 ‘어떤 요인’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 각 정당의 입장을 ‘접한’다면 그래도 나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이명박 후보가 BBK 100% 실소유자임이 공식화됐다. 따라서 그동안 거짓에 대한 책임, 주가 조작 책임지고 후보직 사퇴해야 한다”는 게 대통합민주신당의 입장이고, “품의서는 하나은행 내부 문건일 뿐인데, 문건 작성자가 LKe뱅크와 BBK관계를 오인해 품의서를 작성했다”는 게 한나라당의 해명이다.

판단은 알아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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