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마따나 그렇다, 언제나 선거에 잡음은 있었다. 각 당이 내세우는 정책이나 노선보다 여의도 정치 이슈가 더 주목받는 선거는 결코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를 두고 ‘최악’이라고들 평하는 건 그 ‘여의도 정치 이슈’마저도 사뭇 저열한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즈음의 선거는 대개 ‘정권심판론’을 놓고 치러지기 마련이다. 정권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넘쳐날 수밖에 없고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심판론’은 이렇게 예정된 일을 막아보려는 공학적 판단에서 나온 것일 게다. ‘심판’의 방향을 정권을 향한 것에서 ‘발목을 잡은’ 국회로 돌림으로써 총선의 결과를 대통령에 유리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 포석이다.

이 ‘국회 심판’의 범주, 그러니까 발목을 잡아온 범인들의 명단에는 야당 뿐 만이 아니라 당 내의 이른바 비박들, 소위 유승민 일당들이 포함됐다. 대통령의 대리인 역할을 자임한 이한구 전 의원이 유승민 의원을 탄압해 결국 무소속 출마를 하게 만든 것은 정권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드러낸다. 역풍을 염려한 청와대와 친박계는 결국 유승민 이재오 의원을 살려준 거나 마찬가지 결과가 됐다는 점을 들어 뒤늦게 ‘이한구 일못(일을 못하는 사람)론’을 내놓고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이한구를 팽한 토사‘구’팽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왜 시간을 질질 끌었느냐’는 질책은 ‘애초에 왜 이한구를 그 자리에 앉혔느냐’는 반문으로 부메랑처럼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서 ‘깜짝 놀랄 결과’를 언급한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이 나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이번 선거의 특징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의당은 원내 1, 2당의 무능과 부패를 얘기하면서 우리 정치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제3정당론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제3정당이 가능하려면 대권주자급 인사와 조직적 기반이라는 조건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흐름에 올라타면서 이러한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이른바 ‘단일화론’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3당론’이 지속적으로 강화돼 결국 제3당 논리가 일부 여론을 떠받치는 데까지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심판론’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경제심판론’을 제기하였으나 효과를 본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유세를 통해서는 이러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보이고 있으나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고공 정치의 영역에서는 경제심판론의 구체적 메시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2순위를 받은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모처럼의 정책 논쟁이 가능한 사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10일 부산 중구 광복로 차없는 거리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는 축제다'를 주제로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일련의 사태를 종합해보면 이번 선거가 왜 최악의 선거일 수밖에 없는지가 드러난다. 모든 쟁점 이슈가 공적인 어떤 것에 중심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심판론’은 결국 자신의 통치력 상실을 최소화 해 퇴임 이후까지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유지한 영향력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으리라는 건 지금까지의 통치 스타일을 보았을 때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결국 박근혜 정권의 선거 전략은 자기 자신들 만을 위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제3당론에 올라타는 데 성공한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계속 주장하고는 있으나 그 새로운 정치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으로 뭘 하겠다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말한 바는 전혀 없다. 오히려 국민의당에 ‘인재’랍시고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과연 이렇게 해서 새정치가 되겠는가 하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생각도 ‘1, 2번이 꼴보기 싫으니 이번에는 안철수 씨를 키워주자’라는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국민의당은 안철수 공동대표의 대권 프로젝트 일부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데,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그것도 도저히 알 재간이 없다. 결국 국민의당이 내세우는 새로운 정치란 안철수 공동대표에게만 좋은 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기회를 가졌음에도 번번이 놓치기만 했다.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비례대표 2번 논란은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런 ‘자기만 좋을 일’을 벌이는 세력의 대열에 섰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된 이후 제기된 전국적 이슈가 사실상 ‘후보단일화’ 밖에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말이 좋아 새누리당을 막기 위한 후보단일화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수도권 후보들을 위해 총선을 포기해달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단일화의 논리가 그나마 생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그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차지를 막자는 각자의 정의 말고, 어떤 긍정적 무엇을 하기 위한 정치연대가 전제돼야 했다. 그러나 그런 ‘무엇’을 한국정치는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진보정당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내 유일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어떤 차별적 정치구상을 내보이는데 실패했다. 정의당이 선거 이전부터 내세운 한국 정치가 해결할 주요 과제는 야권연대와 선거제도 개혁 외에는 사실상 눈에 띄는 게 없었다. 두 주제 모두 국민들이 필요를 체감할 수 없고 오직 정의당과 같은 포지션의 정당들 입장에서나 환영할 수 있는 주제다. 국회에서 심상정 대표가 임금피크제 등 노동개혁 의제와 관련해 화를 내는 모습이 잠시 화제가 됐으나 일회적 홍보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 결과는 일부 지역구 출마 후보들이 야권연대를 위한 후보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내가 더 경쟁력 있다’는 것 이상의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 ‘우리끼리의 단일화’에 역량이 소모되는 것뿐이다.

이제 실제 투표 결과가 나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지적한 것처럼 모든 정치세력이 공적인 무언가를 절실히 추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 살 길만 찾아 나서는 아수라장은 차라리 투표를 포기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후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상황 자체를 바로잡을 힘과 책임은 아직도 우리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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