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뉴스’는 쏟아지지만, 언론을 통해 정작 나의 관심과 이해를 대변해 줄 정당이 있는지를 알아보기는 여간 쉽지 않다. 이번 제20대 총선에 등록한 정당의 주요 10대 정책을 정리해 둔 선거관리위원회 정책 소개 페이지를 보는 편이 낫다. 그런데 ‘나와 맞는 정당’을 2분도 안 돼 알려주는 앱이 있다면 어떨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와 풀뿌리정치벤처 와글(이하 핑코리아 팀)이 손을 잡고 만든 ‘핑코리아’(링크)는 정책을 중심으로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후보와 정당을 알아볼 수 있는 앱 서비스다. 지난달 22일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고, 오늘(7일) 오전에야 세부 코너 작업까지 마무리된 버전이 나왔다.

핑(P!ing)이라는 말은 통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쓰는 말로, 이름은 잠수함에서 상대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음파를 보내 돌아오는 시간을 재던 것에서 유래했다. 핑코리아팀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보험에 가입할 때에도 과대광고인지 아닌지 살펴보듯 핑 서비스 이용자가 각 정당이 자신들을 포장하고 수식하는 미사여구를 넘어 한국 사회의 주요 이념, 정책 갈등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투표 가이드 앱(VAA)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서비스는 <19대 국회의원 중 나의 도플갱어는?>은 표결로 성격이 드러난 19대 법안 250개 중에서 관심도가 높고 사회적 이슈가 됐던 10여개 법안을 골라 가장 가까운 성향을 찾아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 <나와 어울리는 정당 찾기>에서는 정치 사안 가운데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언론·생태다양성·경제노동·외교안보 4가지 분야의 20개 문항(분야당 5개)을 통해 자신의 정치 성향과 지지 정당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어울리는 정당 찾기 초기화면

사회언론 분야에서는 경찰 차벽,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에 대한 견해를, 생태다양성 분야에서는 핵발전소 증설 정책, 공장식 축산업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경제노동 분야에서는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차등 없이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는 정책, 19~24세 청년에게 매년 100만원을 제공하는 청년 배당 정책 등에 대한 견해를,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20개의 질문에 답한 후, 성별, 태어난 연도, 정치 성향, 지지정당 등 4가지를 선택하면 결과를 볼 수 있다. 20개 질문에 대한 답을 종합했을 때 응답자의 생각과 유사도가 높은 순서대로 정당 이름이 나타난다. 사회언론·생태다양성·경제노동·외교안보 각 분야별로 성향이 일치하는 정당과, 각 분야별로 보수~진보 이념 스펙트럼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 20개 질문에 정당별로 어떤 답을 내놨는지도 볼 수 있다.

핑코리아 팀은 이번 선거에 후보자를 낸 21개 정당에 공통 질문을 보냈고 11개 정당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여당인 새누리당,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답변을 거부’했다는 점은 특이할 만하다. 현재 가장 규모와 영향력이 큰 두 정당을 제외할 수는 없었기에, 핑코리아 팀은 각 정당이 입법 발의하거나 당론으로 했을 경우를 최우선으로 두고, 대변인 논평, 대국민 담화, 성명과 기자회견 발언 등을 종합해 당별 입장을 정리했다. 한 주제에 대한 답이 일관되지 않을 경우에는 가장 최근 입장에 가중치를 뒀다.

와글의 이진순 대표는 “항상 선거 때마다 느끼는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20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는 정책적 쟁점이 실종됐다. 언론에서는 계파 갈등과 심판론으로 치우쳐진 당 대 당 경쟁을 위주로 보도했다. 일정한 패거리를 만들고 ‘너는 어느 편을 들래’ 하며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유권자들이 일상의 삶이나 국가 운영 전반에 관한 중차대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 어떤 정당을 선택하면 어떤 식의 변화가 이루어질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봤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정당별 정책과 입장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해서 볼 수 있는 정보 사이트가 없어서 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와글의 서정규 매니저는 “네덜란드 Stem Wizjer, 독일의 Wahl-O-Mat 등 해외에서는 투표 가이드 앱을 사용해 투표 행위를 할 때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세계 20여개국에서 사용 중인데 우리나라에서 유독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며 “요즘 정치뉴스는 계파, 지역, 인물 3가지로 정리가 되는데, 저희는 정책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각 정당이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개발 동기를 설명했다. 또한 “신뢰도 있는 연구보고에 따르면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사례에서 투표 가이드 앱을 사용한 사람들의 정보 욕구나 의향이 상승했다”며 ‘투표 독려’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뉴스타파 박중석 대외협업 에디터는 “정당들이 정책, 정강, 공약을 내세우면서 정체성을 드러내줘야만, 유권자 스스로 ‘나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정당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데, 정당들이 일부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자의 제보, 문서 획득, 숨겨진 팩트 확인 등이 그동안 전통적인 탐사보도의 형태였다면, 데이터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해 나가는 것도 탐사보도의 영역이라고 봤다”며 “새로운 정보를 가공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시청자들, 독자들이 필요한 것과 우리가 알릴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접점’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전했다.

핑코리아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다. 서정규 매니저는 결과를 SNS로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을 넣은 이유에 대해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서 정치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핑은 무거운 이슈들을 계량화, 객관화, 게임화시키되 사소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와 맞는 정당이나 국회의원을 알아보면) 왜 내가 원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없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들이 SNS를 타면 더 널리 공유되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핑코리아는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달 22일부터 열흘 간 방문자가 17만명을 넘겼고, 설문을 모두 완료해 결과를 얻은 응답자도 12만명에 달했다. 핑코리아 팀이 타깃층으로 삼았던 18~24세의 응답률이 40%로 가장 높았고, 성비로는 남성이 65%, 여성이 35%였다. 성향별로는 중도 진보가 38.1%, 정치성향 없음이 17.5%, 진보가 17.4%로 상위 3순위를 기록했다.

사회언론·생태다양성·경제노동·외교안보 4가지 분야의 20개 문항(분야당 5개)을 통해 자신의 정치 성향과 지지 정당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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